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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페라투’, 흡혈귀 고전을 이 시점에 불러낸 이유 [영화와 세상사이]

지난 1월 미국의 영화 감독 로버트 애거스의 ‘노스페라투’가 극장가를 찾았다. 개봉 전부터 주목을 받았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바로 동명의 영화 리메이크 버전이라는 이유에서다. 이번 ‘노스페라투’는 독일 감독 프리드리히 빌헬름 무르나우가 연출한 1922년작의 두 번째 리메이크다.

 

친숙하지만 고리타분한 흡혈귀의 현대화

 

영화 '노스페라투' 스틸컷.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영화 '노스페라투' 스틸컷.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영화 속에 등장하는 올록 백작, 즉 노스페라투는 흡혈귀다. 설화와 민담 속 흡혈귀는 그간 매체 속에서 여러 이름으로 불려 왔다. 영어로는 뱀파이어로 부른다. 그 이명(異名)인 드라큘라와 노스페라투 역시 이제는 흡혈귀 하면 떠오르는 고유명사가 됐다. 대중에게 친숙한 흡혈귀 캐릭터는 여러 변주와 각색을 거치면서 오랜 기간 우리 곁에 살아 남았다.

 

드라큘라는 1897년 영국 작가 브램 스토커의 소설에서 처음 등장했고 이후 선보인 노스페라투는 영화화 작업에 있어 드라큘라의 판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제작진이 몇 가지 특징을 손봐 만들어낸 존재다. 또 2000년대 이후 등장한 ‘트와일라잇’ 역시 뱀파이어들의 로맨스를 소설과 영화로 풀어내 인기를 끌었던 시리즈다. 영화 ‘블레이드’ 시리즈에서는 반은 인간이고 반은 뱀파이어인 뱀파이어 헌터 블레이드(웨슬리 스나입스)가 뱀파이어들과 대결을 벌이면서 호쾌한 액션을 선보이기도 했다.

 

영화 '노스페라투' 스틸컷.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영화 '노스페라투' 스틸컷.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이제 필요한 질문이 있다. 왜 흡혈귀 캐릭터인 노스페라투가 지금 이 시점에 왜 우리 곁에 다시 소환돼야만 했을까.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1922년작 ‘노스페라투’의 도입부는 어떠했나. “독일 위스보그(가상의 마을)에서 벌어지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고 극의 도입부와 실질적인 서사 사이 경계를 명확히 표현해냈다. 최신작은 어떠했나. 애거스 감독은 동시대 관객과 영화 속 배경을 연결 지으려 했다. 진보한 미술과 분장 기술을 통해 당대 시대상을 구현해낸 시도를 보면 그런 점이 느껴진다. 이 때문인지 ‘1838년 독일’을 자막으로 띄우면서 시작하는 이번 ‘노스페라투’가 이야기를 액자식 구성으로 풀어낼 생각이 없다는 점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이 같은 선택으로 얻는 효과는 무엇일까. 액자식 구성을 포기한 덕분에 관객들은 이 고리타분한 흡혈귀 이야기가 여전히 우리와 동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다 손쉽게 인식하게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노스페라투가 잊혀 가는 설화 속 존재로만 남아 있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영화 '노스페라투' 스틸컷.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영화 '노스페라투' 스틸컷.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그런 측면에서 미뤄볼 때 최신작 노스페라투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은 바로 올록 백작의 손아귀 그림자가 마을을 덮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외딴 성에 혼자 살던 노스페라투가 주인공 부부가 사는 마을로 진입한 뒤,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집 안에서 창밖을 향해 손을 든다. 뻗친 손의 그림자가 칠흑이 내려앉은 마을 전역을 덮어 까맣게 물들인다. 이 장면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먼저 올록 백작의 존재가 전설 속의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라 실재하는 위협으로서 마을에 당도했다는 점을 보여줬다는 측면에서다. 또 주인공 부부뿐 아니라 공동체를 향한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표현해냈다는 점에서도 언급할 만하다.

 

사실 손아귀를 뻗치는 이 장면은 원작을 향한 오마주에 가깝다. 원작에서도 노스페라투가 대상에게 접근할 때나 누군가에게 공포로서 자리매김할 때 항상 그의 육신이 아닌 그림자가 돋보이는 방식으로 연출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따져봐야 하는 문제가 있다. 우리는 이번 영화가 원작의 흔적에 머무른 채 그 후광에 기대려는 작품인지를 들여다봐야 한다. 이게 중요한 이유는 고전을 빌려와 각색과 변주를 줄 때 창작자의 의지가 어느 정도 반영됐는지 알 수 있는 척도여서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영화는 감독의 고민이 치열하게 묻어나는 산물이다. 그는 캐릭터의 유명세에 편승하거나 게으른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영화에 들어차 있는 요소는 동시대 관객과 고전을 어떻게 하면 연결지을 수 있는지 다양한 방안을 탐색하는 시도들이다.

 

변치 않는 고전을 대하는 창작자의 시선

 

영화 '노스페라투' 스틸컷.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영화 '노스페라투' 스틸컷.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이 고민이 묻어나는 중요한 구간은 바로 엔딩이다. 올록 백작의 최후가 어떠했나. 우리가 아는 흡혈귀의 이미지를 떠올려 보자. 동틀 무렵 닭 울음 소리가 들려오고 햇빛을 받아내는 흡혈귀는 고통스러워하며 사라진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노스페라투의 몸이 소멸하는 대신 육체의 모든 구멍에서 피를 토해내며 뻣뻣하게 말라비틀어진다. 사라지지 않고 그의 껍데기는 엘렌의 몸 위에 포개진 채 그대로 있다.

 

엔딩에서 감독이 포개진 두 존재의 몸을 부감(수직으로 피사체를 내려다보는 구도)으로 담아냈다는 데 주목해 보자. 악마로부터 흡혈당해 결국 생을 마감한 엘렌. 그 위에서 피를 토하며 역시 생명을 다한 올록 백작의 육체. 재밌게도 이 구간에서 감독은 이들의 모습을 측면에서 응시하지 않고 마치 신의 시점으로 내려다보길 선택했다. 이 영화가 고전을 빌려와 엘렌의 주체적인 면모를 강화한 재해석 버전이라는 점을 미뤄 보면 이 선택은 바로 엘렌의 행위와 결단으로 벌어진 사건의 경위를 순수한 제3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려는 의지의 산물처럼 비친다. 엘렌의 마지막 선택이 본인의 욕망을 채우는 등 스스로를 위한 것이었을지, 남편을 살리기 위한 것이었을지, 정말 자기희생을 통해 마을공동체를 구하기 위함이었을지, 순전히 본능과 호기심에 사로잡혀 충동적으로 관계를 나누기 위함이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 아닌가. 영화 역시 그에 대한 명확한 단서나 가치 판단은 보류한 채 엘렌의 선택을 부감으로만 응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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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노스페라투' 스틸컷.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즉, 영화는 지금 이 시점에 고전을 빌려온 데 대해 관객에게 검증 내지는 판단을 받고 싶어하고 있다. 과정이 어찌 됐든 결과는 이렇게 될 운명이었다. 고전의 내용은 바뀌지 않고, 재해석과 각색이 들어가더라도 이야기의 큰 줄기는 변하지 않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같은 엔딩의 묘사에서 감독이 선택한 연출법은 고전을 현대화하는 작업에서 창작자가 어떤 고민을 해야 하는지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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