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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오디세이] 주례사 비평은 잘못인가

고광식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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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의 위기를 말하는 것 중 하나가 주례사 비평이다. 문학평론가는 작품을 평할 때 엄격하게 장단점을 말해야 올바른 평론이 된다. 그런데 비평이 마치 결혼식 주례사처럼 듣기 좋은 말만 늘어 놓아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비평의 존재 이유가 없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문학평론을 하는 사람들은 현장 비평가다. 문학평론가는 매일 생산되는 수많은 문학작품을 대상으로 현실적 가치에 질문을 던져보는 사람이다. 비평은 텍스트들이 현실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를 분석하고 새로운 답을 찾아가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문단에서는 평론가들이 이러한 임무를 저버리고 지나치게 칭찬만 해 잘못을 저지른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끊임없이 회자되는 주례사 비평은 과연 잘못인가.

 

어느 날 몇 명의 문학평론가가 인천의 한 음식점에 마주 앉았다. 젊은 평론가 M이 시집 해설을 쓰고 난 후 일어난 일화를 들려줬다. M평론가는 시집 해설을 의뢰받고 평론가의 자의식으로 솔직하게 해설을 썼다고 한다. 요즘 문제시되는 주례사 비평이 아닌 시의 작품성 위주로 평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시를 분석하니 시집은 혹평이 됐다. 그 후 시집의 저자인 시인에게 전화상으로 M평론가는 상스러운 욕을 먹었다. 이 젊은 평론가는 정말 주례사 비평을 싫어했다. 또 다른 예도 들려줬다. 출판사로부터 의뢰받은 시집 해설을 쓸 때의 일이었다고 한다. 이 역시 문제점 위주로 시를 평가했다. 그리고 시집 출판기념식에서 저자인 시인으로부터 M평론가는 멱살을 잡히고 육두문자를 들어야 했다. M은 평론가로서 자의식이 확실한 자신을 거듭 강조했다.

 

현재는 폐간을 한 모 권위지에서는 매호 작가 특집 코너가 있었다. 문예지에서 그 호에 특집으로 다룰 작가는 이름이 알려진 소설가였다. 특집 대상의 소설가는 평론가의 평가에 기대를 많이 했다. 당연히 우리 시대를 대표할 만한 소설가였기 때문에 긍정적인 평가를 기대하며 문예지의 발간을 기다렸을 것이다. 하지만 특집의 평론을 맡은 B평론가는 해당 작가의 작품세계를 혹평했다. 특집 대상의 작가는 한 번도 받아보지 않은 혹평을 받고 큰 상처를 받았다. 그는 늦은 밤 만취해 울분에 찬 목소리로 문예지 편집위원에게 전화를 걸어 절필 선언을 하고 말았다. 문예지의 특집이 되는 작가들은 평론가들로부터 빛나는 조명을 받는다. 문학 장 안에서의 문예지와 평론가 그리고 작가의 카르텔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특집의 대상이 되면 작가는 문단에서 지위가 상승한다. 그런데 B평론가의 혹평이 한 작가의 자존감을 처참하게 무너뜨리고 만 것이다.

 

위에서 예를 든 두 명의 평론가는 자의식을 갖고 해당 작품을 평가했다. 문단에서 문제시되고 있는 주례사 비평을 하지 않았다. 한국 문학의 발전을 위해 작품에 대한 평가는 냉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두 명의 평론가는 칭찬받아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필자는 시집 해설과 문예지 특집의 작품론은 성격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문예지의 특집은 B평론가처럼 자의식을 갖고 작품의 문제점에 대한 분석과 비판을 할 수 있다. 비평은 감시받지 않는 절대 자유 속에서 대상 텍스트를 평가해야 한다. 작품의 문제의식과 인간의 다양한 욕망 그리고 부조리를 실존적 의미와 결부해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비평의 문장은 결기와 파열음이 가득해야 존재 이유가 확실해진다. 필자가 편집인으로 있는 시와 비평 전문지 포엠피플에 ‘문제적 비평’이라는 코너가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집 해설일 경우는 다른 시각이 필요하다. 시인이 시집을 출간하는 것은 매우 큰 축제에 해당한다. 시인은 자신의 시집 출간을 최대한 축복받고 싶어 한다. 문단에서 평론가로부터 평가받는 작가는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가 말한 아비투스 자장 안에서 문단은 작동한다. 따라서 문학 장 안에서의 헤게모니 투쟁의 승자는 소수의 스타급 작가다. 비평의 대상은 이들로 국한돼 있다. 하지만 비권위지 출신의 시인이 평론가로부터 평가받을 수 있는 순간이 있다. 바로 시집을 출간할 때다. 시인들은 기대에 부풀어 섭외한 평론가의 평가를 기다린다. 문단에서는 비권위지 출신이지만 개성이 강하고 작품성이 높은 시를 쓰는 시인이 많다. 이들의 문학에 대한 열망은 매우 높고 자존심도 강하다. 시집 출간이라는 자신의 축제에 M평론가처럼 혹평을 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시집 출간이라는 축제의 측면에서 보면 M평론가는 잘못을 저질렀다. 필자는 시집 출간을 할 때는 시인의 축제에 참여했으므로 문학적 열망과 결과에 대한 답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게 옳다고 본다. 다만 작품론이나 작가론을 쓸 때는 평론가의 자의식으로 냉정하게 평가하는 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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