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현장체험]국민연금공단 장애인활동지원 방문조사원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해야… “가슴이 왠지 따뜻해지네”

재작년 즈음인가.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하려다 화장실에서 미끄러져 왼쪽 발목이 접히는 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

어찌나 아프던지, 발목이 부러졌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는데, 다행히 그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다음날부터 발목은 물론이고 발등까지 퉁퉁 부어올라 어쩔 수 없이 병원에서 기브스를 하고 발목을 집고 다닐 수 밖에 없었다. 무려 5개월동안 말이다(!).

30여년간 살아오며 처음했던 기브스와 발목 때문에 그동안 운동에 게을러 물러졌던 팔힘은 좋아졌지만, 불편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도 5개월 동안 ‘발목’에 의지하며 깨달은 것이 있다. 바로 장애는 ‘다른 것’이 아닌 ‘불편한 것’일 뿐이라고.

그런데 장애에 따른 불편함은 비장애인이 생각하는 만큼의 불편함을 넘어선다. 이 때문에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는 도움을 줄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국민연금공단, 장애인활동지원에 나서다

1천100만명이 옹기종기 모여사는 경기도 속에는 50만명의 장애인도 함께 살아가고 있다. 20명 중 1명 가량은 크던 작던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신체적으로, 또는 정신적으로 장애를 가진 이들은 정도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다른 이의 도움이 필요할 수 밖에 없다.

다행히 대한민국은 지난 2007년 장애인복지법에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가 규정돼 2009년부터 2011년까지 1ㆍ2차 시범사업을 거쳐 2011년 1월 14일 ‘장애인활동지원에 관한 법률’이 공포됐다.

이에 2011년 10월 5일부터 장애 1급을 가진 이들을 대상으로 장애인활동지원제도가 시행됐으며, 올해 1월1일부터는 장애 2급을 가진 이들도 이 제도의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장애인활동지원제도는 간단히 말해 장애인에게 활동보조인, 간병인 등을 국가에서 일정 시간동안 지원해 주는 제도다.

그렇다면 활동보조인과 간병인 등을 지원해주는 시간은 어떻게 정해질까? 바로 국민연금공단의 방문조사를 통한 기본자료 수집과 이 자료를 통한 각 지자체의 수급자격심의위원회의 결정에 따른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쁘다 바뻐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에 위치한 국민연금공단 경기지역본부(수원지사) 3층 장애인지원센터는 아침부터 계속되는 전화와 상담에 정신이 없었다.

국민연금공단하면 보건복지부를 대신해 대한민국 국민들의 연금을 책임지는 기관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이와는 별개로 장애인에 대한 활동지원 정책도 펼치고 있는 것.

아직은 정책 시행 초기단계로 담당 직원이 많지 않아 업무량이 버거워 보일 정도로 많은 전화와 상담이 끊이지 않았다.

“개인정보가 많기 때문에, 방문조사 전 사전준비 할 때 개인정보 보호를 신경쓰고 있어요.”

김태우 장애인지원센터 과장은 방문조사원 체험을 나온 기자에게 방문조사 사전준비시 개인정보가 많아 직원들이 개인정보보호에 항상 유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공단에서는 장애인 또는 가족이 활동지원제도를 신청하면 이에 따른 안내와 접수를 지원하고 방문조사를 벌인다. 수급자격이 있는 장애인들은 2~3년 마다 갱신을 해야 하기 때문에 갱신에 대한 방문조사도 함께 해야 한다.

부당지급과 이의신청에 대한 조사도 해야하며 활동지원사업에 대한 연구와 홍보, 데이터베이스도 구축해야 한다.

더욱이 직원 3명이 수원지역에 거주 중인 장애인을 대상으로 방문조사를 해야하다보니 숨 돌릴 틈도 없다고 덧붙였다.

‘그래도 오늘은 특별한 날(?)이라 전날 사전준비를 모두 마쳤다’는 김 과장을 따라 방문조사 차량에 몸을 실었다.

▲야외활동을 하고 싶은 시각장애인

A4지 6매 분량의 방문조사서를 들고 처음 찾아간 곳은 수원시 장안구에 거주 중인 시각장애 1급 A씨의 거주지였다.

10㎥ 남짓한 원룸에서 홀로 살고 있는 A씨는 다른 이들의 도움 없이는 외출도 하지 못할 정도였다. 방문 당시 활동보조인이 A씨를 도와 가사일을 해주고 있었다.

“A씨는 수급자격 갱신이 당초 지난해 11월 이었는데, 국가에서 6개월 일괄 연장해줘 오는 5월 31일이 만료에요. 그 전에 다시 한번 조사를 하러 나왔습니다.”

김 과장의 조언(?)을 받아 A씨에게 방문조사의 취지를 설명한 뒤, 방문조사서에 적힌 질문들을 하나씩 질문했다.

‘대소변은 혼자 볼 수 있나요’, ‘식사는 혼자 가능한가요’, ‘옷을 혼자 입고 벗을 수 있나요’ 등의 기본적인 질문부터, ‘장애는 언제 시작됐나요’, ‘점자는 어느정도 읽을 수 있나요’, ‘안마는 배우셨나요’, ‘별도의 소득은 얼마나 되나요’, ‘현재 장애와 관련해 복용 중인 약은 있나요’ 등 구체적인 질문까지 약 30가지 질문에 답변을 들으며 방문조사서에 체크를 하기 시작했다.

기자의 기계적인 질문이 마음에 걸렸던지 김 과장은 A씨에게 “예전에는 사회활동이 많은 장애인의 사회활동은 고려되지 않았으나 지금은 장애인 단체 등의 건의로 사회활동 참여 등을 확인하는 사회환경 고려 영역이 확대되었다"고 조언했다.

질문을 모두 마치자 짙은 선글라스를 착용한 A씨가 다시 입을 열었다.

“집에만 있으면 너무 답답해서 외출을 자주 하고 싶은데, 활동보조인을 더 많이 이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한 달에 1번씩 안마봉사를 다니고 등산과 컴퓨터(시각장애인용) 배우는 것이 취미라는 A씨는 지팡이를 이용해 집 근처는 나갈 수 있지만, 그 외에는 활동보조인이 없이 움직이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특히 횡단보도에 설치된 볼라드(일명 무릎지뢰)에 다치는 경우가 다반사라 자꾸만 행동이 소극적으로 변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 과장은 “조사서를 모두 작성했으니 좋은 결과가 있을 거에요. 매달 21일께 수급자격심의위원회가 열리고 이달 말 즈음이면 구청에서 통보가 올 것입니다”라고 설명했다.

‘감사하다’는 A씨의 인사에 ‘몸조리 잘하세요’라는 말을 남긴 채 다른 방문조사를 위해 몸을 일으켰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중증 와상장애인

다음에 찾은 곳은 불의의 교통사고로 다른 이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B씨(여)의 거주지였다.

고불고불한 길을 따라 아파트단지가 밀집한 곳이라 찾기도 어려웠지만, 엘리베이터마저 고장으로 운행이 중단, 그야말로 첩첩산중이었다.

힘들게 걸어올라와 B씨의 거주지에 도착하자 어린조카가 배꼽인사로 김 과장과 기자를 반갑게 맞이한다.

지난 2006년 교통사고로 척추와 골반 등을 크게 다친 B씨는 현재 친오빠 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무려 8년이란 시간동안 병원에서 생활하다 지난주 퇴원한 것.

의료용 침대에 누워있는 B씨는 움직이지도, 말도 하지 못하는 중증 와상장애를 안고 있었다. 목에는 의료용 호스가 달려있었다.

잠시나마 B씨에게 인사를 한 우리는 B씨의 올케언니와 간병인과 함께 방문조사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질문 드리기가 애매하긴 하지만…”이라고 운을 뗀 김 과장은 빠르게 질문지를 읽어내린 뒤 올케언니의 답에 따라 ‘아니요’에 체크를 했다.

방문조사서를 덮은 김 과장은 대신 올케언니에게 활동지원제도에 대한 설명을 하고 B씨는 최대 107시간까지 활동지원제를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장애인의 생활환경에 따라 추가급여도 받을 수 있으므로 가까운 동사무소 또는 국민연금지사 등에 문의를 하라는 세심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의사를 용서한 지체장애인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고관절 수술 휴유증으로 왼쪽 다리를 사용할 수 없게 된 지체장애인 C씨(여)의 집이었다.

보조기구 없이는 혼자 일어날 수 도 없는 C씨는 지난 2004년 한 대학병원에서 고관절 수술을 한 뒤 휴유증으로 왼쪽 다리를 쓸 수 없게 됐다.

김 과장의 조언대로 방문조사서를 작성하면서 C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C씨는 의료사고 당시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큰 고통이 계속됐지만, 그보다 너무나도 억울하고 분이 올라 잠도 못 이뤘다고 말했다. 이어 몇해전 해당 병원과 의사를 마음 속으로 용서한 뒤 한결 편안해졌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방문조사서를 작성하는 동안 C씨는 활동지원제도에 대한 감사의 말을 잊지 않았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은데, 국가에서 이런 제도를 만들어줘 너무나 감사하다는 것이었다.

나이가 들어 왼쪽 다리 외에도 몸이 성한데가 없는데, 활동보조인이 가사일 등을 도와줘 한결 편안하다는 것이다. C씨 역시 활동보조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이 더욱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었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대해야

방문조사는 형식적인 조사가 아닌 가슴으로 장애인을 이해라고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듣고 ‘예’, ‘아니요’를 체크하는 것은 겉으로 보이는 것일 뿐이다. 도움이 필요한 이들의 이야기를 가슴으로 들어야 이 사람에게 어떠한 도움이 필요한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김 과장은 “한집 한집 찾아다니면서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하루는 금방 지나가 버린다”면서 “아직 정책 시행 초기라 전문인력이 부족하지만, 앞으로는 많은 사회복지사들이 이 일에 참여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봄이 다가온 성큼 3월에 때아닌 추위가 찾아온 날이었지만, 가슴 한켠은 따스해지던 그런 하루였다.

안영국기자 ang@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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