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결이자 물의 결… 우주 삼라만상의 어울림
이 그림의 첫 인상은 어떤가요? 가장 먼저 무수한 점들이 보이지 않나요? 물론 그 점들 사이에 하나의 선으로 서 있는 인물이 인상 깊을 수도 있을 거예요.
어린아이의 그림 같기도 해서 말이죠. 오경영의 목판화는 다른 판화가들과는 달리 넓적한 끌칼을 주로 사용해요. 찍어 밀거나 당기는 힘만으로 판각을 하는 셈인데 그래서 태점이 많이 남게 되죠.
사실 끌칼은 목판화에서 여백을 마무리하거나 다듬을 때 외에는 거의 쓰지 않아요. 그런데 그는 형상에서 여백처리까지 이 끌칼을 고집해요. 독특한 태점들이 난무하는 것은 그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이 작품은 그의 여러 작품들 중에서도 태점의 극치를 보여주는 작품이에요.
이렇듯 화면을 무수하게 떠도는 태점이 그의 작품을 감상하는 첫 번째 포인트라면, 두 번째는 순수하게 읽히는 유희적 선들이 작품의 회화성을 한껏 끌어 올리고 있다는 점예요. 유쾌한 상상으로 가득 찬 그림 속 이미지들과 어울려서 자유롭게 교차하는 선들은 그의 ‘흥얼거림’과 다르지 않죠.
그는 목판에 직접 드로잉을 해요.
아마도 그 몰두의 순간들은 어떠한 잡생각도 개입하지 못하는 순수한 창작의 무아지경이 아닐까 해요. 바람과 같이 혹은 물과 같이 흘러가는 투명한 자의식의 심연(深淵)이겠죠.
화면을 떠도는 무수한 태점들은 그러므로 그 바람의 결이요, 물의 결이며 그의 내부를 유영하는 어렴풋한 숨결의 형상들이 아닐는지요. 우리는 바람과 물결에서 그 ‘숨결’의 이미지를 바로 연상할 수 있을 거예요. 숨결은 모든 생명들의 숨이며 결이니, 우주 삼라만상의 ‘온생명’과 ‘낱생명’이 한데 어우러지는 어울림의 생명현상이 분명해요.
오경영은 예술가로서의 ‘참나(眞我)’가 무엇인지 묻고 또 물었죠. 그가 ‘숨결’이라는 주제의식을 깊게 파고들어가 만난 것은 참된 진여의 세계로서의 ‘하늘’이었어요. 그의 작품에는 이렇듯 어린아이가 그린 듯한 그리스도는 물론이요, 새, 두더지, 호랑이, 말, 닭, 소와 같은 동물들이 너무도 천진한 모습으로 많이 등장해요.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보았던 청빈한 자의 그 맑은 눈빛을 잊을 수가 없어요.
김종길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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