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이 최근 남편과 함께 전자제품 상가를 찾아 갔다. 수능 준비하는 딸 때문에 없애 버렸던 거실에 TV를 구입하기 위해서였다. 보고 싶은 드라마도 제대로 시청하지 못하고 숨 죽이며 살얼음판을 걷듯 지내왔던 1년이었다. 최고의 발언권을 갖고 있었기에 집안의 모든 스케줄은 고3인 딸 아이 의도에 맞춰져 진행돼 왔다. 한동안 자녀들이 수시에 합격한 친구들을 보면서 부러워했던 적도 있었지만, 어쨌든 수능이 끝나 한시름 놓인다.
매년 수능 때면 정신과 진료실에 찾아오는 단골 메뉴가 있다. 불면증이 가장 많고 수능에 대한 압박감을 이기지 못한 불안감, 그리고 평소 잘 보던 시험을 망쳐 본 경험이 있는 시험불안 등이다. 적절한 긴장은 학습능력을 증가시켜 주지만 지나치고 과도한 긴장은 정서 불안과 함께 인지기능을 저하시켜 성적 저하로 이어지게 만든다.
수능이 끝났다. 이제 수능 결과를 토대로 어느 대학 어느 학부에 지원하느냐만 남았다. 이때 발생할 수 있는 정신건강을 점검해 보자.
긴장감으로 수능을 넘지 못할 거대 산으로 받아 들인 수험생이나 학부모는 지나친 긴장 후에 오는 과도한 긴장 이완이나 허탈감 등으로 수능 결과와 무관하게 심한 무기력감과 우울증에 빠질 수 있다.
수능 결과에 대한 비관론적인 부정적 반응도 있다. 수능 결과에 대한 대만족이나 만족 등은 없을 것이다. 아마도 좀 더 잘 봤으면 하는 아쉬움과 망쳤다는 실망감이 더 많을 것이다. 이로 인해 비관적 사고나 부정적인 감정을 갖게 되는데, 여기에 학부모마저 그 점수로 어디를 가겠냐며 질책을 더한다면 정서적 공황상태에 빠질 수 있다.
수능 후 생활에 적응하기 힘들고 어려울 정도라면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다. 스트레스와 불안, 우울 등에 대한 평가와 진료를 받고 이에 따른 약물요법이나 상담치료 등을 통해 더 큰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
아시아경기대회가 한창이다. 승자가 있고 패자가 있기 마련이다. 결과에 승복하는 건 스포츠의 미덕이다. 열심히 공부한 학생은 노력한 결과를 긍정적으로 받아 들이고 결과를 토대로 자신의 적성과 비전 등을 고려, 진학하면 된다. 대학보다는 적성에 맞는 학부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게 좋다. 자신이 적성이 뭔지도 모르고 그동안 공부에만 전념해 왔다면 조금은 여유로운 이때 심리평가나 적성평가 등을 받아 보는 것도 필요하다. 자기 적성에 맞는 학부를 선택하고 성적에 맞는 대학을 선택하는 게 바람직하다.
황 원 준
황원준신경정신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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