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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론] 배다리 지하차도

최재용 인천연수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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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다리’라는 우리말이 있다. 이는 ‘작은 배 여러 척을 한 줄로 띄우고 그 위에 널판을 건너질러 깐 다리’나 ‘교각(橋脚) 대신 널조각을 놓아 만든 다리’를 말한다.

 

정식으로 다리를 만들 시간이 없을 때 급하게 작은 배들을 이어 다리 구실을 하게 하거나, 물길이 넓지 않아 널조각으로 다리를 대신했을 때 이르는 단어다. 따라서 배다리는 땅 이름으로 쓰였다 해도 본래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이고, 강원 강릉시나 충남 공주시 등 우리나라 여기저기에 이 이름을 가진 곳들이 있다.

 

인천에도 동구 금곡동 경인전철 다리 아래 일대에 배다리라는 동네가 있다. 이곳에는 옛날에 인근 괭이부리 쪽에서 갯골을 따라 바닷물이 흘러들어왔기에 배다리가 놓여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모양으로, 어디에, 언제까지 놓여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사진이나 영상 자료가 아직 발견된 바 없고, 이에 대한 옛 분들의 기록이나 증언도 엇갈리기 때문이다.

 

어쨌든 예전 이곳에 배다리가 있었으니 동네 이름이 배다리가 됐을 텐데, 이젠 머리가 허옇게 센 인천 토박이들에게 이곳 배다리는 보통명사가 아니라 고유명사라 해야 옳다. 그들의 젊은 날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숱한 추억들이 그 이름 속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일대에는 1897년 있었던 경인철도 기공식(起工式) 자리, 개교한 지 100년이 훌쩍 넘은 영화학교와 창영초등학교 등 많은 역사 유적이 있다. 하지만 이곳은 그 무엇보다 헌책방 골목으로 유명했다. 1970~80년대에는 50여곳의 헌책방이 모여 있어 이곳을 자주 찾아온 학생과 시민들, 특히 청춘(靑春)들에게 많은 사연을 안겨줬다.

 

지금은 많이 쪼그라들었지만 그래도 1973년 문을 연 ‘아벨서점’을 비롯해 10여곳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곳에서 2022년 착공한 ‘숭인 지하차도’가 내년 준공을 목표로 공사 중이다. 이 지하차도는 중구 신흥동~동구 송현동을 잇는 산업도로의 일부다.

 

주민들은 이 지하차도가 배다리의 역사·문화적 분위기를 해칠 것을 걱정해 강하게 반대했었다. 이 때문에 인천시가 차도 계획을 세우고도 20년 넘게 진행을 못 했다. 그러다가 ‘지하차도 위에 문화센터와 공원 건설’ 등 여러 조건에 어렵게 합의가 이뤄지면서 공사가 시작됐다.

 

그런데 최근 동구 의회의 유옥분 의장이 임시회 의정 발언을 통해 ‘숭인 지하차도’라는 이름을 ‘배다리 지하차도’로 바꿔야 한다고 제안했다. 지극히 당연하고 타당한 제안이 아닐 수 없다.

 

시민들은 물론 인천시나 관할 동구도 그 뜻을 잘 모른다는 ‘숭인’이라는 이름이 붙을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땅 이름은 그 지역의 역사와 특성을 담은 문화적 표현이다. 또 세대를 넘어 전해지면서 주민들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담아내는 소중한 그릇이 되기도 한다. 그런 이름을 ‘듣도 보도 못한’ 것으로 마구 지을 수는 없지 않은가.

 

배다리에 아련한 추억을 여럿 간직한 인천 토박이로서 유 의장의 제안대로 지하차도의 이름이 정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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