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마지막으로 안아본 게 언제였지?”
제일 먼저 든 생각이었다. 분유를 탔던 것보단 입에 몰래 털어 넣었던 기억이 먼저 스쳤다. 똥 기저귀는 갈아봤던가, 목욕시키기는? 머리를 굴려봤자 답이 나오지 않아 그만뒀다.
하루 동안의 직업체험으로 아기를 보기로 했다. 특이사항이 있다면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돌본다는 점이다. 많이 울거나, 손을 타거나. 버려지고 학대받은 아이들은 조금은 다를 것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했다. 아동학대가 아이들에게 이렇게나 심각한 영향을 미치나하는 나름의 메시지를 담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잘 웃고, 잘 먹고, 장난도 잘 쳤다. ‘일반’ 아이들과 뭔가 다를 것이라는 ‘기대’가 무너졌다.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걸까, 어리둥절하다가 이내 창피해졌다.
2월 마지막 주, 안양에 있는 경기남부아동일시보호소를 찾았다. 열흘 전 아동학대 취재차 찾았던 기관이었지만 느낌이 사뭇 달랐다. 유기사건이 빈번히 발생하면서 취재차 방문해 아이들도 만났었지만, 단순한 취재에서 벗어나 온 종일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체험은 그 마음가짐부터 다소의 불안감에서 시작해야 했다.
그렇지만 ‘닥치면 하게 돼있다’는 평소의 신념(?)에 따라 일단 무작정 들어섰다.
오전 9시. 보호소의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으로, 사회복지사들이 출근하고 교대하느라 분주했다.
경기남부아동일시보호소는 경기지역 아동일시보호소 두 곳 중 한 곳으로 유기, 실종, 학대받은 아동을 3개월 이내로 보호, 양육한다. 태어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아이들부터 초등학생까지 현재 54명이 입소해있으며 직원 29명 중 조리와 청소를 담당자를 뺀 27명이 사회복지사로 전문적인 보살핌을 제공한다.
대기실에서 20여 분 간 기다리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아동학대 취재 당시 현장에서 느끼는 갖가지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어줬던 유복순 소장이었다. 유 소장은 보호소가 개소구성원으로 이곳에서 아이들을 돌본 지 24년째에 접어든 베테랑이지만 다소 엄한 타입이었다.
“저희 선생님들과 똑같이 시킬 거에요”
인사말보다 먼저 날아드는 엄포에 몸이 움찔했다.
유 소장은 신생아부터 돌이 안된 아이들을 돌보는 영아방으로 안내했다. 미리 준비해 온 앞치마를 두르고 머리를 질끈 묶고 영아반으로 향했다. 나름대로 철저히 준비했다고 생각했지만 양말 바람으로 영아반에 들어서려 하자 “아이고, 큰일나요”라는 꾸중이 들려왔다. 유 소장은 재빨리 실내화를 꺼내오며 복도에서는 반드시 실내화를 신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복도의 먼지를 방 안으로 끌고 가지 말라는 것이다. 바깥 외출이 없는 탓에 아이들이 면역력이 약하기 때문에 위생에 특히 신경을 써야 한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다소 머쓱했지만 아쉬운 대로 발바닥을 털고 방으로 들어갔다. 어리벙벙한 얼굴로 서 있자 유 소장은 “선생님 하시는 일 똑같이 하게 해주세요”라고 재차 강조한 후 자리를 떴다.
영아방 담당인 오선영 사회복지사가 아이를 안은 채 눈인사를 건넸다.
이곳에서 근무한 지 올해로 4년째 접어들었다는 오 복지사는 “차분히 아이를 돌보면 된다”고 간단히 말했다. 그러나, 자는 아이, 노는 아이, 분유 먹는 아이 등 오 복지사가 보살피는 아기들만 무려 7명이었다. 그때였다. 바닥에 엎드린 채 한 아이가 올려다보며 “잘 좀 부탁할게”라고 말하듯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네댓 평 남짓한 널찍한 방에 양쪽으로 나무로 된 아기 침대 4개씩이 놓여 있었고 방문과 마주한 창가 쪽에는 책상과 선반이 있었다. 침대마다 자리가 정해져 있는지, 윗편 벽에는 아기들의 이름과 생년월일, 입소일시가 적힌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책상 주변에 붙어 있는 각종 일지와 잔뜩 쌓인 서류, 분유와 기저귀, 보온병 등이 눈에 띄었다. 방문에 들어서 오른편 안쪽으로는 싱크대가 있는 작은 주방이 있었다. 간단한 설거지와 아기 목욕을 시키는 공간이었다.
“분유 한 번 먹여보시겠어요?”
오 복지사가 한 아기를 안겨주며 말했다. 조카는 한 명도 없고, 가장 어린 사촌 동생이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기억을 재빨리 되감았다. 7년 전? 8년 전? 아기를 안아본 기억이 아득했다.
‘다치면 어쩌나’ 불안감을 알아채기나 하듯이 오 복지사가 “아기 목이 꺾이지 않는 것만 유의하면 된다”고 친절히 알려줬다.
9시30분이 되자 자원봉사를 하는 주부 3명이 들어왔다. 매일같이 아이들 목욕을 시키는 봉사자들로 오 복지사는 목욕만 도와줘도 수월하단다.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목욕은 끝내 내차례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목욕을 마친 아기들을 한 명씩 안아 들고 분유를 먹였다. 뽀송뽀송한 아기가 품에 안겨 가만히 쳐다봤다. 옆에선 목욕할 차례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바닥에 깔아둔 담요 위에 배를 깔고 파닥거렸다. 울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워 미소가 번졌다.
7명의 아기를 목욕시키는 데 걸린 시간은 1시간여. 간단한 청소까지 마친 자원봉사자가 돌아갔지만 나는 여전히 분유를 먹이고 있었다. 아기들은 예상외로 순하고, 잘 놀았지만 일곱 명은 역시 수월치 않았다.
한 아이가 자면 다른 한 아이는 바닥에서 헤엄을 쳤고, 한 아이가 분유를 먹으면 한 아이는 울음보를 터트렸다. 분주하진 않았지만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아기들의 하루일과가 빼곡히 적힌 일정표는 보기만 해도 아찔했다. 하루 수유만 6번, 기저귀는 한 명당 10번씩 갈아야 했다. 아기 두 명은 하루 두 번 이유식을 먹었다.
“표는 안 나는 데 손가는 일이 많죠?. 아기들 돌보는 게 그래요”
오 복지사가 웃으며 말했다.
11시30분. 오 복지사가 점심을 하러 가면서 혼자 남았다. 수유도 마쳤겠다, 여유가 생겨 잠시 쉬려는 찰나 생후 2주 된 남자아기가 울기 시작했다. 아기를 들어 올려 안고 토닥였다. ‘아기 냄새가 참 좋구나’ 하는 찰나 담요 위에서 배를 깔고 잘 놀던 아기 둘이 느닺없이 칭얼대기 시작했다.
잽싸게 안고 있던 아기를 침대에 누이고 우는 아이를 달래려는 찰나 나머지 다른 아이가 울음보를 터트렸다. 돌림노래 하듯 울어대는 아기들을 한 명씩 번갈아 안아 올리고, 나중엔 두 명을 한꺼번에 무릎에 앉혀 토닥였다. 열이 후끈 달아올랐다. 등에서는 식은땀까지 흐러 내렸다. 그 마음을 알았는지 오 복지사가 식사를 일찍 마치고 돌아왔다. 너무나 반가웠다.
“아기가 일제히 울 때 제일 힘들어요. 그렇다고 당황하면 더 힘들어지니까 차분히 하나하나 해야 해요”
기저귀를 갈고, 분유를 먹이며 아기들을 이내 진정시킨 오 복지사가 여유 있게 말했다.
오후에는 침대청소가 이어졌다. 한 달에 한 번씩 하는 청소로 마른 수건에 오일을 묻혀 목재 침대 구석구석을 닦았다. 둘이 하는 데도 30분이 넘게 걸렸다.
문득 아기들의 사연이 궁금해져 물어보니 오 복지사에게서는 “잘 모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불륜, 미혼모, 장애부모 이렇게 아이들의 출생에 얽힌 사연을 하나씩 들어보면 안타깝지 않은 게 없어요. 무책임한 부모에게 화가 나기도 하고요. 그런데 구체적인 사연을 알기 시작하면 저도 모르게 아기들에게 접목시키게 되거든요. 어느 순간 편견이나 선입관이 생기기도 하죠. 그래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아요. 아기는 아기일 뿐이 잖아요.”
뭔가 다를 거라는 생각은 까맣게 잊고 돌보느라 정신없었던 반나절이 떠올랐다.
장난감을 물고 빨고, 장난치면 웃고, 쉬를 하면 울고.
“그렇지, 아기는 아기지”
도대체 다른 뭘 기대했던 걸까, 조금 숙연해 졌다.
오 복지사는 24시간씩, 격일제로 근무한다고 했다. 아이들이 우는 새벽 시간에는 다소 지치지만 아기를 워낙 좋아하고, 생활리듬이 익숙해져 재밌다고 한다.
“미혼모가 점점 늘어나는 것 같아요. 태어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아이들이 많이 들어오거든요. 좀 더 실질적인 성교육이 필요해요”
오 복지사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며 오후 5시, 7시간 동안의 일과를 마쳤다.
딱히 한 게 없는 것 같은데 쉴 틈 없었던 하루였다. 머리가 몽롱하고 팔이 저려왔다. ‘어머니는 위대하다는 말의 의미가 이런 거였나’하는 엉뚱한 생각까지 들었다.
일과를 마치자 유 소장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오늘 돌본 아이들은 친부, 계부, 10대 엄마, 성매매 여성에게서 태어나거나 버려진 아이들이에요. 단순한 경제적 이유로 들어온 아이들은 없죠. 마냥 불쌍하다거나 가끔은 미운 감정이 들기도 해요. 오히려 반대로 신경이 더 쓰기도 하고요. 그렇게 생각과 감정이 쌓이다 보면 선입관이 되고 아이를 다른 방식으로 다루게 되죠. 그래서 사연을 일일이 알리지 않아요. 있는 그대로 봐줘야 하니까요”
유 소장이 수십 년간 공고히 쌓아온 ‘아이돌봄’의 가치를 설명했다. 어른에 의해 생겨난 분쟁을 아이에게 떠넘겨서는 안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있는 그대로 보는 건 어떤 걸까, 뜻밖의 고민을 안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성보경기자 boccum@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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