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선 심산기념사업회장前 관세청장
■ 중국 변방 ‘다퉁’의 ‘K-푸드’ 한국 식당
현공사를 다녀와서 다퉁(大同) 시내 숙소에 늦게 도착했다. 다퉁의 한국 식당을 검색해 보니 ‘수얼가’(서울식당)라는 식당이 나온다. 중국의 변방에 한국 식당이 있음에 감사하면서 수얼가 식당에서 김치찌개를 시켰다. 김치찌개라기보다는 설탕 국물에 가깝다. 배가 고파 웬만하면 먹을 텐데 저녁식사는 포기했다.
식당의 젊은 여자 주인에게 “한국 음식 조리법을 어디서 배웠느냐. 한국 음식을 과거 먹어본 적이 있냐”고 물어봤다. “한국 음식 조리법은 인터넷에서 배웠다. 한국 음식을 먹어보거나 한국에 가본 적이 없다”고 대답한다.
10년 전인 2014년 한류가 유행할 때 무턱대고 한국 식당을 개업했는데 현재까지 10년 동안 장사가 잘된다고 한다. ‘K-푸드’로 먹고사는 사람이 내몽골 변방에 있다니 한류의 힘이 대단하다.
길거리 노점상에서 양고기 꼬치구이로 저녁을 대신했다. 유목지대와 가까워 많은 노점상이 양고기 샤슬릭 구이를 팔고 있다. 샤슬릭 요리에 들어가는 향신료 양념이 타는 매캐한 냄새와 연기가 거리에 자욱하다.
일요일 아침 일찍 산시(山西)성 다퉁을 떠나 약 400㎞ 남쪽 ‘평요’로 향한다.
화북평야의 넓은 들판에 옥수수밭이 끝이 없다. 화북평야에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가 있다.
과거 ‘오고타이 칸’(제2대 몽골 황제)이 금나라를 정복했다. 오고타이 황제는 농사짓는 농부를 쫓아내고 화북지방에 초지(草地)를 조성해 양, 말, 소 등을 키우도록 부하에게 지시했다.
당시 재상이던 야율초재가 농토를 보전해 세금을 징수하는 것이 초지를 만들어 양과 소를 키우는 것보다 나라 재정에 도움이 된다고 황제를 설득해 초지 조성을 철회했다는 일화가 있다. 왕에게 간언을 잘하는 신하와 간언을 잘 듣는 왕이 만나면 성공의 역사를 만든다.
평요로 가는 고속도로 양옆은 넓은 폭의 가로수숲이 계속 조성돼 있다.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만리장성의 흔적을 찾으려 했으나 찾을 수가 없다. 현재 남아 있는 만리장성은 20% 미만이고 50% 이상은 완전히 사라졌다고 한다.
만리장성은 중국 춘추전국시대 북방 유목민과 국경을 맞대고 있던 조나라, 연나라, 진나라가 축성했다.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고 확장 연결한 것이 최초의 만리장성이다.
현재 관광객이 보는 베이징 근처 바다링(八達嶺), 하서회랑의 자위관(嘉峪關)은 명나라가 세운 것이다.
중국의 고속도로 휴게소는 시설에 따라 등급을 붙여 4등급, 5등급 휴게소라는 표시를 도로변에 붙여 놨다. 우리는 시설이 좋은 5등급 휴게소 간판을 보고 들어간다. 우선 5등급 휴게실은 시설이 크고 식사 메뉴도 다양하다. 특히 화장실이 청결하고 사용료를 안 받는다.
자본주의 시장 논리를 통해 휴게소를 청결하게 만들려는 인센티브 정책이다.
■ 타이항산맥 우타이산과 혜초 스님
험준한 타이항산맥을 종단해 남쪽으로 달린다. 고속도로 왼쪽에 중국 4대 대승불교 성지의 하나인 우타이(五臺)산이 나타난다. 우타이산은 문수보살이 현신하는 산이다.
문수보살은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로 반야경을 편찬한 보살로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 세조 임금이 피부병을 고치러 전국을 순회하던 중 강원도 오대산 상원암 가는 계곡에서 동자로 현신한 문수보살을 만나 피부병을 고쳤다는 설화도 있다.
천축을 다녀온 신라의 구법승 혜초 스님(704~787년)은 우타이산 건원보리사에서 입적했다.
혜초 스님의 인도 여행기 ‘왕오천축국전’이 둔황석굴에서 발견됐다.
책 제목 ‘왕(往)오(五)천축국’은 ‘동·서·남·북·중앙’ 5개 천축(天竺) 지역을 다녀왔다는 뜻이다.
혜초는 16세에 신라 계림에서 당나라에 유학 와 스승의 권유로 20세인 723년 중국 광저우에서 해로(海路)로 인도로 갔다.
혜초는 4년간의 천축 여행을 마치고 파미르고원을 넘어 서역북로, 둔황, 시안(西安)을 거쳐 우타이산 건원보리암으로 다시 돌아왔다. 필자는 혜초 스님이 1300년 전 중국으로 귀환했던 길을 역순으로 여행할 계획이다.
■ 명나라 시대 축성한 ‘평요고성’
오후 늦게 평요(平遙)고성에 도착했다. 평요고성은 1370년 명나라 때 축성한 성으로 현재 중국에서 가장 잘 보존된 성이라고 한다. 성곽의 길이는 6㎞, 성 위는 마차 두 대가 다닐 정도의 넓이다.
구운 벽돌을 쌓아 만든 성이다. 성곽에 올라가는 요금은 100위안(1만9천원)으로 매우 비싸다. 성곽 입장료가 비싸니 성곽 위에 올라가는 관광객은 많지 않다.
변방에 위치한 관계로 중국 문화혁명 때 홍위병에게 파손이 안 돼 명, 청 시대의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한 도시라고 한다. 오랜 세월의 풍상을 견뎌낸 고건물, 상가, 관청, 민가 건물 등이 고풍스럽다. 우리는 청나라 시대의 여관인 평요객잔에서 묵는다. 청나라 전통가옥의 구조와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여관 바로 옆에 공자를 모시는 문묘와 대성전 건물이 있다.
공자에게 제사를 지내던 대성전 건물은 저녁식사, 전통문화 공연 등 상업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평요고성 안에 3천700채의 상가와 민가가 있는데, 모두 명, 청 시대에 만들어진 고(古)건물이다. 긴 세월 동안 전란과 화재를 피하고 잘 보존한 점에 경외감이 든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시내 중심에 현(縣) 청사가 있고 청사에서 현감과 형방, 포졸 등이 죄인을 취조하는 공연을 한다. 현청사 안은 현감 근무실, 군대 연병장, 감옥, 식당 등 과거 시설을 잘 보존하고 있다. 현청사 입장료는 40위안(약 8천원)으로 비싸다.
중국은 관광업무를 담당하는 중앙부처 이름을 종전 ‘여가국’에서 ‘관광여가국’으로 변경했다.
중국의 관광지 입장료가 비싼 이유는 과거 ‘외국인은 비싸게, 내국인은 낮게’ 이중적 차등 요금제를 적용했는데 현재는 내국인 입장료를 외국인 요금으로 인상해 통일했다고 한다. 재정 수입 확대를 위한 자본주의 경제의 단면이다.
댓글(0)
댓글운영규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