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과 한몸처럼… 민원 해결에서 법안 발의까지 ‘퇴근은 없다’
또 마땅한 거점 없이 광야를 떠돌던 유비를 촉한의 황제로 만든 주인공도 유비의 보좌관이자 비서실장 역할을 한 제갈량이다.
이처럼 보좌진은 정치인이 제 역할을 하도록 ‘견마지로(犬馬之勞)’를 한다.
국회에 출입한지 얼마 안되는 기자로서 ‘의원실의 하루는 어떨까’에 대한 호기심은 언제나 풀고 싶은 과제였다.
국회 의원회관 내에 있는 각 의원실은 보좌관, 비서관, 행정비서, 수행비서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보좌진은 각자 맡은 임무를 수행하고 결과물이 유기적 관계를 맺도록 협동한다는 것이 기자가 아는 전부였다.
평소의 궁금증을 풀고자 새누리당 원유철 의원(평택갑)실에 일일 체험을 요청했다.
“생각만큼 만만치 않을 텐데 괜찮겠어요?”라는 물음에 “자신 있습니다”라고 답하자 “몸으로 하는 일도 많으니까 와보세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걱정이 앞섰지만 닥치면 어떻게든 해낼 수 있을 거란 막연한 자신감으로 도전에 나섰다.
7월26일 오전 8시40분, 원유철 의원실에 도착하자 권성철 보좌관(52)이 “빡세게(?) 시킬 테니 각오하세요”라며 엄포를 놨다.
조병수 비서(34)는 이날 원 의원의 하루 일정에 대해 설명했다.
“반드시 참석해야 할 행사는 빨간색으로 표기하고 중요도에 따라 굵은 글씨나 별 등으로 표시해둡니다”
원 의원의 7월 일정표는 이미 깨알 같은 글씨로 가득 찬 상태. 얼핏 봐도 빡빡한 일정이었다.
“의원님은 하루에 1회 이상은 지역구 행사에 참석하세요. 제가 수행하는데 이제는 눈빛만 봐도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라는 말에 의원과 보좌진은 혼연일체가 돼야 함을 알 수 있었다.
보좌진들은 오전 9시에 매일 회의를 한다. 회의에서는 의원이 중점적으로 다루는 현안에 대해 논의한다.
원 의원은 최근 DMZ 세계평화공원 경기도 유치를 위한 공청회를 개최하고 박근혜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위원회 구성을 추진하는 등 남북문제에 관심이 많다.
또 9월에 열리는 정기국회를 앞두고 외교통일위 현안에 관한 국정감사를 준비하고 있어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이때 보좌진들은 현안 중 각자가 맡은 업무의 진행상황을 공유하고 조율한다. 초짜(?) 보좌진인 기자는 나름대로 진지하게 메모하며 회의에 참석했다.
회의를 통해 모든 일정의 선봉에 보좌진들이 있으며 이들은 마치 의원의 손과 발 같은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수 있었다.
의원실에는 각양각색의 민원 전화가 하루에도 수십 통씩 걸려 온다. 특히 당 재외국민위원장으로 있는 원 의원실에는 해외 민원도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여운모 보좌관(52)은 “세계 한인회 사무실을 차려도 될 정도입니다”라며 너털웃음을 보인다.
민원 해결은 보좌진들이 특별 주의를 기울이는 업무 중 하나다. 민원 해결을 중요시하는 것은 원 의원의 성격 때문이다. 이날은 민원인이 직접 국회로 찾아왔다.
평택 지역에 준비 중인 관광 사업이 고도제한에 걸려 도움을 요청하러 온 A씨. 나름대로의 억울함과 애로사항을 30여분에 걸쳐 털어놨다.
사연을 들은 보좌진이 이를 의원에 직접 전달키로 약속하자 그제야 민원인은 고맙다며 의원실을 나섰다.
기자도 민원 접수에 도전해봤다.
미군기지 인근에 거주하는 B씨는 헬기 등으로 말미암은 소음 때문에 잠을 이루기 어렵다고 했다. B씨는 미군 부대 이전을 추진해달라고 요청했다. 물론 기자가 직접 나서서 해결할 수 있는 업무는 아니었기에 민원을 메모해 분류하고 보고했다.
이런저런 민원을 듣고 있자니 어린 시절 좋아했던 TV 프로그램 ‘판관 포청천’이 생각날 정도였다.
권 보좌관은 “딱한 사정들이 많아요. 보좌진들이 해결할 수 있는 일은 1차적으로 해결해 의원의 업무를 덜어주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민원에 대한 1차적인 해결 역시 보좌진들의 업무 중 하나인 것이다.
조용석 비서관(37)으로부터 법안 발의에 필요한 공동발의 서명을 받아 오라는 임무가 떨어졌다.
하나의 법안이 발의되기까지는 보좌진들의 피땀 어린 노력이 수반된다. 먼저 국회의원과 보좌진들이 현행법을 연구, 문제점들을 분석한 후 이에 대한 개선책을 마련해 법안을 만든다.
만들어진 법안이 발의되려면 10명 이상의 국회의원들이 함께 뜻(서명)을 모아야 한다.
보좌진들은 발의하고자 하는 법안을 300부 뽑아 의원회관 1층에 위치한 우편함에 넣고 동참하겠다는 피드백이 오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이 방식은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보좌진들은 발의할 법안을 우편함에 전달함과 동시에 의원실을 돌며 직접 서명을 받는다.
“법안과 관련된 위원회 소속 의원실을 위주로 직접 서명을 받는 방법이 가장 빠릅니다”라며 조 비서관이 요령을 일러준다.
간단한 업무였지만 의원실이 층마다 흩어져 있는 데다 의원회관에 공사가 한창이어서 길을 잃기도 했다.
또 법안 설명 과정에서 질문 공세에 봉착할 때마다 조 비서관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천신만고 끝에 10명이 넘는 의원실에서 공동발의 서명을 받아 오자 모두 손뼉을 치며 환영해준다.
“어때요? 국회의원실이 얼마나 변화무쌍하고 동적인 곳인지 아시겠지요?”
이후 보도자료 배포, 의원 보도기사 스크랩, 주요 시사이슈 분석 등 업무를 함께 하던 중 권 보좌관이 퇴근(?)을 허락했다.
“원래는 밤늦게까지 함께 해야 하는데 회사 업무도 있으실 테니 오늘은 이만 퇴근하시죠”
원래 퇴근시간이 언제냐고 묻자 “정해진 건 없어요. 의원님이 들어가시는 시간이 퇴근시간인 셈이죠”라며 미소 짓는다.
놀랍게도 보좌진에게 정해진 퇴근이란 개념은 없었다. 의원과 보좌진은 한몸이기 때문이다. 의원의 일정이 종료돼야 비로소 하루를 정리할 수 있다.
잠시나마 직장 동료였던 보좌진들과 뜨거운 악수를 나눈 후 의원실을 나섰다.
돌아오며 의원회관은 ‘실리콘 밸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기업이 모여 함께 경쟁하고 공존하는 실리콘 밸리처럼 의원회관에는 300개의 기업, 즉 300개의 의원실이 함께 경쟁하며 생존을 위해 공존하고 있다.
각 기업(의원실)마다 사장(의원)이 다르고, 분위기가 다르며, 주력하는 업무도 다르다.
다만, 한 가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이 300개의 기업은 모두 ‘국민’이라는 공통분모를 섬기고 있다.
의원들이 국민과 소통할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돌다리 역할을 하는 보좌진.
비록 보좌진 업무의 ‘구우일모(九牛一毛)’를 겪었지만, 자신을 낮추고 의원을 위해, 나아가 국민을 위해 일하는 그들의 모습에 뜨거운 열정을 느꼈다.
송우일기자 swi0906@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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