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현장체험]구세군장애인자활사업장

초라한 작업장에 들어서자 제대로 일해보겠다는 마음 와르르~

‘착한 기업’, ‘착한 소비’, ‘따뜻한 소비’. 흔히들 사회적 기업의 제품을 이렇게 일컫는다. 사회적 기업은 저소득자, 고령자, 장애인 등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나 사회서비스를 제공해 가치있는 활동을 목표로 한다.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면서도 사회적 책임이라는 2차적인 역할까지 담당하는 게 핵심이다.

지속가능한 경제가 사회적 기업이 대두되면서 예비사회적기업까지 더해 경기지역에만 어느덧 370개의 사회적 기업이 있다. 정부와 민간이 해결하지 못하는 취약계층의 일자리 사각지대를 사회적기업에서 기회의 연결고리를 만들어낸다.

경제부 기자로 사회적기업에 대한 기사를 많이 쓰긴 했지만 윤리적 소비 활성화, 취약계층 고용 등의 명목적 의미만 알 뿐 이들이 만들어내는 가치는 무엇인지 전혀 알길이 없었다. 사회적 기업에서 만들어내는 가치는 무엇인지 직접 이들과 함께 해보며 의미를 느끼기로 했다.

■‘따뜻한 휴지’ 만들기, 시작은 쉽지 않았다

지난 5월 29일 오전 수원시 팔달구 매교동의 구세군장애인재활작업장. 사회적기업인 이 곳은 중증장애인 12명과 경증장애인 1명과 취약계층 3명이 화장지를 생산해 판매하는 곳이다. 원단을 들여오면 납품까지 모든 게 이뤄진다. 지난 2006년 장애인직업재활시설로 출발한 이 곳은 장애 때문에 회사에 들어가기 어려운 중증장애인들과 사회 취약계층이 고용 대상이다. 이 곳에서 생산하는 화장지는 공공기관의 화장실 등에 쓰이는 300m, 500m 길이의 점보롤과 일반 가정에서 사용되는 50m, 70m의 롤 화장지이다. 현재 조달청(나라장터)과 계약을 통해 납품을 하고 있으며, 사회적기업으로 농협하나로마트(서수원점)에 화장지를 납품하고 있다.

‘장애인들과 취약계층이 자신들의 능력으로 만들어내는 제품’을 함께 만들 수 있다는 설렘과 ‘하루 놀러온 것 처럼 비춰지진 않을까’하는 우려를 안고 구세군장애인재활작업장의 문을 두드렸다.

‘윙~’ 66㎡규모의 공장으로 들어가자 기자를 먼저 반긴 것은 기계의 굉음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휴지 제조 작업장치고는 초라해 보였다. 화장지를 만들어내는 기계 1대, 원단 9개가, 산더미처럼 쌓인 박스가 전부. ‘대체 무엇을 해야하나’ 막연해졌다.

사회적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따뜻한 휴지’를 만들어보겠다는 나름의 취지가 있었지만 ‘나올 그림이 있을까’, ‘생동감 넘치는 일을 해야 쓸 내용이 있는데 뭘로 내용을 채우나’ 등등 기자로서의 걱정이 먼저 앞섰다.

“화장지 제조가 복잡하거나 그렇지 않아요. 하실 일도 그렇게 많지는 않을 거예요.” 사회적 기업에서 함께 일해보고 싶다는 전화에 흔쾌히 승낙을 했던 구세군장애인재활작업장 강상구 실장의 말은 좌절에 쐐기를 박았다.

오늘 제조할 화장지는 300m짜리 2겹 점보롤이다. 일하는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장애인들이 협업으로 생산을 하는 시스템이라 무리하게 일을 하지 않는다.

“물량 주문이 많으니 열심히 하자” 맏형으로 불리는 김효민씨(37)가 동생들을 독려했다. 모두 마스크를 끼고 목장갑의 손가락 부분을 잘라 일을 시작할 채비를 마쳤다. 

화장지 제조는 300kg짜리 원단을 권취기의 거치대에 올리는 것부터 시작된다. 권취기에서 기계를 돌리면 원단이 엠보싱을 입고 길이에 맞게 잘라져 나와 화장지로 태어나는 시스템이다.

권취기를 작동하고 화장지를 뽑아내는 일은 고령자 취업으로 일하는 박찬수씨(가명ㆍ64)와 지적장애를 가진 정승진씨(27)가 맡고 있다. 이들의 도움을 얻어 원단을 권취기에 넣어 손으로 원단을 잡아빼며 불량 원단을 빼내고 점보롤이 말릴 봉에 풀을 발라 원단을 붙였다. 기계를 돌리자 ‘윙’ 굉음과 함께 엠보싱이 원단에 박히며 칼날이 자동으로 점보롤 14개를 잘라냈다. 이후 원단이 300m길이에 맞춰 잘라져 점보롤로 변신했다. 여기에 걸리는 시간은 약 4분.

원단에 불과했던 천이 화장지로 탄생했다. 하얗게 둘둘 말아진 점보롤이 신기해 ‘우와 우와’ 감탄사를 연발하는 기자 사이로 박찬수씨와 정승진씨는 미리진 테이프를 점보롤의 마지막 부분에 붙였다. 기계의 봉을 빼자 점보롤 14개가 나왔다. 그 다음은 정리작업. 점보롤을 누름기계로 한번 ‘쾅’ 눌러주고 보풀을 떼고 정리하면 된다.

“기계가 위험할 수도 있으니 안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칼날이 돌아가 위험할 수 있다는 김씨의 만류에 기계대에서 나와 점보롤 정리하는 작업이 주어졌다. 한 박스에 16개의 점보롤을 넣으면 끝이다. ‘뭐가 이리 단순한가’, ‘내가 크게 도움 될 일이 없나’하며 또다시 기자로서의 지면에 담을 내용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하나의 휴지에 담긴 소중한 가치를 깨닫다

순간 완성된 점보롤에 테이프를 붙이기 위해 테이프 자르는 역할을 맡고 있는 유예림씨가 보였다. 지적장애를 가진 유씨는 완성된 점보롤에 붙이는 테이프를 14개씩 잘라 자에 붙이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일반 회사에서는 일이라고 보기 힘들만큼 단순한 작업이다. 그러나 유씨는 ‘내가 맡은 일’이라며 테이프 하나하나 심혈을 기울여 자에 붙였다. 이 곳에는 각자의 맡은 역할이 정해져있다. 기계 조작은 정승진씨와 박찬수씨가 담당한다. 정씨는 1년 정도 이 일을 배워 어느덧 전문가로 불릴만큼 상당한 실력을 갖췄다. 지적장애 정도가 심하지 않아 회사에 다녀보기도 했지만, 회사에서는 정씨를 오래 받아주지 않았다고 한다.

정씨와 박씨가 기계에서 점보롤을 만들어내는 동안 유예림씨는 완성된 점보롤에 붙일 테이프 14개를 잘라 자에 붙여놓는다. 화장지가 완성되면 지적장애를 가진 이아름씨(20)와 이위선씨(19)가 기계에서 나온 화장지의 보풀을 떼내고 정리를 하고, 취약계층으로 일하는 이승민씨와 김효민씨가 비닐로 포장을 해 박스에 담는다. 완제품을 배송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련의 작업이다.

어떻게 보면 하나하나 단순한 작업. 그러나 이 일을 하는 이들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에 크게 감사하며 최선을 다했다. 지적장애를 가진 이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범위의 일을 최선을 다했고, 취약계층으로 일하는 이씨와 김씨는 이들을 독려하며 즐겁게 일했다. 무언가를 담아내려고 큰 일을 찾던 기자가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점보롤을 정리하는 작업을 하며 서서히 그들과 말문을 열리기 시작했다.

오후 3시 50분. 원단 300kg짜리를 다시 점보롤로 만들기 위해 거치대에 올리는 순간 “오늘 작업은 끝”이라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 만든 점보롤은 모두 960개로 60박스다. 하지만 아직 많은 일이 남아 있었다. 박스에 담은 완성된 점보롤을 비닐포장하는 작업이다.

작업장에 남은 최후의 7인과 함께 오늘 생산한 점보롤에 비닐을 씌웠다. 4개의 점보롤을 하나의 비닐에 씌워 묶은 다음 배송될 박스에 봉인하면 된다. 박스에서 점보롤을 꺼내 다시 비닐을 씌우고 담는 과정은 단순했지만 이내 허리가 아파왔다. 이렇게 한 시간여가 흐르고 드디어 모든 상품의 정리가 끝났다.

이제 이 점보롤은 학교와 시청 등 각 공공기관에 배송된다. 주문 생산이 들어온 서울에 배송될 점보롤이 한 가득 지게차에 쌓였다. “힘쓰는 일은 남자가 해야한다”며 기자와 여동생들이 박스 드는 것을 극구 말리던 효민씨와 승민씨가 박스를 날랐다. 이제 이 점보롤은 어느 구청에서, 학교에서, 또 공중화장실에 걸려 사람들에게 사용될 것이다. 지속가능한 경제의 대안으로 꼽히는 사회적 기업에서 따뜻한 화장지 만들기에 동참한 하루는 이렇게 끝났다.

점보롤이 완성되는 작업은 꽤 단순했다. 그러나 이 단순한 작업에도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한 이들의 손길이 구석구석 닿아있었다.

이 곳의 목표는 열심히 화장지를 제조하고 많이 판매해 장애인들의 월급을 올리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해 재활을 높이는 것이다. 또 장애인들의 자립을 돕고 조금 더 많은 장애인들에게 직장을 제공하는 희망을 품고 있다. 공부, 그림그리기 등 재활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약간의 불편함을 가졌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들은 사회적기업에서 의미있는 생산활동을 하며, 그 생산으로 더 많은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한 가치를 창출해 내고 있었다. 의미있는 사회적기업의 더 많은 탄생이 기대되는 이유다.

정자연기자 jjy84@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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