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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를 아는 지혜

2010년의 봄은 참 이상하다. 때맞춰 와야 할 것들이 잘 오지 않고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자꾸 벌어진다. 4월 중순을 넘어서면 벚꽃도 한풀 꺾이고 햇살이 약간은 따갑게 느껴지기도 해야 할 터인데 때를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쳐 한꺼번에 피어버린 개나리, 진달래, 목련, 심지어 매화꽃 사이에 벚꽃이 섞여 있다. 하늘은 파란 날보다 회색인 날이 더 많고 봄 같지 않게 옷깃을 여미게 만드는 바람도 자꾸 분다. 기상청의 설명에 따르면 꽃샘 추위가 길어지고 일조량이 부족해서 봄꽃 개화 시기가 당초 예상보다 늦어졌다고 한다. 제 때를 기다리다 뒤늦게 한꺼번에 몰려 핀 봄꽃들을 보니 ‘때’를 알고 ‘때’에 맞춘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새삼 생각하게 된다.

 

인간의 일평생을 두고 때를 말할 때 ‘생애주기’라는 용어가 종종 사용된다. 인간의 일생을 태어나서 성인이 될 때까지의 성장기와 성장이 완료된 이후의 성인기, 그리고 퇴화가 진행되는 노년기로 크게 구분해보면 각 주기 별로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이 달라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진다. 그래서 요즘에는 건강관리나 영양관리 같은 것도 생애주기에 따라 달리 조언해주는 추세이다. 성장기에는 올바른 식습관과 건강한 신체발달에 신경을 써야 하지만 성인기가 되면 혈압이나 콜레스테롤 수치, 허리둘레 관리가 중요해지고 노년기에 접어들면 치매와 골다공증, 관절염을 염려해야 하는 것이다.

 

생애주기라는 개념은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건축물은 빈 토지에 건물이 신축되어 안정기를 거쳐 노후 건축물이 되고 수명을 다 한 후에 철거되는 생애주기를 거친다. 가족의 생애주기는 미혼 상태에서 결혼을 하면 신혼부부기가 되고 자녀를 낳고 기르며 중년부부기, 노년부부기를 거쳐 배우자를 잃은 후 다시 혼자가 되는 단계를 밟는다. 사람이건 가족이건 건축물이건 생애주기에 맞춘 적절한 대응과 관리가 있어야 한 생애가 원만하게 마무리될 수 있다.

 

최근의 천안함 침몰 사건을 지켜보면서 사회적인 사건이나 사고에도 일종의 생애주기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건사고는 짧은 시간 동안 뉴스나 신문 지면을 장식하다가 다른 사건사고로 대체되기 때문에 전체 생애주기를 지켜 볼 기회가 없다.

 

그런데 이번 천안함 사건은 벌써 3주일 이상 각종 언론 매체의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침몰 원인 규명과 실종자 수색, 함체 인양, 희생자에 대한 예우와 보상, 장례 절차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해결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으니 앞으로도 몇 주일 간 언론의 관심이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반 국민들의 평가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다.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으로 보인다. 국방부를 비롯한 정부 부처는 사건 발생 시각과 경위 파악에서부터 구조와 수색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노력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제 때를 맞추지 못하는 답답한 모습을 보였다. 정말 제 때 이루어진 조치가 있다면 오히려 실종자 가족들이 더 이상의 희생을 원치 않으니 수중 수색을 중단해 달라고 요청했던 일이다.

 

대부분의 실종자가 시신으로 돌아오고 함체와 기타 잔해물들에 대한 분석이 진행중인 이 시점은 사건의 생애주기에서 중반을 지난 시기에 해당할 것이다. 사람도, 가족도, 건축물도 전체 생애주기의 중반 이후에는 더 신중해지고 복잡해지고 고려할 것이 많아진다. 해마다 기온과 일조량을 봐가며 최대한 제 때를 맞추려 고심하는 봄꽃들로부터 ‘때’를 아는 지혜를 배워야겠다.  

 

/손영숙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 성평등교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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