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섭 전 국회의장 별세, 향년 83세…남달랐던 강골 기질에 한국 정치사의 산 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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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이만섭 전 국회의장 별세, 방송 캡처
이만섭 전 국회의장 별세.

이만섭 전 국회의장이 14일 오후 4시31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3세.

이 전 의장의 빈소는 신촌 세브란스병원 특1호에 마련됐다.

영결식은 오는 18일 국회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고인은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를 거쳐 지난 1963년 제6대 총선에서 31살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국회에 진출한 뒤 7·10·11·12·14·15·16대 의원을 지내고 2차례나 국회의장을 지냈다.

유족으로는 부인 한윤복 씨와 장남 승욱, 딸 승희·승인 씨 등 1남2녀가 있다.

이 전 의장은 언론인 시절의 인연으로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의해 발탁돼 정계에 입문했다.

그러나, 남다른 ‘강골’ 기질로 정치적 굴곡도 겪었다.

제7대 의원 시절인 지난 1969년 3선 개헌 반대투쟁에 앞장서 공화당 의원총회에서 이후락 당시 대통령비서실장, 김형욱 중앙정보부장 등의 해임을 요구했다 8년여 동안 정치활동 공백기를 맞기도 했다.

제13대 때는 지역구에 출마했다 고배를 들기도 했지만, 제14대 민자당 전국구로 복귀, 국회의장에 올랐다.

지난 1993년 4월 당시 박준규 국회의장이 재산공개 파동으로 낙마하자 1년 2개월 동안 국회의장을 맡았고, 같은해 12월 통합선거법 등의 날치기 사회를 거부,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불편한 관계를 맺기도 했다.

지난 1997년 신한국당 대표서리로 이회창 총재를 대선후보로 선출하는 전당대회를 치렀지만, 당내 대선후보 경선 결과에 불복, 탈당한 이인제 후보를 지원해 전국구 의원직을 버리고 국민신당에 합류하기도 했다.

이후 이인제 후보의 대선 패배 뒤 거취를 놓고 고민하다 지난 1998년 9월 국민신당 의원 6명과 함께 여당인 국민회의에 입당했다.

지난 1999년 7월 특검제 도입을 둘러싼 국민회의-자민련 지도부 간 갈등 수습국면에서 총재권한대행에 임명된 뒤 새천년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의 전신) 창당준비위원장 등을 지냈다.

지난 2000년 새천년민주당 소속 전국구 의원으로 당선된 제16대 국회에서 두번째 국회의장을 지냈다.

지난 2004년 제16대 국회의원을 끝으로 정계에서 은퇴한 이후에도 새천년민주당 상임고문 등을 맡아 정계 원로로서 후배 정치인들에 대한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온라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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