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숨 돌린 관람객의 뒤로 다가가 스스르 목덜미를 잡은 순간…
외동딸이 산 채로 귀신과 혼인하고,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된 윤씨 부인은 복수를 시도하지만 실패하고, 좌절 속에 자살을 하기에 이른다. 이후 마을에는 사람들이 미쳐가고, 흉년이 들고 역병이 드는 등 온갖 기괴하고 흉흉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최 대감은 이 일들이 윤씨 모녀의 저주라 생각하고 한양에서 유명한 무당을 불러 굿을 했지만, 무당은 서낭당에 목이 매달린 채 죽어 있고, 최참판은 결국 사람의 형상을 한 망령이 되어 구천을 떠돌게 됐다.
귀혼방(鬼婚房)의 원혼 이야기가 재연되고 있는 용인 한국민속촌 전설의 고향에서 원혼 역할을 담당하며 공포와 쾌감을 동시에 느낀 야릇한 체험기, 이제 시작한다.
유난히도 ‘한이 많은 민족’이라서인지 예부터 전해내려오는 우리 민담에는 오싹하고 소름끼치는 공포물이 많다. 덕분에 장화홍련, 아랑 등 우리나라 귀신들은 영화와 드라마를 종횡무진하며 여름철마다 우리를 찾아오고 있다. 하지만 기자는 그런 공포물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웬만한 일에는 무서움을 느끼지 않는 강단있는 성격(?)이라고 자부하지만 유독 귀신과 벌레는 예외이기 때문이다. 특히 귀신과는 대화도 안 통할 것 같고, 싸울 수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어린시절부터 ‘홍콩할매귀신’이나 ‘빨간마스크’ 같은 귀신스토리가 유행할 때마다 밖에 나다니기조차 무서워 할 정도였다.
그런데 6개월만에 일일체험 순서가 돌아온 어느 날, 뱀 사육 보다 화끈한 아이템을 찾던 기자는 이상하게도 공포체험관의 귀신역할을 떠올리곤 사뭇 용감하게(!) 용인 한국민속촌에서 열리고 있는 ‘귀신전’과 ‘전설의 고향’에서 귀신 역할을 자처했다.
먹구름이 몰려다니는 흐릿한 날씨, ‘을씨년스럽다’는 말이 꼭 알맞은 날이었다. 수십년은 족히 돼 보이는 커다란 나무에 이는 바람은 뭔가 스산한 느낌을 풍겼다. 음산한 분위기의 용인 한국민속촌의 귀신전과 전설의 고향 앞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반겨준 것은 붉은색 명부를 펄럭이고 있는 저승사자. 동행한 사진기자 역시 입구에서 머뭇거리며 “할 수 있겠어요?”라고 재차 물었다.
그런 와중에 황 대리는 관람객을 놀래키는 포인트를 짚어줬다. 없는 듯 숨어있다가 갑자기 나타나기, 갑자기 발을 굴러 놀래키기, 지나가는 옆 문을 두드려 긴장시키기 등 귀신 인형들이 아닌 살아있는 내가 해야 하는 역할은 창의적이어야 했다. 평소엔 6~7명의 직원들이 곳곳에 숨어 이런 일을 담당한다고 한다.
귀신전을 한바퀴 돌고 왔을 뿐인데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됐다. 여름에 공포영화를 보면 시원함을 느끼는 줄 알았는데 반대로 너무나 더웠다. 황 대리는 “공포를 느끼면 실제로 체온이 올라간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등골이 긴장을 해서 좀 서늘하게 느낄 뿐이죠”라고 설명했다. 그는 “원래 더 무섭게 하려고 했는데 영상물 등급을 12세 관람가 기준으로 낮추려고 그나마 조명도 밝히고 수위도 낮춘건데 이걸 무섭다고 하면 어떡해요”라고 기자가 일을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런 눈초리를 보냈다.
그래도 할 건 해야 한다.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기 위해 전설의 고향으로 향했다. 마침 출구를 통해 나오는 중학생 정도 돼 보이는 관람객 한명이 눈물을 흘리며 나왔다. 거의 통곡 수준이었다. 가뜩이나 무서운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전설의 고향은 앞서 설명한 귀혼방의 스토리를 따라 마을의 흉흉한 일들을 꾸며놓고 관람객들이 4인용 트레인을 타고 지나가면서 각종 특수효과와 공포를 경험하도록 해 놓은 곳이다. 그런데 일을 하러 가는게 곤욕이었다. 트레인을 타고 구불구불 돌아갔던 길을 걸어서 가니 귀신 인형들이 더욱 실감나게 다가왔다. 식칼을 들고 있는 할머니 귀신은 진짜로 내 손목을 자를 듯이 튀어나왔고 목을 매단 인형과 폐가들은 숨통을 조여오는 듯 했다.
덜덜 손이 떨리는 와중에도 안전 교육을 받고 레일을 점검하며 가장 무섭다는 서낭당에 다다랐다. 하얀 소복을 입고 한켠에 숨어 있는 동안 황 대리가 먼저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를 알려줬다. 날아오는 구미호를 통과하고 한숨 돌린 관람객 뒤로 몰래 다가가 스르르 목덜미를 잡으니 너나 없이 “꺄아악”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는 같은 방식으로 계속 하면 놀라지 않으니 다양한 방법을 창안해 놀래켜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오후엔 동자귀와 함께 했다. 동자귀가 있는 방에 숨어 있다가 관람객이 지나가면 센서를 통해 미닫이 문이 열리고 동자귀가 나와 놀래키는데 내가 소복을 차려입고 한번 더 놀래키는 역할이었다. 숙련된 조교의 시범 후 첫 투입에서는 실패를 했다. 나타나야 할 타이밍을 제대로 잡지 못해 관람객이 나를 발견했는데도 놀라긴 커녕 이상한 여자 보듯 바라보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을 놀래키려다 실패하는 것은 쥐구멍을 파고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운 일이었다.
심기일전해 타이밍을 잡고 다른 관람객을 놀래키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떼로 몰려든 여고생들은 나를 발견하고 놀란 뒤 겁을 상실했다. “여기 사람 숨어 있어”라며 온 친구를 불러모아 수차례나 센서를 작동시키며 막말과 짖궂은 장난도 서슴지 않았다.
다시 입구로 자리를 옮겼다. 2관으로 입장하는 인기척이 느껴지면 빠르게 다가가 놀라게 하는데 재밌는 점은 외국인과 한국인의 반응이 판이하게 다르다는 점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거나 넘어지거나 무서워하는 반면 외국인들은 웃거나 오히려 귀신인 나를 놀래키는 것이었다. 처녀귀신을 잘 몰라서 그런건지 공포에 대응하는 방식이 다른 건지 묻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나는 귀신이니까.
구내식당의 점심시간도 인상적이었다. 나는 소복을 입고 밥을 먹는데, 다른 사람은 저승사자 복장, 어떤 사람은 마당쇠복장, 한복을 입은 사람 등 지금이 21세기인지, 여기가 이승인지 모를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렇게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이 귀신, 저 저귀신으로 다양한 역할을 해내며 몇시간이 흐르자 황 대리는 기자에게 “얼굴이 창백해지고 있으니 그만하는게 좋겠다”고 권유했다. 이제 충분히 체험했다고 말할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안절부절 못하던 중 정말이지 반가운 소리였다. 놀란 관람객이 비명을 지를 때의 쾌캄은 좋았지만 소복은 너무 덥고 귀신 인형과 함께 있는 것은 너무 무서웠다. ‘창의적인 귀신’이 되기엔 내가 너무 담력이 부족했다는 점을 인정해야 했다.
‘믿거나 말거나’ 성격의 후기 하나 덧붙이고 싶다. 귀신역할 체험 이후 이상하리만치 기력이 쇠해져 마감도 미뤄둔 채 집에 돌아간 기자는 정신없이 잠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윗층에서 누군가 뛰어다는 것 같은 소리에 새벽에 두번이나 잠에서 깼다. 간간이 말소리도 들렸다. 그게 이상하다는 것은 다음날 아침 출근 준비를 하다가 눈치챘다. 윗집은 지난달부터 비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새벽의 발소리와 웃음소리는 누구…?
이지현기자 jh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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