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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 조선의 재건을 꿈꾸다] 19. 서유구, 농촌생활을 위한 생활백과전서를 편찬하다

조준호 webmaster@kyeonggi.com 노출승인 2017년 02월 06일 14:06     발행일 2017년 02월 07일 화요일     제0면
▲ 서유구초상
▲ 서유구 초상
풍석(楓石) 서유구(徐有榘, 1764~1845)는 명벌 출신의 지식인으로 외척 세도의 정치현실을 고민했던 인물이다. 그는 할아버지 서명응, 생부 서호수, 중부 서형수로 이어지는 가학을 계승하여 ‘임원경제학’으로 대표되는 농학 부분에 큰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유폐기에 집필한 생활의 학문
서명응의 집안은 17~18세기 탕평정국에서 크게 현달했다. 특히 정조의 치하에서 서명응의 아우인 서명선이 영의정에 오르는 등 중앙 관직 활동이 두드러졌던 집안이었다. 

서명응은 어린시절 가학(家學)을 전수받았고, 20세 전후한 시기에 박지원,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등과 교유하며 북학으로 학문의 관심을 넓혔다. 1790년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간 후 규장각과 예문관을 거쳐 순조 초년 의주부윤과 홍문관 부제학을 거쳤다. 특히 규장각에서의 생활은 학자로서 지식의 범위를 크게 확대시켰다. 

순탄하던 서유구의 관직생활은 순조이후 그의 가문이 외척들간의 정쟁에 휘말리게 되면서 힘들어졌다. 중부 서형수가 정쟁 과정에서 유배가고 서유구 역시 17년간 재야에서 유폐의 시절을 보내야 했다. 

재야로 물러난 서유구는 서울 경기일원으로 거주지를 옮겨 다니며 실제 농업에 종사하였다. 숲과 나무가 우거진 농촌, 즉 ‘임원(林園)’은 그에게 실학의 이념을 실현할 구체적인 장소였다. “앉아서 궁리만하는 것은 흙으로 국을 끊이는 것이고, 종이로 떡을 만드는데 불과하다.”고 보고 일상생활과 농촌의 삶을 풍부하게 하기 위해 농학 관련 지식을 총 정리하는 것이 실학자의 책무라고 생각하였다.  

이 시기 이후 그는 전원생활의 지식을 집대성하여 농업에 관한「금화경독기(金華耕讀記)」, 어업에 관한 「난오어목지(蘭湖漁牧志)」를 저술하였고, 이를 종합한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를 그의 아들 우보(宇輔)와 함께 편찬하였다. 

1823년 다시 관직에 나선 서유구는 전라도의 지방관과 중앙 판서를 거치며 관직 생활을 역임했으며 그 와중에 자신의 저술을 완성해 나갔다. 하지만 만년에 「임원경제지」의 간행을 시도했으나 이루어 내지 못하고 1845년 11월 1일 별세하였다. 

≪임원경제지≫의 내용
서유구의 실용적 학풍은 서명응, 서호수로 이어져 내려 왔던 농학 연구의 성과와 북학의 학풍에 영향받았다. 북학은 사회를 이끌어 가야 할 사대부가 백성의 일에 무관심한 것을 반성하는 태도에서 출발하여 농공상업을 아울러 다루는 학문으로 실학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북학파의 학문관은 서유구의 학풍으로 자리했다. 

서유구는 농사일에 밝은 사람을 경외둔전(京外屯田)의 전농관(典農官)으로 삼았다가 그를 지방관으로 나아가는 기회를 주자는 제안도 하였다. 생산 활동에 대한 사대부의 관심을 촉구했고 농학이 그 필수학문임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관심하에 그의 학문은 「임원경제지」로 결실을 맺었다. 

「임원경제지」는 원예 경작과 함께 전원에서 사대부의 전체 생활내용이 광범위하게 정리되어 있다. 여기에는 자신의 집안에서 전수받은 지식 체계와 함께 중국에서 들어온 새로운 지식들이 17년간의 전원생활에서 실제적 농업 경험으로 검증되어 고도의 전문성을 갖춘 저술로 탄생하였다. 

서유구는 임원경제지가 사대부들이 향촌에 거주하면서 뜻을 기르는[養志] 참고서로 편찬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향촌에 거주하는 사대부가 빈곤한 생활을 하지 않기 위해 농업과 공업의 생산기술과 유통경제의 활력을 반영한 새로운 지식들을 종합하였다. 

▲ 임원경제지
▲ 임원경제지
총 16개 부분으로 구성된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농사의 전반과 농기구와 농업기술(본리지), 식용 및 약용식물, 꽃과 화초, 과일과 나무의 종류(관휴지, 예원지, 만학지), 뽕나무 재배를 비롯하여 방직 등 공업 기계와 기술(전공지), 각종 음식의 조리법(정조지), 주택과 도량형 및 교통수단(섬용지), 의약과 구황작물에 대한 소개(인제지), 지방에서 이루어지는 관혼상제(향례지), 선비들의 취미생활(이운지), 우리나라 지리 전반(상택지), 전국의 물산과 장시, 이정표 등 당시 유통경제의 실상(예규지) 등이다. 이처럼 임원경제제에서 다루는 내용은 전원생활에 필요한 의식주에 관련되는 정보를 비롯하여 농업 생산 문제가 주가 되었지만, 당시 상공업의 성과도 적극 수용하여 생산력을 극대화하는 종합적인 체계를 완성하고 있었다.  

113권 52책, 임원경제학의 집대성
서유구는 향촌에서 생활하는 사대부가 마땅히 경영해야 할 생활경제를 연구하고 탐색하는 과정에서 임원경제학을 구상했고 이를 실천하였다. 그리고 그는 임원에서 실현하고자 했던 물질적으로 풍부하고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삶의 모습을 꿈꾸었다. 즉 향촌에 거주하는 사대부는 생활인으로 생업을 주도해야 한다. 직접 밭 갈고 베 짜고 작물을 재배하여 생활이 안정시킨 후에 화초를 가꾸고 서재에서 우아하게 일과를 보내는 문화생활과 여가를 누리는 이상적인 생활인이자 지식인의 모습을 제시하였다. 

「임원경제지」의 학문적 정리는 실로 획기적인 것이었다. 800여종의 국내와 외국서적, 농촌과 도시, 농업과 상공업 등을 포괄하여 유기적으로 연결시켜 이상적인 사대부의 삶을 그려내었다. 또한 이러한 생활의 모습은 향촌에서 사대부의 지도적인 위치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였다. 그러한 인식위에서 출발한 서유구의 학문은 기존 학문의 폐쇄성을 깨뜨리고 실용학문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키는 토대를 이루었던 것이다.

글_조준호 실학박물관 학예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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