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애 경희대 의대 본과 1학년 학부모
사나이로 태어나서 유의미한 인생을 살고 싶다는 아들은 의대에 진학했다. 주변에서는 찬사와 함께 의대 6년 과정을 잘 버티라는 조언도 빼놓지 않았지만 부모로서는 한 과목이라도 낙오하면 한 학년을 다시 이수해야 하는 엄격한 학칙과 경쟁이 염려스럽기만 했다. 다행히 예과 1~2학년을 무사히 마치고 본격적인 실습이 기다리는 본과 1학년을 맞이하는 올해는 마음의 준비도 남달랐다. 하지만 모든 단과대학이 시작하는 시기에 의과대학은 개강은 커녕 스산하기까지 했다.
보건복지부는 전공의들을 강제하고, 공공재 취급하는 기사가 나돌고, 의대 증원 광고가 곳곳에서 방영됐다. 지금도 열악한 학습환경에서 학생들을 60% 이상 증원시켜 대안으로 2부제, 3부제 혹은 온라인 강의까지 들고 나왔다.
6년 의대 과정을 마치고 일반의사 면허를 취득하고 본격적인 전문의과정을 4~5년간 밟는 동안 상급병원에서 붙박이로 쪽잠을 자면서 주 80여시간을 최저시급도 안 되는 봉급으로 인내하는 전문의 과정을 사람들은 잘 모른다. 한 사람의 인정받는 의사가 된다는 목표와 보람으로 인내하는 것이다. 거기에 군의관 38개월의 병역의무가 기다리고 있다. 한 사람의 의사를 만드는 데 14년의 세월이 필요한 것이다.
정부는 지지율 상승을 위해 파격적인 의대 증원을 발표했다. 고교수험생이 100만명 이상이니 그 가족까지 감안하면 선거에 압승하리라고 생각한 듯하다. 대한민국 모든 수험생이 의대를 희망하지 않듯이 선거정책은 실패했다. 정권마다 의료계를 흔들고 필수의료지원을 약속했지만 예산이 없다고 지켜지지 않은 정책에 학습된 의대생이나 전공의들은 정권을 불신하기 시작했다. 아들도 자신이 선택한 직업에 대한 회의와 정부의 의사에 대한 악마화에 상처받고 의욕을 잃기 시작했다. 멀쩡하게 잘 달리던 자식의 좌절이 분노로 다가왔다.
매번 정부는 의료계와 한 약속을 지킨 적이 없다. 세월 따라 늘어나는 규제 속에 아직까지 완벽하게 의사를 손아귀에 못 넣었을 뿐이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본인의 노력과 경비로 의사가 됐는데 정부가 마음대로 부린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저 열심히 살겠다는 아들을 가진 부모로서 젊은 인재들이 한창 좋은 날에 원하는 학업을 마음껏 하지 못하고 이 골목 저 골목 기웃거리고 알바 자리를 찾아 다니는 게 가슴 아프다. 카페, 호텔 연회장, 택배 알바, 심지어 공사장까지 기웃거리는 이들은 돈이 아쉬워서가 아니라 황금 같은 청춘의 시간을 붙잡고 싶어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전국의대생학부모연합이 8월15일 의대교육 정상화를 호소하는 궐기대회를 준비 중이다. 부디 윤석열 대통령은 젊은 의학도들과 싸우지 말고 큰 그릇으로 작은 그릇을 담아내듯이 어른스럽게 이들의 말을 두 귀로 두 배로 듣고, 한 입을 반으로 줄여 소통해 얽힌 실타래를 풀어주기를 간절히 소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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