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 컷, 한 컷… 생생한 ‘이웃 사랑’ 찰칵
독거노인과 미혼모 자녀 등 어려운 이웃에게 무료로 사진을 찍어주는 권오기(44) 애니포토 대표는 ‘사진은 인생’이라고 표현한다. 노인을 찍을 때는 그동안 살아온 삶이 사진 속에 묻어나고 아이를 찍을 때는 앞으로 살아갈 미래가 사진 안에 담기기 때문이다.
휴대전화 카메라 덕분에 필름을 사고 사진관을 찾아 현상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사라져 이젠 누구나 사진을 찍지만, 아직도 가족사진, 돌사진, 영정사진과 취업사진을 찍기 위해서 사진관을 찾는다. 그러나 값이 만만치 않아 형편이 어려운 가정에는 그림의 떡이다.
무료 사진봉사는 이들을 위해 시작됐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가족사진을 찍기 어려운 가족이나 가족이 없는 독거노인들, 미혼모가 스튜디오를 직접 찾아오면 무료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 사진 한 장이 만드는 따뜻한 세상
무료 사진 봉사활동을 시작한 것은 6년 전인 2010년부터다. 지금까지 촬영한 대상은 약 800여명. 성남시청과 판교 등 경기도와 서울에 있는 11개 스튜디오에서 무료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봉사를 시작한 것은 어려운 이웃에게 희망을 줘 따뜻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다.
권 대표는 “누구에게는 고작 사진 한 장일 수 있지만 힘든 처지에 놓인 사람에게는 사진 한 장이 삶을 다시 시작하게 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고 힘든 하루를 버티게 하는 진통제 역할을 할 수도 있다”며 “사진 한 장이 갖는 가치는 차갑기만 한 사회를 따뜻한 세상으로 만들 수 있을 정도로 크다”고 강조했다.
중ㆍ고등학교 때 사이클 선수로 활동하며 사진과 연관이 없던 삶을 살다가 현재 사진가로서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고난의 시기에 우연히 찾아온 기회 덕분이었다.
학창 시절, 집은 가난했다. 영양보충이 가장 중요한 사이클 선수였지만 제대로 먹지 못했다. 잘 먹지 못해 체력이 달렸고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연습에 매진했다.
결과적으로 몸이 버티질 못하고 무너지기 시작해 사이클 선수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새 꿈을 꾸며 대학진학을 목표했다. 중ㆍ고등학교 때 운동만 해서 대학 진학 자체가 불가능했지만 굴하지 않았다.
담임 선생님에게 부탁해 추천서를 받고 학창시절 예체능계 몸담았던 경험을 살려 관련 대학과 학과를 찾기 시작했다. 우연히 경원대학교에 사진학과가 신설된다는 것을 알게 됐고 지원해 합격했다.
그는 “사진은 미술처럼 오랜 기간 준비가 필요하지 않았고, 시험도 이론위주여서 합격할 수 있었다”며 “오랫동안 했던 운동을 그만두고 몸도 많이 망가진 상태에서 힘들어하고 있을 때 사진과의 운명적 만남으로 지금 이렇게 좋은 일도 하는 것 같다”고 미소 지었다.
■ 사진 건내 줄 때마다 뭉클
사진은 적성에 맞았다. 특히 인물사진에 재능을 발휘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인물 사진 프로작가로서 삶을 살았다. 뛰어난 실력 덕분에 일이 많았다. 하지만, 고객이 많아질수록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갖지 못했고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사진을 찍고 수정하는 작업만 했다.
어느날 작게 만들어진 창으로 밖을 봤을 때 스튜디오가 감옥같이 느껴졌다. 창 밖에 있는 자유를 찾기위해 스튜디오를 정리하기로 결심하고 일반 영업 사진가로서 살기로 마음 먹었다.
일반 사진관을 시작하면서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세상과 단절된 스튜디오를 벗어나 가족, 주변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과거에 목회자를 꿈꾸며 그렸던 따뜻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다짐을 했다.
무료 사진 봉사를 하며서 가장 가슴이 뭉클한 순간은 사진을 찍은 사람들에게 현상된 사진을 전달할 때다.
그는 “현상 된 사진을 받고 가만히 들여다보는 사람들의 기쁜 표정을 보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지고 가슴이 뛰는 것을 느낄 수 있다”며 “이때는 정말 사진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고 좀 더 많은 사람을 찍어주고 싶다는 의욕이 샘솟는다”고 회상했다.
봉사활동을 하며 가장 잊을 수 없었던 때는 한 독거노인의 영정사진을 촬영했던 날이다. 그 노인은 아들이 있었지만, 아들과 함께 살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들도 해주지 못한 영정사진 촬영을 해줘 고맙다며 눈물을 흘리던 모습이 기억 속에 또렷이 남았다.
권 대표는 직원들에게 무료이기 때문에 사진을 더 잘 찍어야 한다고 당부한다. 어려운 이웃이 지친 삶을 이겨낼 수 있고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튼튼한 버팀목을 만들어 주고자 사진을 찍는 것이기때문에 더 신경 써서 촬영에 임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성의 없이 찍은 사진은 용기를 내 사진관을 찾은 사람에게 또 한번의 상처를 줄 수 있어 사진 찍을 때마다 늘 신중하다.
힘든 학창시절을 보내고 사이클 선수 생활을 포기하며 절망의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대학진학과 함께 시작한 사진으로 지금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사진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돕고 싶은 꿈이 있다.
그는 “지금 내가 할 수 있고 가장 잘하는 것은 사진찍기이기 때문에 이들을 돕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도록 가진 재능을 충분히 활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으로의 목표는 어렵고 힘든 사람들이 함께 기대며 의지하고 살 수 있는 ‘마을’을 만드는 것이다. 독거노인은 가족이 없어 늘 외롭고, 미혼모는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어 나가서 돈을 벌 수 없다. 이들이 서로 의지하며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게 꿈이다.
6년간 800여명의 사람들을 촬영했지만, 아직 더 많은 사람들의 사진을 찍고싶다. 공공기관을 통해서 소외계층에게 무료 사진봉사를 알리고 싶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권 대표는 “언론을 통해서 무료 사진 봉사에 대해 더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11개 스튜디오에서 일하는 사진가들은 모두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정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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