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이후 대학에서 수시로 뽑는 학생의 비중이 커지면서 수시에 합격한 많은 학생이 수시 비중이 커지기 이전과는 달리 입학 전 상당히 긴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합격했다는 안도감과 성취감에 들떠 본인이 전공하려는 분야를 준비하는 기간이 아닌, 그동안 못 놀고 못 쉰 것에 대한 한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학생들의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예·체능계, 특히 무용 전공으로 대학에 가는 학생들은 빠르면 10월 중순 늦으면 12월 초 합격 여부가 결정되는데 일부 발레를 전공한 학생 중에는 10㎏ 이상 체중이 늘어 입학 후 많은 부상과 정신적 갈등을 이겨내지 못하고 전공을 바꾸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입시제도가 너무 자주 바뀌다 보니 선생님들은 물론 부모님들과 학생들은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소문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살 수밖에 없는 게 현실입니다. 2019년부터는 수시보다 정시 비율이 높아진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S대는 어떻고 Y대는 어떻고…. 6군데나 되는 학교를 뛰어다니며 시험을 보고 여기저기 예비번호를 받아 누군가 나보다 높은 점수를 받은 학생이 입학을 포기하길 기다렸다 별로 원하지 않았던 학교로 입학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짧게는 1분, 길게는 3~4분 정도의 동작을 보여주는 실기시험을 통해 전국에서 올라온 발레전공 학생들이 시험을 보게 되는데 6군데 대학에서 뽑고 싶어 하는 학생은 어느 대학에서든 그 순위가 별로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키가 크고 날씬하고 얼굴이 작고 팔다리가 긴 학생이 유리한 입시에서 선발된 학생 중 졸업생의 10~20%만이 전문 무용수가 되고 그 외 학생들은 졸업 후에 다른 직업을 찾아야 합니다. 오디션을 통해 전문 직업 무용단에 입단하지 못하는 80% 이상의 졸업생들은 졸업 후에 공연기획, 홍보, 마케팅 공부를 시작하거나 충분한 준비 없이 문화센터나 개인학원에서 아르바이트로 학생들을 지도합니다.
다양한 직업을 선택할 수 있도록 개인별 능력을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는 독창적이고 다양한 입시제도와 대학의 커리큘럼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 학교에 가야만 배울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있고 반드시 그곳에 가서 꼭 그 교수님께 배워야 할 그 무언가가 학교를 선택하는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더 이상 눈치작전이 아닌 학생들이 본인이 이루고자 하는 꿈 때문에 학교를 선택하고 입시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대기업, 중·소기업에서 스펙만을 가지고 직원을 채용하지 않는다는 뉴스를 여러 곳에서 접하는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대학에 가서 제대로 공부한다는 외국의 대학 사례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아이들은 저렇게 힘들게 대학에 가서 공부는 언제 하지? 라고 걱정을 하는 목소리도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4학년이 되면 또 취업을 위한 입시 준비를 합니다.
정답을 찾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누구든 원하면 대학을 갈 수 있게 해주고 대학에 가서 자신의 관심분야를 더 깊이 있게 연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기 능력은 좀 부족한 이들 중에 전 세계를 뒤흔들어 놓을 안무가나 디자이너, 기획자 혹은 선생님이 계실지도 모르니까요! 하루아침에 입시제도가 바뀔 수는 없겠지만 5년, 10년, 50년, 100년을 준비하는 그런 입시제도는 만들 수 없는 걸까요? 아예 입시라는 것이 없는 그런 날이 오기를 바라는 건 너무 지나친 바람일까요?
김인희 발레STP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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