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지역 3·1 만세운동 발상지… 전국 유일 ‘2일간의 해방’ 이뤄
3ㆍ1운동이 일어난지 올해로 100년이 되었다. 안성에서 일어난 3ㆍ1운동은 원곡면과 양성면에서 4월 1일부터 2일까지 2일간 일제를 몰아내고, 전국에서 유일하게 ‘2일간의 해방’을 이뤄어 낸 곳으로 역사적 의미가 깊은 곳이다.
안성에서 처음으로 만세운동이 일어난 날은 1919년 3월 11일이다. 이날 오전 11시경에 양성공립보통학교(현 양성초등학교)의 학생들이 운동장으로 나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기 시작했다.
당시 양성면 덕봉리 출신으로 서울에서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를 다니던 남진우 학생은 같은 마을 출신으로 선린상업학교(현 선린인터넷고등학교)를 다니던 고원근 학생과 함께 양성공립보통학교를 찾아가 학생들에게 서울에서 3ㆍ1운동이 일어난 것을 알려준 것이다. 그리고 일본인 교장의 만류를 뿌리치고, 조회시간에 한국인 교사와 학생들과 함께 운동장에서 만세를 외쳤다. 이날의 독립만세시위는 이후 안성장터와 안성공립보통학교로 번졌고, 4월 1일 원곡면, 양성면 독립 만세시위의 시작점이 되었다.
100년이 지난 지금 양성초등학교에서는 ‘함께 기억하는 100년 전 그날’ 기념식을 열고, 태극기 만들기 체험프로그램, 만세재현 행사, 독립선언서 낭독을 3월 11일 진행했다. 특히 양성초등학교 5~6학년 학생들이 함께 독립선언서를 낭독해 3ㆍ1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기르는 뜻깊은 시간이 되기도 하였다.
작년 겨울에는 현매초등학교 학생들이 직접 탐방해 양성초등학교에서 만세운동 흔적을 찾기도 하였다. 현재 양성초등학교에는 비석만 세워져 있을 뿐 만세운동 항쟁지였다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뿐더러 남진우 학생의 기록도 마을에 별로 남아 있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당시 지도교사였던 허영훈(안성 광덕초 교사)은 “지역사회와 연계해 나가면서 잊혀져 있고 망각된 기억들을 함께 콘텐츠화 해나가는 작업을 통해 독립운동의 마을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용한 화성 고정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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