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가진다. 이 생각이 강해져서 믿음이 되며 한번 믿음으로 진화하면 아주 특별한 충격이 없는 한 잘 바뀌지 않는다. 이런 믿음의 뿌리가 되는 생각들은 개개인이 살아온 인생의 결과물이다. 개인의 지극히 사적인 환경도 영향을 주지만 살아온 시대적 분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나 큰 상처가 되는 기억들은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대단한 영향을 준다. 상처가 되는 기억에는 강력한 감정들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와 6ㆍ25전쟁을 겪으며 사람들은 국가의 안전이 자신의 생명과 직결되는 것을 겪었다. 고문당하고 총살당하고 강제로 월북당하고 친한 가족들이 옆에서 죽어나가는 기억들, 굶어 죽는 사람들이 속출하는 환경은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매우 강력한 두려움을 주었다. 반공사상이 국민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 나라가 잘 살려고 발버둥치는데 북한이 계속 도발을 하고 이런 환경 속에서 국민은 산업화와 반공사상은 늘 함께 가야 하는 개념으로 생각했다.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라는 국가 캠페인 속에 공동체를 위해 개인이 희생을 감내하는 것은 미덕이었다.

반공시대, 산업화 시대를 겪은 세대들은 이런 아픈 기억이 있기에 현재도 공동체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부모세대들의 이런 희생과 노력으로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점점 부유해졌다. 그분들의 눈물 어린 희생 덕분에 대한민국은 발전했고 경제적 위상도 올라갔다. 지금 40~50대들은 이런 환경 속에서 자랐다. ‘둘만 낳아 잘 키우자’란 분위기 속에 좀 더 많은 부모님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부모세대보다는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 생활했다. 이들이 원한 세상은 공동체를 위해 모든 희생을 감내하는 세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당시 세상은 그러지 못했다. 여전히 반공사상과 산업화가 중요하다고 강요했다. 사회가 강요하는 시스템과 이들이 원하는 시스템에서 큰 괴리가 생긴 것이다. 큰 괴리가 발생하면서 이 세대들은 국가의 탄압을 받았다. 이때 느낀 상처는 큰 분노로 연결되었고 이런 분노는 민주화 운동 세대들의 뇌리에 깊이 박혔다. 결국 1987년 민주화 항쟁으로 세상은 산업화 시대에서 민주화 시대로 전환되었다. 진보진영에서 두 번의 대통령을 배출하면서 세상은 이전보다 개인의 권리와 인권을 중요하게 여기는 쪽으로 시스템적인 변화가 생겼다. 현재 20~30대들은 이런 민주화 시대에서 태어났다.

이들은 실제 살아본 적이 없던 ‘반공시대, 산업화 시대, 민주화 시대’를 체감하지 못했다. 20~30대들에게 민주적 사회란 목표가 아니라 당연한 것이다. 이들은 개인의 행복이 매우 중요하다. 집을 사지 못해도 가끔은 해외여행을 다니고 좋은 차를 타고 싶어 한다. 또한 공정하고 합리적인 사회를 원한다. 정치적 이유로 남북한 선수단을 꾸리는 것은 이해하나 그 과정에서 열심히 노력한 한국의 선수들이 탈락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부모의 도움으로 타인과의 경쟁에서 앞설 수 있는 사회를 싫어한다.

이들이 세상을 보는 관점은 공정성, 합리성, 객관성이다. 앞으로 더 세월이 흘러 민주화 세대들도 주류에서 퇴장할 날이 올 것이다. 지금 20~30대들이 대한민국 사회의 주류가 될 때가 올 것이다. 세월은 흐르고 세상은 달라진다. 이를 받아들일 때가 되었다.

정재훈 한국정신보건연구회 정책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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