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의 모든 가족이 소외 없이 연결되고, 존중받는 도시가 되는 것. 그게 제 꿈이죠.”
가족서비스 전문기관인 시흥시가족센터의 고경임 센터장(44)의 말에는 오랜 시간 ‘가족’을 바라봐온 사람만의 따뜻한 통찰이 스며 있다. 지난해 4월, 센터장으로 부임한 그는 ‘가족이란 무엇인가, 가족은 무엇을 필요로 할까’라는 질문을 품고, 지역사회와 소통했다. 그리고 시흥시 최초의 가족포럼 ‘나, 너, 우리가 바라는 시흥’을 열었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는 그는 양적 분석에 그치지 않고, 깊이 있는 질적 인터뷰와 사진으로 내면을 표현하는 ‘포토보이스’라는 참여형 방법론을 도입해 시민들의 이야기를 온전히 받아들였다. 설문지에 체크된 숫자만으로는 닿을 수 없는 마음을 듣기 위해서였다.
포럼을 통해 드러난 것은, 가족의 형태가 빠르게 바뀌고 있고, 그 속에서 누군가는 여전히 외롭고 불안하기에 가족센터가 더욱 가깝게 그들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고 센터장은 ‘가족’에 대한 사명감을 오랜 시간 쌓아왔다. 2006년, 작은자리종합사회복지관에서 외국인근로자와 다문화가족지원을 위해 통역과 상담, 한국어교육을 시작하며 한국 사회 안에서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이주민들의 삶을 곁에서 지켜봤다.
당시는 다문화가족지원법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그는 고용센터와 각 국가 모임, 지역 단체를 전전하며 작은 소리에 귀를 열었고, 그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처음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닌, 정책이 필요하다”라는 것을 실감했다.
이후 한국건강가정진흥원에 몸담으며 다문화가족 정책의 기획과 평가, 전국 데이터베이스 구축 등 정책의 뼈대를 세우는 데 힘을 보탰고, 일본 유학을 통해 이문화 커뮤니케이션(intercultural communication)을 파고들었다. 책상 위의 숫자가 아닌 사람을 위한 정책이 되기 위한 그의 열정의 농도는 짙어졌고, 그는 다시 현장으로 돌아왔다.
시흥은 현재 이주배경가족이 빠르게 늘고 있다. 다문화라는 말보다 ‘이주배경’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는 고 센터장은 가족이라는 개념이 특정한 틀에 갇히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혼자 한국에 들어온 중도입국 청소년, 한국어가 서툰 엄마,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고 있는 결혼이민자 아빠까지. 다양한 변화에 맞춰 시흥시가족센터는 다문화 엄마학교, 결혼이민자 직업훈련, 자녀 교육활동비 지원, 아버지 양육 참여 프로그램 등 현실적인 밀착형 지원을 위해 쉼 없이 움직인다. 그는 “제도가 움직이는 게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연결될 때 변화는 시작된다”고 말했다.
최근 센터에서는 이혼·별거 가정의 자녀가 비양육 부모와 안정적으로 만날 수 있도록 돕는 여성가족부의 ‘면접교섭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동안 다른 지역까지 이동해야 했던 불편을 해소하고, 시흥 안에서 아이들이 부모를 안전하게 만날 수 있게 한 노력 끝에, 시흥시가족센터는 전문성과 운영 성과를 인정받아 올해 전국 14개 면접교섭 멘토 센터 중 하나로 지정되며, 타지역에 본보기가 되고 있다.
매일 센터에서 수많은 가족의 삶을 마주하는 고 센터장은 늘 같은 자리에서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아이돌봄 시스템을 안정화하고, 직업훈련을 실질적 창업으로 잇기 위해, 복잡다단한 가족 문제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그리고 직원들이 존중받는 조직을 위해. 궁극적으로는 ‘모든 가족이 연결되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 20여 년간 착실히 다져온 공력과 남다른 현장 감각이 무기가 되어 그를 한 걸음 더 나갈 수 있게 하고 있다.
고 센터장이 생각하는 ‘가족의 행복’이란, 서로를 존중하고, 함께 돌보며, 일상의 작은 기쁨을 나누는 것이다.
“우리는 결국 누군가의 가족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이 일은 보람될 수밖에 없다”라는 그는 오늘도 강한 사명감으로 뭉친 센터 가족들과 함께 누군가의 잿빛 하루를 생기 있는 무지갯빛으로 바꿔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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