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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3 (목) 메뉴 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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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시론] 씨름 경기는 왜 무릎을 꿇고 시작할까?

전통스포츠인 씨름 경기는 무릎을 꿇고 시작한다. 이러한 경기방법은 치열한 샅바 싸움이 시작되면 서로 한 치의 양보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기 때문에 미리 상대에게 ‘예(禮)’를 갖추기 위한 의식 중 하나로 행해진다. 동양에서 무릎 꿇는 모습은 낯설지 않지만 다른 스포츠에서는 볼 수 없는 이색적인 모습이다.

특히, 좌식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서양 문화권에서는 일상생활에서 무릎 꿇는 일이 없기 때문에 외국인들이 우리나라를 방문하면 좌식문화에 불편을 겪곤 한다. 서양에서는 영국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을 때, 그리고 과거 신하들이 왕에게 경의를 표할 때 무릎을 꿇는다. 그것도 한쪽 무릎만 꿇을 정도다. 그만큼 무릎 꿇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일반적으로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신에게 기도를 드리거나 자신을 낮추고 상대에게 존경심을 나타낼 때, 혹은 굴복하거나 용서를 구할 때 하는 행동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한국에서조차 명절 때가 아니면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가 됐다. 그나마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장소가 바로 씨름판이다. 씨름판에서는 모두가 동등하게 무릎을 꿇고 경기를 해야 한다. 누구라도 예외 없이 모든 지위를 내려놓고 씨름판에 들어서야 씨름 경기를 할 수 있는 자격을 갖는다. 이렇게 인본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한 ‘씨름’이 한국에서 탄생한 것을 보면 우리나라가 왜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인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렇다면, 씨름은 언제부터 무릎을 꿇고 경기를 시작했을까? 그것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다만, 조선 시대 한양의 세시풍속을 기록한 유득공(1749~1807)의 《경도잡지 京都雜誌》제2권 『단오 端午』편에는 씨름 경기방법과 관련된 중요한 단서가 나온다.

“장안의 소년들은 남산 기슭에 모여 ‘씨름(角力)’을 한다. 그 방법은 두 사람이 각각 ‘무릎을 꿇고(其法兩因對)’ 왼손으로 상대방의 오른쪽 다리를 잡고 또 오른손은 각기 상대방의 허리를 잡는다. 그리고 동시에 일어서며 서로 힘을 겨룬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를 기준으로 한다면, ‘씨름’ 경기는 1800년대 전후부터 이미 무릎을 꿇고 샅바를 잡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1927년 조선씨름협회는 제1회 전조선 씨름대회의 첫 경기부터 무릎 꿇는 경기방식을 고집해왔다. 1983년 프로화된 ‘민속씨름’이 출범하면서도 그 전통은 이어졌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 아마추어 경기에서 샅바 잡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이유만으로 서서 샅바를 잡고 경기를 진행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그 당시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문화를 생각하지 못한 씨름협회의 잘못된 결정 때문이었다. 앞으로 동방예의지국의 위상에 맞게 씨름의 가치를 더 높이려면 무릎 꿇는 경기 모습을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씨름의 건승을 기원하며….

공성배 세계용무도위원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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