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현장체험]수원 항미정 보존보수 작업

이끼 낀 문화재 보며 운치있다고 느꼈는데, 알고보니 숭악한 놈이구나…

“문화재는 지키는 것이지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다.”

경기문화재연구원 보존과학실 책임연구원인 김웅신씨의 말이다. 문득 이 말을 좀 더 일찍 전 국민이 배우고 공감했다면 우리의 국보 제1호 숭례문이 방화로 소실되는 참사는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미 지나간 일이다. 상념을 접고 둘러보면 우리 주변에는 숭례문만큼 지켜야 할 문화재가 많다. 지금 묵묵히 자연재해와 인재, 혹은 우리들의 무관심에 스러져가는 문화재를 지키는 이들은 누구인가. 호기심에 그들을 찾아갔다. 비록 단 하루였지만 그들이 선사한 사명감과 보람은 긴 울림을 남겼다.

지난달 25일 오전 9시 수원시 향토유적 제1호인 수원의 항미정(杭眉亭).

본격적인 장마에 앞서 항미정 보존 및 보수에 나선 경기도 문화재 돌봄이들은 이미 일할 채비를 마치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세계문화유산 화성(華城)의 서쪽에 있는 인공 호수 서호(西湖), 그 남동쪽에 자리 잡은 정자 항미정은 1831년 화성 유수인 박기수가 세웠다. 이 정자에선 서호에 비치는 아름다운 노을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이 중국 항주의 미목보다 아름답다는 뜻에서 항미정이라 이름 붙었다.

하지만 지금 그 화려했을 과거의 모습은 온전히 남아있지 않다.

항미정 주변에는 제멋대로 자란 나무와 풀이 우거져 있고 지붕 기와 사이에는 바람에 날려 뿌리를 내린 잡풀이 볼썽사납게 자라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항미정 외벽의 한 부분과 뒷문의 경첩 하나가 떨어져 나가 있고, 마룻바닥과 돌 계단에는 수북한 먼지와 녹ㆍ이끼 등이 제집인 양 자리를 틀고 있었다.

김웅신 문화재보존과학자와 문화재 돌봄이 6명이 초여름 뙤약볕에도 항미정으로 출동한 이유다.

김 문화재보존과학자는 “오늘처럼 본격적으로 문화재 돌봄팀을 투입하기 전에 전문가들이 2주에 한 번씩 관리 대상인 문화재를 점검하고 보수할 부분을 체크한다”고 설명했다.

문화재보존과학자는 X-선 촬영이나 현미경 조사처럼 문화재에 대한 상태조사를 벌인 후 보존처리 방법을 수립한다. 이물질이나 손상 원인물질을 약품과 장비 등을 이용해 제거하고, 복원 및 보존 과정을 기록하는 것도 그들이 하는 일이다.

이와 관련 김 문화재보존과학자는 “화학약품과 기계를 다루며 몸을 써야 하는 직업으로 역사적 지식도 갖춰야 한다”며 “현장 경험이 가장 중요한데 지금과 달리 과거에는 정말 ‘맞으며’ 배웠다”고 술회했다.

그의 말을 들으며 새로 알게 된 직업에 대한 경이로움과 당장 오늘 해내야만 하는 문화재 보존보수 작업에 대한 사명감을 새겼다.

이날 함께한 문화재 돌봄이 6명은 이 같은 감정을 매순간 모든 작업현장에서 느낀다고 했다.

서문정씨(69)는 “가치 있는 석불이나 석탑 등의 문화재가 내 손을 거쳐 깨끗해지고 온전해지는 것을 보면 상쾌해지고 스스로 자랑스럽다”고 웃었다.

서씨와 같은 문화재 돌봄이는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이 도내 문화재의 보존과 훼손방지를 위해 진행하는 ‘경기도 문화재 돌봄사업’ 현장에 투입되는 인력을 지칭한다. 전문가 처방을 실행하는 사람들이다.

앞서 문화재단은 경력과 경험 등을 따져 1년 계약직으로 현재 22명을 공개 채용했다. 경기문화재연구원의 전문가들과 이번에 채용된 문화재 돌봄이는 도내 137곳의 주요 문화재 중 매달 집중관리 대상 유적을 정해 정비사업을 벌인다.

문화재 돌봄이들은 현장에서 문화재보존과학자를 통해 각 문화재에 대한 교육과 직무교육, 안전교육 등을 받은 후 보수 작업에 돌입한다.

이날 항미정에 대한 본격 작업에 앞서 진행된 교육 시간에 가장 먼저 기자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아버지와 아들로 보이는 사내들이 같은 작업복을 입는 모습이었다. 일하는 짬짬이 물어보니 26세부터 69세까지 그 나이 차가 제법 났다.

“노인과 청년층에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공개 채용 때부터 연령을 따져 채용했어요. 문화재 보존 보수 작업은 사명감이 필수조건이어서 나이를 떠나 함께 할 수 있다.”

김 책임연구원의 설명에 그제야 이 묘한 인적 구성이 이해가 된다. 문화재 돌봄이 팀은 연령차 때문인지 서로 배려하며 마치 한 가족 같은 모습이었다. 30대 주부인 기자 또한 연방 “어르신~, 총각!”을 외치며 짧은 시간일지언정 그들의 가족이 되려고 노력했다.

드디어 교육과 동료 탐사(?)가 끝난 후 내게 주어진 첫 번째 일은 흙 만들기였다.

지붕, 기와 밑, 벽 등 각 위치에 따라 진흙과 생석회ㆍ마사(풍화토)ㆍ백 시멘트 등의 조합 비율을 달리해 만든 흙을 적절히 사용해야 한다. 용인대 문화재보존학과 출신의 어현준(26)씨가 복잡한 비율을 보지도 않고 척척 부었고, 나는 그것을 열심히 갰다.

그리고 훼손된 회벽체를 모두 뜯어내고 새 흙을 바르기 시작했다. 문화재라는 부담에 부드럽게 흙을 펴 바르던 나를 향해 불호령이 떨어졌다. “척!척! 발라야 해. 그래야 안떨어지고 잘 붙어 있지!” 그제야 다시 힘주어 바르니 한두 번 만에 팔뚝이 나가떨어질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이번에는 자리를 옮겨 한 문화재 돌봄이가 지붕 위 잡풀 제거를 위해 안전하게 올라갈 수 있도록 아래에서 단단히 붙잡는 역할을 했다.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어느새 태양이 내리쬐고 있었다. 이 날씨에 지붕 위에서 정면 승부하는 사람은 얼마나 더울까. 미안한 마음에 사다리를 더 단단히 잡으니, 금세 땅으로 솔질에 기와에서 떨어진 온갖 잡풀이 떨어졌다. 그런데 지붕 위에 올라간 문화재 돌봄이가 쉼 없이 일하자 아래 있던 김 문화재보존과학자가 ‘어서 내려오라’고 난리다. 배려하는 마음이야 알겠는데, 괜찮다며 일하는 사람을 부득 말리는 상황 또한 쉽게 이해되질 않았다.

이에 대해 김씨는 “자기 몸이 힘들면 그만큼 문화재 훼손 위험도가 높아진다”며 절대적인 문화재 안전을 강조했다. 또 “워낙 화학약품이나 제초기처럼 위험한 장비를 많이 사용하고 야외에서 작업하다 보니 사람이 피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안전의 지름길”이라고 덧붙였다.

그 말에 뒷문의 경첩을 고치고, 주변 잡풀을 뜯고, 마루의 먼지를 털어내며, 지붕 위에 풀을 제거하던, 흩어진 사람들을 불러모아 다같이 얼음물 한 모금을 들이켰다. 모두 얼굴에 땀이 흐르지만 깨끗해지고 번듯해지는 항미정을 바라보며 뿌듯한 표정이다.

항미정 보수 작업은 끝을 향해 갔다. 돌에 끼어 있는 초록색 이끼를 물과 청소솔, 치과에서 사용하는 세밀한 기구 등을 활용해 제거하기 시작했다. 관광객으로 이끼 낀 문화재를 볼때면 시간의 흐름을 느끼며 운치 있다 생각했는데, 저 작은 이끼들이 돌 틈바구니로 끼어들어 균열시킨다니 그렇게 숭악한 놈일 수가 없다. 무릎 꿇고 앉아 물 뿌리고 칫솔질하고 돌 틈 이끼까지 벗겨 낸 후 물을 다시 부으니 정말 예쁘다. 벅찬 감동이 솟는다. 왜 문화재 돌봄이들이 보람을 느낀다고 한목소리를 냈는지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앞으로 경기문화재연구원은 목조문화재에 치명적인 흰개미 모니터링(IPM 조사)을 벌일 계획이라고 했다. 본래 흰개미는 지면에서 30cm 이상 못 올라가는 특성에 문화재 밑동을 갉아먹어 주저앉게 하는 위협요인인데 바람을 타고 지붕 위로 올라가 그곳을 갉아먹어 피해가 속출하고 있단다. 특히 양주와 연천에서 흰개미 피해가 나오고 점차 경기 남부로 그 영향이 내려올 것으로 전망되면서 IPM 조사에 박차를 가할 방침이다. 고된 일이었지만 그 보람에 맛들어 ‘흰개미 소탕작전’까지 끼어달라 조르고 싶어졌다.

수백 년 된 문화재를 고치고 그 생명을 유지시키는 ‘문화재 의사’ 문화재보존과학자들이 흰개미는 물론 문화재에 대한 국민의 무관심까지 날려버리기를 응원해 본다.

류설아기자 rsa119@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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