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채만한 경비견 마주하자 등에선 식은땀 주르륵
그러다 보니 사람을 잘 따르는 예쁜 녀석들도 있지만, 간혹 주인 말을 잘 듣지 않거나 심지어 사람을 물기까지 하는 문제 견(犬)들도 존재하기 나름이다. 이러한 문제 견들이 입소해 짧게는 1개월에서 길게는 4개월까지 긴장감이 감도는 분위기 속에서 피나는 훈련을 받는 곳. 바로 애련 훈련소다.
평소 개를 무척이나 좋아하며 개띠이기도 한 기자는 화성의 한 애견훈련소 속으로 입소해 일일 애견훈련사를 자청했다.
‘귀여운 강아지들과 재밌게 놀다 오면 되겠지’ 이렇게 안이했던 기자의 어리석은 생각은 훈련소에 발을 디딘 지 불과 5분 만에 산산이 깨져버렸다. 엄한 훈련사들 앞에서 개들과 함께 뒤엉켜 이날 하루 혹독한(?) 훈련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합시다.”
지난 2일 오전 화성시 봉담읍에 있는 이삭 애견훈련소. 한 TV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하며 유명세를 떨친 애견훈련계의 대부 이찬종 소장(39)이 기자를 만나 처음으로 던진 말이다. 그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이 소장은 주변에 있던 후배 훈련사들에게 “롯트와일러랑 셰퍼드, 리트리버, 골고루 몇 마리 가져와봐!”
훈련사들로부터 전해 받은 조끼를 입고 그 위에 마치 앞치마 비슷하게 생긴 옷까지 착용한 기자는 순간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집채만 한 큰 검은색 개 한 마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를 발견하기라도 한 듯 기자를 노리며 ‘으르렁’ 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녀석은 당장에라도 튀어나갈 준비를 하며 펄쩍펄쩍 날뛰고 있었다. 등에서 한줄기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경비견을 두려워하지 않으려면 보호장구를 착용하고 물려봐야 합니다. 자 이걸 착용하시죠!” 여러 차례 거부했지만, 이 소장의 집요한 강요에 마지못해 왼쪽 팔에 두툼한 보호장구를 착용하고 오른손에 몽둥이를 들어 개를 자극했다.
“아뿔싸!”
순간 달려들며 팔을 덥석 문 녀석에 놀란 나머지 기자는 몸을 피하게 됐고, 날카로운 녀석의 이빨에 손등과 손목 부위를 물리고야 말았다. 피가 뚝뚝 떨어지며 비상사태가 발생했다. 얼마나 아팠던지 기자들의 방문에 아수라장이 된 훈련소 주변이 평온한 듯 한동안 아무 생각이 나질 않았다.
■꾸준한 반복과 주인의 강인한 마음 전달이 포인트
오후에 접어들어 본격적인 훈련에 돌입했다.
지난 2000년 4월 애견훈련계에 입문, 올해로 14년차 베테랑 애완훈련사인 이찬종 소장으로부터 몇몇 개들의 특성과 초보자인 기자가 할 수 있는 훈련방법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들었다.
이 소장은 인생의 절반 가까이 개와 함께 한 그야말로 개 전문가다. 개의 종류는 물론 성품과 특성까지 꿰뚫고 있었다. 서글서글한 인상에 친근한 이웃집 형님의 얼굴을 한 이 소장이 사나운 맹견 앞에서 “앉아!, 엎드려!”하고 외치면, 개들은 저승사자가 앞에라도 나타난 듯 순진한 어린아이의 표정을 지으며 행동으로 옮겼다. 사람 말을 듣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초보 애견사인 기자도 용기를 내 목줄을 잡고 지시했지만, 개들은 들은 척도 않고 외면할 뿐이었다. 하도 답답해 안 되겠다 싶어 훈련사로부터 먹이를 얻어 개들 앞에서 유혹(?)하기 시작했지만, 이번에도 먹이만 뺏길 뿐이었다.
이 소장은 “개들이 지닌 습성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개에게 복종을 강조하기보다는 꾸준한 반복 교육과 주인의 강인한 마음이 개의 행동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라며 개의 행동교정 핵심을 강조했다.
애견훈련사들에게 탁월한 관찰력과 강한 인내력이 요구되는 대목이었다.
사나운 개가 무서웠던 기자는 다소 온순한 리트리버종을 데리고 장애물 넘기에 도전했다. 장애물 훈련은 개가 훈련사 또는 주인과 함께하면서 주인에게 복종할 수 있도록 하는 훈련법이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목줄을 잡고 개를 통제시키는 것. 개가 장애물을 제대로 넘지 못하면 목줄을 세계 잡아 말을 듣게 해야 한다. 또 칭찬과 야단도 8대2의 비율로 적절히 섞어야 한다. 개가 잘했을 때는 칭찬을,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땐 바로 야단을 쳐야 한다. 이 소장으로부터 전수받은 훈련법이 어느덧 몸에 뱄는지 개들이 기자의 손에 이끌려 장애물을 넘기 시작했다.
훈련을 마칠 때쯤 우연히 본 이 소장의 손은 온통 개들한테 물린 상처 투성이었다. “우리 같은 훈련사는 하도 물려 이 정도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죠. 그것보다 큰 문제는 훈련사를 구하기가 쉽지가 않다는 거에요. 개들 곁을 돌봐야 하니 꼬박 24시간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하는데다 주말은 물론 자기 시간이 없어 젊은 사람들이 하려고 하질 않아요. 특히 1급 자격을 취득하는데 7~8년 이상 소요되는 탓에 버티질 못하죠.”
애견 산업은 호황을 누리는 데 반해 훈련소 시장은 침체를 겪고 있다며 이 소장이 근심 어린 표정을 지으며 애꿎은 줄담배만 피워대기 시작했다.
그런데 왜 훈련사를 할까. 이 소장의 대답은 간단했다. “훈련소에 개를 맡겼던 주인들이 “우리 개가 달라졌어요”라는 말 한마디를 들을 때면 그 누구도 느낄 수 없는 최고의 성취감과 자부심을 느끼기 때문이죠.”
정신없이 일정을 소화하다 보니 어느덧 늦은 오후가 됐다. 개만 훈련하면 될 줄 알았던 훈련사들의 일과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바로 훈련소 곳곳을 청소하며 뒷정리까지 해야 했다. 훈련사들과 함께 개들의 배설물을 치우고 뒷정리까지 끝낸 뒤에야 초보 훈련사의 하루 임무가 모두 마무리됐다.
오로지 애완견에 대한 무한 사랑으로 자신의 삶은 뒤로한 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 흘리는 그들은 진정한 프로였다.
권혁준기자 khj@kyeonggi.com
사진= 추상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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