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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론] 이처럼 사소한 말들

임병구 ㈔인천교육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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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고 격한 말들이 귀를 찢는다. 전쟁이라는 끔찍한 단어가 휘저어 놓은 일상이 난리다. 내전이니 내란이니 쉽게 내뱉지만 한마디 한마디에 수명을 단축할 무서운 살기가 실린다. 내전이라는 말은 같은 편끼리 죽도록 싸운다는 뜻이다. 같은 편이라면 등을 보여도 안심이 되는 동료거나 이웃이다. 친근한 얼굴로 다가와 칼을 내미는 서스펜스 영화 장면이 관객을 더 전율케 하듯 바깥에서 온 적보다 안에서 만난 예상치 못한 적이 몇 배 더 무섭다. 공포감에 배신감이 더해지고 미련스럽게 당하고 말았다는 자괴감까지 끼어들면 그런 철천지원수가 따로 없다. 전쟁은 정전협정이 가능하지만 내전에는 정전이라는 개념조차 들어서기 어렵다. 전쟁보다 추스르기 어려운 게 내전에서 입은 상흔이다. 상처를 주고받은 이들이 응어리를 풀어야 새살이 돋는 화해를 도모할 수 있다.

 

말부터 바꿔야 한다. 악마라는 수식어가 너무 쉽게 나오는 정치는 내전을 부르는 선전포고다. 극한 표현을 써대며 먼저 도발한 이가 누구인가를 서로 따질 때, 우리는 도발이라는 단어 주변부터 서성거려 봐야 한다. 남침, 북침, 도발은 붙어 다니는 전쟁 용어 묶음이다. 오죽하면 악마라고 불렀을까 싶은 감정을 다독이는 편에 서야 2차 도발, 3차 도발을 거치며 확전하는 내전을 예방할 수 있다. 국민저항권이라는 오염된 말에 저항하는 말도 필요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소수자 인권이 아니라 기득권자들에게 인권이라는 날개까지 달아 줄 때, 가치 전도에 저항하는 게 원뜻에 부합하는 국민저항이다. 계몽령은 또 어떤가. 계엄이 무력을 사용해 피를 부르겠다는 말이라면 계몽은 국민에게서 주권을 빼앗아 종처럼 부리겠다는 말이다. 똑똑한 주인이 무지한 종에게 한 수 가르치겠다는 속셈이 ‘계몽이라는 영’을 내리게 했다.

 

정치적 반대자들을 수거한다는 퇴역 군인 수첩 메모야말로 어긋난 말의 정점을 찍는다. 수거는 대상자들에게서 인격을 박탈하고 개체성을 지워 쓰레기 더미로 만든다. 쓰레기조차 분리해서 수거해야 남은 가치를 되살릴 수 있는데 인간 수거에는 그러한 고민조차 없다. 최근에는 폭탄교사라는 교육계 은어가 언론을 타고 퍼져 나간다. 폭탄은 터지라고 만든 대량 살상 무기다. 표현 하나가 평화로워야 할 학교 이미지를 처참하게 훼손해 버린다.

 

크고 드센 말들이 작은 소리들을 윽박지르고 있을 때 클레어 키건에게서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 대해 듣는다. 주인공 펄롱은 존재감조차 희미한 어린 사람을 억압하는 사회로부터 구해 낸다. 그는 그저 마음에서 벼르고 벼르던 작디작은 말을 건넬 뿐이다. “나랑 같이 집으로 가자. 세라!” 말 한마디가 밤을 낮으로 바꾸듯 세라의 삶을 진흙탕에서 건져 올려 구원에 이르게 한다. 우리네 일상은 거대한 음성들이 지배하는 듯 보여도 대다수 삶은 ‘이처럼 사소한 말들’이 채워 낸다. 다중을 향해 일방에서 쏟아내는 주장들은 떠다닐 뿐 사회적 의미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 정작 세상을 움직이는 말들은 펄롱이 들은 나지막한 음성이다. “아저씨, 우리 좀 도와주시겠어요?” 펄롱은 이 소리와 함께 들린 내면의 소리에 행동으로 응답한다.

 

인천은 도움을 청하는 낯선 음성이 늘어나는 도시다. 낯선 외국어에 익숙해지라고 등 떠미는 ‘외국어 친화 도시’보다 다정하게 말하는 인천은 어떤가? 우리끼리 쓰는 같은 말이 다르고 생경한데다가 거칠어지고 있다. <말에 구원받는다는 것>에 나온 표현을 빌리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 어떤 기분 나쁜 말들이 넘쳐흐르는 데 맹렬한 위기감”부터 느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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