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파기환송 판결 놓고 음모론 확산 선거 한달 앞두고 중립의무 위반은 유감 경계하되 근거없는 얘기 휘둘리지 말아야
4월4일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전 대통령을 파면하면서 한국의 정치 불안 상황은 상당 부분 해소됐다. 그러나 5월1일을 계기로 상황은 또다시 달라졌다. 대법원이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에 대한 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2심 무죄 판결을 뒤집고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것이다. 중요한 선거를 한 달 정도 앞에 뒀다면 정상적으로 진행되던 재판도 선거 이후로 일정을 연기하는 것이 적절하다. 그러므로 대법원의 행보는 의도적인 선거 개입으로 해석하는 것 외에 다른 설명을 찾을 수 없다. 다만 대법원이 공정성과 중립성, 합리성 등에서 크게 벗어났다고 해서 우리 사회 전체가 과도한 음모론에 빠져들고 과격한 대응에 나서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이번에 대법원이 선거중립의무 위반이라는 실수를 저지른 것은 유감이다. 대법원은 이번 실수와 관련해 앞으로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이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예단하기 어렵다. 특히 윤 전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음모론으로 단정하기에는 어색한 요소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대법원이 내릴 수 있는 판결 중 무죄 확인과 파기환송도 있지만 파기자판도 있었다. 파기자판으로 유죄와 더불어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면 이재명 후보는 선거판에서 즉시 퇴출됐을 것이다.
일부에서는 민주당이 선거에 참여할 수 없도록 시기 조절 차원에서 파기환송을 선택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파기자판으로 이재명 후보가 낙마하면 민주당에서 다른 후보를 내세워 선거에 참여하는 시나리오를 차단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건을 담당하게 된 서울고법이 대법원처럼 법 절차와 국민 감정을 무시하고 재판을 초고속으로 진행하지 않으면 조희대 음모론은 속절 없이 무너진다. 서울고법 판사들은 과연 대법원장 지시에 따라 재판을 속전속결로 진행해 대법원이 6월3일 이전에 최종 선고를 할 수 있도록 협조할 것인가. 그리고 국민적 지탄을 받으면서 평생 손가락질을 받고 살 것인가. 아마 그들은 대법원처럼 선거에 개입하는 상황에 대해서는 불편해할 것이다.
지난번 헌법재판소가 최종 결정을 선고하기에 앞서 제기됐던 음모론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헌법재판소가 3월 중순에 결정을 발표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재판관들의 정치 개입 가능성을 제기했다. 재판관 8명 가운데 5명은 파면에 찬성하지만 3명은 반대하는 상황이어서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은 기각될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4월4일 헌재 판결문을 보면 그런 음모론은 전혀 근거가 없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오히려 헌법재판관들이 민주주의와 헌법 가치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 심의했고 현명하고 신중한 결정을 내렸다는 점이 확인됐다. 근거없는 음모론에 부화뇌동하면서 재판관들을 상대로 극단적인 언어를 동원해 인격모욕을 자행한 사람들은 자신의 경박함을 꾸짖고 평생 반성과 성찰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제 다시 조희대 음모론을 생각해보자. 그 음모론에는 대법관을 포함해 대한민국 주요 판사들이 윤 전 대통령 지시에 따라 좀비처럼 움직인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그렇다면 3심에서 파기자판을 하지 않은 것과 2심에서 이재명 후보 무죄가 선고된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윤 전 대통령이 극적인 효과를 노리기 위해 일부러 복잡한 각본을 채택했다는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대법원 판사들이 중대 오판을 저질렀지만 음모론에 봉사하는 차원은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기득권 세력의 이권 보호나 자존심 확인 차원에서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상황을 무기력하게 바라볼 수 없다는 아집의 표출, 또는 저항 차원에서 분석하는 것이 더 설득력을 얻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법원 실수에 대해 최고의 경계심은 필요하지만 과격 대응은 자제해야 할 것이다.
일부 어리석은 자들이 저열한 행동을 한다고 해도 우리 국민은 고도의 품격을 지키면서도 가장 효과적인 대응책을 찾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은 최상급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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