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대 통과때 이유없는 긴장감… '삐~' 소리에 식은땀 또 흘러
직업체험이다. 나뿐만 아니라 독자들도 경험해 보지 못한 삶을 소개한다는 것에 어깨가 무겁다. 사실 고민을 많이 했다. ‘기왕 하는 거 평생 못해볼 체험을 해보자!’라는 의욕이 앞서 직업선택에만 1개월이 넘게 걸렸다.
아버지의 고향이자, 내가 태어나 30년을 살았던 인천에서 ‘내가 못 가본 곳이 어디 있을까?’ 하는 질문에서부터 먼저 출발했다. 인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다와 공항이다. 올해로 개항 130주년을 맞은 인천의 바닷가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어릴 적 친구들과 어른 키를 훌쩍 넘는 철제 펜스를 넘어 항구에서 뛰놀기도 했다.
그러던 중 공항이 떠올랐다. 영종도의 인천국제공항은 분명히 내 어릴 적엔 없었다. 다 큰 후에나 비행기를 타려 이용했던 게 전부다. 몰래 담을 넘어 심층탐사(?)하는 어릴 적 경험도 공항에선 없다.
한 차례 더 고민했다. 공항 안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비밀장소가 있었다. 공항세관, 말 그대로 기자라는 직업이 아니고서는 출입할 수 없는 특수한 곳이다. 여행도중 Custom(세관) 이라는 글귀가 적힌 제복을 입은 사람 앞에 서면 괜스레 위축됐던 기억이 스쳐간다. 고가 밀수품이나 마약도 안 들고 있으면서도 X-ray 검색대를 통과하면 나는 ‘삐~’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던 기억. 원인은 벨트에 붙어 있는 쇠붙이였지만, 안도감에 지금도 매번 한숨을 쉬곤 한다. 드디어 검색을 받기만 했던 입장에서 검색하는 입장으로 바뀌는 날이다. 입장이 뒤바뀐 느낌에 신바람이 나면서도 뭔가 긴장감이 엄습했다.
꽃샘추위가 살짝 물러가 따사로운 3월 중순, 그래도 공항 가는 일은 언제나 설레기만 하다. ‘룰루~랄라~’ 여유를 부리며 인천대교를 달리는 차량의 가속페달을 힘껏 밟았다.
생각보다 세관에서 하는 업무가 많다. 수출입 물품의 통관, 밀수·부정 무역·불법 외환거래 단속, 불법 총기류·마약 반입 차단 등 미처 보지 못한 일들이 이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특히 전국 공항 입출국 여행객의 77%(4천100여만 명)와 특송화물 반입건수의 99%를 처리하는 인천공항의 위용에 걸맞게 인천공항세관은 무려 999명의 직원이 상주하고 있다.
“반갑습니다. 자, 가볼까요?” 휴대품 2 검사관실 조진용 계장, 말로만 듣던 오늘 내 사수가 도착했다. 부드러운 미소에 구수한 사투리를 구사하는 그의 모습은 인자한 아저씨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올해로 28년차 말 그대로 베테랑이다. 꽁꽁 뭔가를 숨겨 들어오더라도 촉(觸)으로 적발한다는 명성을 지닌 조 계장의 뒤를 쫓았다.
오전 11시께 공항 1층 C 구역 입국장. ‘삐~’ 등 뒤로 식은땀이 또 흐른다. 내가 입은 Custom이라고 적힌 세관 전용 점퍼가 머쓱하다. 공항공사 직원이던, 세관직원이던 가차없다. 1층 보세구역으로 들어가기 전 신분증과 소지 물품을 X-ray 검색대에 올려놔야 한다. 과연 잘할 수 있을지 걱정부터 앞섰다.
어쨌든 여권 없이 내가 이곳에 서 있다. 자동으로 돌아가는 수하물 컨베이어 벨트(캐로셀)에 수십 개의 짐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뭔가를 체험하겠다는 설렘도 잠시 갑자기 수십 명의 사람이 물밀듯이 쏟아져 나왔다. 러시아 하바롭스크(Khabarovsk)에서 출발한 SU 4650편 여행객들이다.
시간은 한정돼 있다. 이번 여행객을 놓치면 다음 편 여행객을 맞기까지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첫 임무는 입국하는 여행자들이 꼭 내야 하는 종이 카드, 세관 신고서를 출구에서 받는 일이었다. 지루하기만 할 줄 알았지만, 여행객이 든 짐에 표식(씰)이 붙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오늘 처음 알았다.
내가 직접 해볼 수 있는 일은 극히 적었다. 여행객을 상대로 직접 휴대용 X-ray 검색기를 휘두를 수도, 봐도 모르는 X-ray 판독기를 다룰 수도 없었다. 직업체험이라기보다는 단순히 견학을 온 듯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세관 업무를 단 몇 시간 만에 배운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던 만큼 위안을 삼았다.
반가운 대원이 도착했다. 마약탐지견 리카(8세·수컷)다. 공항세관엔 모두 13마리의 마약탐지견과 총기류 전담, 폭발물 전담 탐지견이 각각 1마리씩 있다. 리카는 공항세관 마약조사과 소속 15년 베테랑 이근석 탐지조사요원과 한솥밥을 먹고 있다. “하드 케이스를 눌러보세요.” 이근석 요원이 손으로 컨베이어 벨트 위에 있는 짐 중 단단한 재질의 가방을 빠른 속도로 누르고 지나간다. 그저 가방을 가리키면 리카가 냄새를 맡는 거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손으로 눌러 가방 내부 공기를 밖으로 새나오게 하는, 리카의 후각 정확도를 현저히 높이는 방법이었다.
리카의 훈련도는 가히 최고다. 지난해 말 아프리카에서 온 한 남성의 바지 주머니에 있던 소량의 대마초 가루를 후각으로 발견하기도 했다. 힘껏 달리는 리카에게 목줄을 잡은 손은 물론 내 몸 전체가 뒤뚱뒤뚱 이끌리면서 얼떨결에 마약탐지 체험이 마무리됐다.
갑자기 입국장 한편이 소란스럽다. 러시아 국적 여성 여행객 2명의 가방에 표식이 붙어 있다. 가방 속에 뭐가 들어 있다는 뜻이다. 커터 칼로 조심스레 가방을 싼 비닐을 제거했다. 가방을 열자 신문지로 싼 보드카가 여러 병 나오기 시작한다. 휴대품 면세범위인 주류 1병 초과다.
“적발할 때 사실 굉장히 조심스럽습니다. 온갖 욕설을 듣는 것은 기본이지요.” 미사일 등 각종 탄약이 저장된 부대의 검문소에서 군 복무를 했던 내게 검문검색 업무는 단순했다. 그저 규정대로만 하면 됐다. 당시 말이 통하지도 않던 덩치 큰 미군이 덩치 큰 차량을 몰고 들어와도 ‘일단 다 내려!’ 위협감 있는 목소리로, 험악한 인상을 지으며 기 싸움을 하곤 했다. 상대방의 불평불만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만에 하나를 위해 철저하게 무시했었다.
하지만, 세관 검색 업무는 큰 차이점이 있었다. 바로 기분 좋게 여행하는 즉, 민간인을 상대로 검색하는 것이다. 아무리 안전도 좋지만, 예전의 나처럼 기 싸움을 시도했다간 여론의 뭇매를 맞기 딱 좋았다. 그저 적발에만 신경 쓸 거라는, 나마저도 세관에 대해 큰 오해를 하고 있었다. 조진용 계장은 “여행자 대부분이 선량한 사람이다. 소수를 가려내고자 다수에게 최대한 양해를 구하고 있다.”라면서 “세관업무도 일종의 서비스직인 만큼 건네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굉장히 신경을 쓰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인천공항에서 지난해 고가의 핸드백, 시계, 양주 등 여행자 면세범위(미화 400달러)를 초과한 물품을 자진 신고하지 않고 반입하려다 적발된 건수는 7만 1천875건. 징수된 가산세만 해도 12억 원이다. 세관 1층과 지하 유치물품 창고에는 이 같은 보관 물품 수백 개가 쌓여 있다. 특히 대리 반입 수법으로 밀수입하려다 적발된 건수도 215건으로 지난 2011년의 2.5배에 달하고 있다.
짧은 시간이지만 세관 업무를 체험하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 국외여행이 대중화된 시대, 창과 방패의 싸움보단 제도에 대한 여행객들의 인식 개선이 시급해 보인다.
적어도 내 다음 국외여행에선 더는 세관 직원을 보더라도 움츠러들진 않을 것 같다. 인천공항을 오가는 하루 10만여 명의 인간군상 속에서도, 날이 갈수록 지능화되는 수법에도 세관 직원들은 매의 눈과 투철한 서비스 정신으로 굳건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신동민기자 sdm84@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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