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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푸대접

노벨문학상은 해마다 발표 전 수상이 예상되는 유력 작가들의 작품을 미리 준비하는 게 출판계의 관행이다. 그런데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헤르타 뮐러의 작품집이 한국 서점가에선 보이지 않는다. 국내 어느 출판사도 뮐러의 책을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벨문학상 발표 직후 출판사들이 앞다퉈 수상자의 책을 쏟아내며 마케팅을 펼치던 예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이전에도 수상 작가들 중에 대중성이 떨어지는 이들이 있었지만 국내에 작품이 소개되지 않은 경우는 거의 없었다. 2004년 수상자 엘프리데 옐리네크도 국내 독자들에게 생소하고 작품도 난해했지만 이미 ‘피아노치는 여자’(문학동네)가 출간된 상태였다. 그러나 뮐러는 그림에세이집 ‘책그림책’(민음사)에 실린 짧은 에세이 한 편이 수상자 발표 전 국내에 처음 소개된 유일한 번역본이다.

 

수상자 발표 후 뮐러의 작품이 소개된 것은 월간문예지 ‘현대문학’ 11호 지면이 유일하다. 하지만 뮐러를 특집으로 조명하면서 작품을 일부 발췌해 최소한의 글맛만 보여 주었다. 1984년 출간된 대표작 ‘저지대’에 수록된 단편 ‘조사’와 1994년 출간된 장편소설 ‘마음 속의 동물’ 일부, 올해 출간된 ‘숨 쉬는 그네’ 일부를 발췌 번역한 것이 전부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이유는 있다. 헤르타 뮐러의 작품은 참여문학 계열이라서 그런 배경을 알지 못하면 작품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고 한다. 뮐러를 특집으로 다룬 ‘현대문학’도 “뮐러의 작품은 묘사가 시적이고 아름답기는 하지만 대중성은 떨어진다”고 작품집 출간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한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라는 높은 프리미엄이 있는데도 출판사들이 수익성을 염려해 뮐러의 작품을 출판하지 않아 그의 작품을 국내 독자들이 읽을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뭘러는 독일 문단에서 대중성은 높지 않지만 일정한 독자층을 갖고 있는 중요한 작가로 알려졌다. 독일 문단에서 인기가 적다 하여 세계적으로 그렇게 평가받는 건 아니다. 더구나 책은 출간돼 봐야 독자들의 관심 유무를 알게 된다. 국내 독자들이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해외 작가들의 작품들을 두루 만나볼 수 있는 출판 환경이 조성돼야  문화선진국으로 갈 수 있다. 헤르타 뮐러의 작품을 읽고 싶다./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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