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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4 (금) 메뉴 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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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태준

한낮에 덩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입이 뾰족한 들쥐가 마른 덩굴 아래를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갈잎들은 지는 일로 하루를 살았다

 

오늘은 일기에 기록할 것이 없었다

 

헐거워지는 일로 하루를 살았다

 

나는 식은 재를 손바닥 가득 들어 올려보았다

 

산골에 들어 하루 종일 아무 짓도 안하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시간은 저렇게 고요히 타서 발 앞에 재로 쌓일 것이다. 너무 한가해서 오늘 무슨 일로 살았는지 모를 만큼 하루가 흘러갔다면 그곳은 이미 선계이다. 우리가 빠듯한 시간을 헐겁게 풀어 놓을 수 있다면, 저렇게 하루를 태운 시간의 재가 다시 타서 기나긴 한 생의 시간을 더 살고도 남으리.  <이덕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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