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뜨거운 제품’ 호기심에 당당히 공장 찾아 갔더니…
그러나 정작 아줌마들도 공개적으로 말 꺼내기가 쑥쓰러운 것이 있다. 바로 원하지 않는 임신을 방지하고 안전한 섹스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생활필수품인 ‘콘돔’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콘돔은 성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낯뜨거운’ 제품으로 인식돼 왔던 게 사실이다. 담배와 커피, 심지어 라면 한 봉지를 살 때도 브랜드를 따지는 철저한 한국인이지만 콘돔 단어만 들어도 얼굴이 붉어지고 어쩔 줄 몰라 한다. 아줌마 기자 또한 예외는 아니다. 또 입밖에 함부러 내뱉으면 안되는 금기어라 생각했다.
부모, 선생님, 친구, 선배 등 그 누구도 콘돔을 누가(who), 어디서(where), 왜(why), 어떻게(how) 만드는지 알려준 이가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당췌 궁금한 걸 못 참는 성격이라 1일 현장체험을 기회삼아 스스로 호기심을 해결하고자 마음 먹었다. 그러나 주변에선 “야, 너무 야한 거 아냐”, “넌, 참 특이하다”, “기자로서 이미지 안 좋아질텐데” 등의 부정적인 반응도 있었다. 허나 포기할 내가 아니다. 진짜 궁금한 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낙태율 1위임과 동시에 콘돔 사용률이 20~30%로 최하위라는 오명을 듣고 있는 한국에서 어떻게 세계 1등의 콘돔 기업이 나올 수 있었을까였기 때문이다. 6월 5일 아침 일찍, 세계 제1의 콘돔 제조 기업 ‘유니더스(UNIDUS)’ 충청북도 증평공장을 찾았다.
35년간 ‘콘돔’이라는 한 우물을 파며 국내 시장 점유율 65%, 세계 시장 점유율 30%를 차지하는 유니더스는 연간 총 11억5천만 개의 콘돔을 생산하는 세계 제1의 콘돔 제조 기업이다. 세계 최고기업이니 으리으리할 것이란 짐작과 달리 공장 자체는 오래된 건물이었다. 잘 정리된 건물은 콘돔 공장이 맞나 싶을 정도로 조용했다.
정문에서 개발부 김재오 차장을 만나 인사를 건네자 다소 당황하는 기색이 옅보였다.
“기자들 많이 다녀갔죠?”라는 질문에 “남자 기자 3~4명 정도 다년간 걸로 압니다. 여기자는 처음입니다.” 김재오 차장은 좀 망설이며 말끝을 흐렸다. 원치 않게 콘돔 공장 최초 방문 여기자가 되는 순간이었다.
김 차장과 함께 곧장 콘돔생산 현장으로 이동했다. 처음 간 곳은 천연고무로 콘돔 재료인 라텍스를 보관하는 원료 탱크로리였다. 이어 원료에 촉진제, 활성제, 산화방지제, 분산제 등 각종 약품과 ‘가황(加黃) 작용’을 거친 고무를 배합해 발효시키는 과정을 거쳤다.
그 다음 공정은 ‘성형실’이었다. 라텍스를 숙성시킨 뒤 음경처럼 생긴 수천개의 유리 성형틀을 통과시켜 콘돔 모양을 만들어내는 곳이다. 김 차장은 냄새가 지독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들어가자마자 강한 냄새가 진동했다. 숨이 턱턱 막혔다. 정체는 암모니아였다. 삭힌 홍어의 냄새와 비슷했다.
안내를 맡은 김재오 차장은 “암모니아 배합은 콘돔의 품질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며, 암모니아 배합은 콘돔 제작에서 중요한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라인마다 걸린 유리봉 성형틀을 액체 상태인 라텍스에 두 차례 담그면 콘돔 모양이 만들어진다. 그 다음 콘돔의 링을 만들어 75도씨 건조박스에서 50분 정도 건조시킨 다음 검사공정이 진행된다. 건조실은 한증막을 방불케했다. 건조를 마친 콘돔은 한 라인에 4명의 직원이 한조를 이뤄 1분당 240개를 검사한다. 10년 이상의 베테랑답게 쉴 새 없이 손을 움직이며 촉감만으로도 불량품을 쏙쏙 찾아냈다. 일손을 돕고자 아줌마 직원 옆에 앉았다. 초짜 기자가 걱정됐는지 아줌마 직원은 “뜨거우니깐 조심해”라며 혹시 손이라도 델까 싶어 안절부절했다.
순식간에 밀려내려오는 봉틀에 콘돔을 끼우는 일은 단순작업이었지만 초짜에겐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히려 민폐만 끼치고 말았다. 그나마 검사 통과한 콘돔에 윤활제를 적당량 묻혀 포장하는 일은 할만했다.
예상과 달리 콘돔 생산과정은 단순하지 않았다. 전자화된 기계의 영역보다 사람의 섬세함과 빠른 손놀림이 요구하는 영역이 많았다.
특히 콘돔의 엄격한 품질관리에 있어 아줌마 직원들의 기술과 노력은 절대적이었다. 그리고 콘돔 품질관리에서 핵심은 콘돔에 구멍이 없어야 한다는 점과 콘돔이 찢어지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파열 부피 실험은 콘돔이 터질 때까지 압축공기를 주입, 주입된 공기량과 파열시점의 압력으로 물리적 특성을 평가하는 검사다. 이를 통해 물리적 안전성 측면에서 콘돔의 강도를 체크할 수 있다. 또 무작위로 풍량 풍압검사를 받는다. 콘돔의 품질을 측정하는 공기투입량 국제기준은 18ℓ다. 그런데 유니더스는 국제기준에 비해 두 배 이상 높은 40ℓ의 공기를 콘돔 속에 불어넣어도 터지지 않을 정도의 강도를 자랑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핀홀 테스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콘돔에 미세한 구멍이 있어 내부의 물질이 새어나오지 않는지를 판단하는 시험이다. 일정량의 물을 채워 넣고 누수 여부를 체크하고 물속에 콘돔을 담그고 전기가 통하는지 전도성을 확인한다. 이 검사 또한 아줌마 직원의 몫이었다.
김재오 차장은 “제품 불량률이 1% 미만이에요. 엄격하고 철저한 품질관리와 공정관리에서는 유니더스를 따라올 자가 없습니다.”
유니더스가 충북 증평 공장과 중국 강소성 공장에서 생산하는 매년 물량은 총 11억5천만 개. 일반형 콘돔 길이가 17㎝인 점을 감안하면 지구를 4바퀴 이상 돌 수 있는 엄청난 양이다.
국내산 콘돔을 써 본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유니더스의 제품을 사용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유니더스의 진가는 해외에서 더 빛난다. 유니더스 전체 매출의 70% 이상이 수출에서 발생하며 국내 매출 비중은 30% 미만이라고 한다.
김재오 차장은 “내수보다 수출 비중이 높은 이유를 국내의 저조한 콘돔 사용률 때문이다. 한국은 OECD국가 중 가장 저조한 콘돔 사용률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생산되는 물량의 대부분은 세계보건기구(WHO), 유엔인구활동기금(UNFPA), 국제가족계획연맹(IPPF), 유엔아동보호기금(UNICEF) 등을 통해 해외로 수출되고 있다. 지난 2005년부터는 미국국제개발처(USAID)에 개발도상국의 에이즈 예방 및 가족 계획용 콘돔을 공급하게 되면서 전세계 콘돔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유니더스(0콘돔은 이 같은 국제 기구들을 통해 수출, 현재 80여 개국으로 공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제품은 다양했다. 국내최초 발기지속 기능성 콘돔 ‘롱러브’ 외에도 향기, 색깔, 돌기 콘돔 등 다양한 신제품 개발을 통해 콘돔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불러일으키고 있다. 과거의 콘돔이 피임과 질병예방에 중점을 두었다면 요즘은 디자인이나 소재, 윤활제를 달리해 고객의 만족도를 향상할 수 있는 제품들이 다양하게 출시되고 있다. 야광 콘돔, 향기 콘돔, 진동 콘돔, 스프레이형 콘돔 등 다양한 기능성 제품들이 차별화를 내세워 소비자의 간택을 받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한국을 비롯한 일본 등 동남아시아인은 얇은 콘돔을 선호하는 반면, 미국과 유럽인들은 두꺼운 것을 좋아한다는 것.
주식을 하는 남자 선배한테 들은 이야기가 떠올라 “콘돔회사는 불황 때 돈을 번다는데 사실인가요?”라고 질문했다.
김재오 차장은 웃으며 불황기에 매출이 늘어난다는 통념에 대해 “사실 콘돔은 경기를 거의 타지 않는 산업”이라고 말했다. 유니더스가 생산하는 주력 제품인 콘돔, 수술용 장갑, 지삭크(보호용 골무)는 경기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세계 1등의 콘돔 기업, 유니더스는 분명 중소기업이었다. 허나 기계보다 직원들의 실력과 성실함을 바탕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유니더스는 결코 작지 않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한국에서 어떻게 세계 1등의 콘돔 기업이 나올 수 있었는지를 직원, 특히 아줌마 직원들의 땀방울에서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억세지만 성실하고 경제논리가 아닌 삶의 논리로 무장한 유니더스 아줌마 직원들의 힘이 세계 콘돔시장 1등 석권의 비밀이었다.
아줌마 기자로서 1일 체험을 마치고 신문사 편집국으로 돌아와 다양한 콘돔제품을 나눠주었다. 콘돔은 ‘낯뜨거운’ 제품이 아니라 생활필수품으로 각자의 주인을 찾아갔다.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사진_전형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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