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세종에서 중종조에 이르는 동안 대마도, 파저강, 건주위, 이마차, 서북로구, 삼포왜란 등을 정벌한 역사를 기록한 것이다.
‘광해군일기’ 광해군 6년 7월29일 기묘조(己卯條)에 당시까지 사본의 형태로 유포되고 있었던 ‘국조정토록’은 광해군 6년 이후에 활자로 인출했음을 알 수 있으며 이익의 ‘성호사설’ 경사문(經史門)의 기록에서도 활자로 인출된 후에도 구해 보기 쉽지 않은 책임을 알 수 있다. 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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