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현장체험]수도검침원

집주인이 달려나오며 욕설과 야구방망이로 위협, 줄행랑 촌극도

올해는 유난히도 전국적으로 사건·사고가 잦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중 하나가 지난 5월9일 경북 의성에서 발생한 여성 수도검침원 살해 사건이 아닐까 싶다.

실종 10일 만에 숨진 채 한 야산에서 발견된 수도검침원 K씨(52·여)는 사실 다음 날 살해용의자인 A씨 집 일대를 검침할 예정이었지만,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 때문에 하루 앞서 검침을 나섰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져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그래서 직업 특성상 여성이 많은데다, 열악하고 많은 위험에 노출된 이들의 직업 전선에 뛰어들어 애로사항을 알리고 이들의 처우가 하루빨리 개선되길 바라는 마음에 ‘수도검침원’을 택했다.

■이른 하루의 시작

오전 8시10분, 남양주시 별내동에 있는 ‘상하수도관리센터’에 도착했다. 전날 약속보다 10분여 늦었지만 수도검침원 자리가 모두 비어 있어 “늦지 않았구나” 하는 안도감에 다행이다 싶었다.

하지만 체험을 위해 처음 대면한 수도검침원 정운미씨(51·여)로부터 “조금 늦으셨네요. 다른 분들은 이미 7시에 출근해서 외근 나가셨어요”는 말을 듣고 금세 머쓱해졌다.

이렇듯 수도검침원의 일과는 이른 오전 시간부터 시작된다. 남양주시 검침전수는 총 5만5천381전으로 총 29명의 수도검침원이 1인당 1천900여전을 담당하고 있어 매달 22일부터 다음달 5일까지 정해진 약 2주 동안의 검침 기간 내에 자신의 구역에서 검침을 모두 마치려면 새벽 출근은 불가피한 현실이다.

하루 업무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을 한 정씨는 “어휴, 왜 제일 힘들 때 오셨어요. 만만치 않으실 텐데…”라며 반나절만 할 것을 주문했지만 오히려 오기가 생겼다.

수도검침을 위한 PDA와 갈고리, 장갑, 얼음물 등 준비물을 싸들고 정씨의 구역인 남양주시 와부·덕소지역으로 향했다.

30도를 훌쩍 넘어선 뜨거운 땡볕 아래 처음 도착한 곳은 남양주시 와부읍의 한 사우나. 10년차 베테랑답게 정씨는 외부에 설치된 옥외검침기로 순식간에 검침을 마치고 두 번째 인근 슈퍼로 자리를 옮겼다.

아직 옥외검침기가 설치되지 않은 이 장소에서는 갈고리를 이용해 바닥에 설치된 파란 뚜껑을 열고, 그 안에 설치된 계량기의 수치를 재야 했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고 느껴 “이제부터 혼자 해보겠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그렇게 다음 장소에 도착한 인근 한 성당. 계량기 뚜껑을 열자마자 수십 마리의 온갖 벌레들이 도망치듯 퍼지는 모습을 본 순간, 온몸에 전율과 함께 머리가 쭈뼛 섰다.

깜짝 놀란 모습을 본 정씨는 “자연 부락에 가면 뱀이랑 쥐도 자주 보는데 이런 걸로 벌써 놀라시면 어떡해요?”라고 엄포를 줬다.

얼떨떨한 기분으로 또 다음 장소로 이동하면서 벌레떼는 빙산의 일각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번에는 맨홀 뚜껑을 열어야 했다. 벌레떼로 인한 트라우마(?)로 조심스레 쇠꼬챙이를 동원해 맨홀 뚜껑을 열고 난 후 더욱 충격적인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맨홀에서부터 땅속 깊숙이 설치된 사다리, 계량기까지 온통 거미줄로 도배돼 있었기 때문이다.

호흡을 가다듬고 거미줄을 뚫으며 계량기까지 내려가자 심한 악취와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쥐의 습격(?)에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재빨리 검침을 마치고 올라와 다음 검침을 위해 이동한 바로 옆 커피숍에서도 난관에 부딪혔다. 이 커피숍은 외부에 수도계량기 위로 불법테라스를 설치하고 계량기로 이어지는 문을 자물쇠로 잠가 검침 자체가 불가능했다. 수도검침을 위해 문을 열어 달라는 요구에 이 커피숍 주인은 오히려 “열쇠가 없으니 나중에 와라. 꼭 지금 해야 하느냐?”고 역정을 내 검침을 포기했다.

■수도검침원의 열악한 환경

이 일대 검침을 마치고 차량으로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30분 가량의 긴 휴식(?)시간 동안 정씨와의 대화를 통해 수도검침원에 대한 애로사항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수도검침원은 왜 여자가 많으냐는 질문에 정씨는 “남자가 하면 집에 혼자 있는 여성들이 문을 잘 열어주지 않아 검침이 어렵다”는 게 그 이유라고 설명했다.

수도나 가스 검침, 택배기사를 가장해 혼자 사는 여성들을 노리는 범죄 행위도 종종 발생하기 때문에 남성 검침원들의 방문을 꺼린다는 것이다.

정씨는 또 그나마 이날 관용차량을 배차받아 편히 일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29명의 수도검침원들이 5대에 불과한 관용차량을 나눠써야 하기 때문에 배차 받지 못한 날에는 자신의 차량이나, 대중교통을 이용해 이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난 2006년부터 남양주시에 도입된 옥외검침기와 자동원격 검침시스템마저도 5만5천여 검침전수 중 9천800여전에 불과해 나머지는 일일이 방문해 검침해야 한다.

하루 180~200전을 검침해야 하는 이들에게는 무엇보다 여름이나 추운 겨울, 비와 눈 등 기후에 따른 어려움이 가장 크다. 가방은 물론 검침을 위해 양손 가득 챙긴 장비 때문에 우산은 쓸 수도 없고, 겨울철에는 계량기 뚜껑이 얼어 잘 열리지도 않기 때문이다. 특히 기온이 급격히 내려간 겨울에는 계량기 동파사고가 속출해 수도검침은 꿈도 꿀 수 없다.

그러나 정씨는 이러한 애로사항 보다 수도검침원들에 대한 시민들의 비인격적인 대우와 비협조적인 태도가 가장 힘들다고 했다.

정씨는 “밖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다 보니 정말 다양한 사람을 접하게 돼요. 일 특성상 차려입지 못하고 편한 옷차림을 하고 가는데 어떨 때 보면 ‘수도검침원을 우습게 보나’ 하고 자격지심 아닌 자격지심을 느끼게 된다”고 고백했다.

또한 부재시 붙여 놓은 안내문에 대해서도 ‘있을 때 오라. 내일 몇시에 있으니 그때 와서 확인하라’는 등의 요구들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검침원들은 그들이 요구하는 시간에 갈 수 있을 만큼 시간적인 여유가 많지 않다.

순간 자취 생활을 하며 퇴근하고 돌아오면 문앞에 붙어 있던 검침 방문 쪽지를 남일 보듯 지나쳤던 경험이 뇌리를 스쳐갔다.

정씨는 “그런 경우에 방문 쪽지에 적힌 번호로 꼭 전화해주셔야 해요. 수도나 가스 계량기가 집안에 있는 경우는 꼭 문을 열어야만 검침할 수 있거든요. 시민분들은 귀찮게 여기지만 검침원들에게는 한 번 방문할 일을 두번 세번 방문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어요”라고 관심을 당부했다.

반쯤 왔을까, 정씨에게 최근 발생했던 수도검침원 살해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정씨는 이 사건에 대해 날짜와 장소 등 누구보다 더 자세히 알고 있었다.

“사실 터질게 터졌다”고 운을 뗀 정씨는 “이 사건이 발생하기 전부터 외곽에 있는 자연 부락지역은 그런 두려움이 많이 있었죠. 그럴 땐 주변 사람들이 모두 듣게끔 큰 목소리로 ‘수도 검침원이에요’라고 말한다거나 갈고리 장비를 휘두르면서 가곤 한다”며 위험 속 근무 환경을 전했다.

그는 특히 “외곽 자연 부락에서는 폐허일지라도 계량기가 있으면 무조건 검침을 해야 해요”라며 “아마 수도검침원 중에 개한테 안 물려본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렇다고 몸이 아파 병원도 마음 놓고 갈 수 없다. 휴가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한 자리가 비면 또 다른 누군가가 대체 근무를 해 일은 배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을 마치지 못하면 주말에 가족까지 동원해 근무하기 일쑤다.

끊임없이 이어지던 대화 도중 드디어 정씨가 언급했던 와부읍 월문리의 한 외곽 자연 부락에 도착했다. 정오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각이었지만 스산하고 음침한 산자락에 드문드문 떨어져 있는 집들과 여기저기서 짖어대는 동물, 수많은 수풀을 헤집고 지나서야 나타나는 계량기 등의 환경은 여성 검침원이 도저히 혼자 할 수 없는 일로 보였다.

보물찾기를 하듯 집집마다 구석구석 숨어 있는 계량기를 찾아내는 일은 신출내기 수도검침원인 나에게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이 지역 마지막 주택을 검침하기 전, 정씨는 “드디어 왔다”며 나를 앞에 내세웠다. 주인이 워낙 특이한(?) 탓에 검침이 가장 힘들다는 그곳이었다. 앞장서 검침을 하려는 찰나, 집주인이 무섭게 달려나오며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고 야구방망이를 들고 나와 위협을 가하는 돌발 행동에 나와 정씨는 그대로 줄행랑을 치는 웃지 못할 촌극을 연출하기도 했다.

요금이 체납된 세대에 대한 단수조치 이행 시에도 이같은 이유 없는 신변의 위협을 종종 느낀다고 정씨는 말했다.

■열악한 환경 개선을 위해선 예산확보가 우선

그렇게 월문리의 자연 부락을 빠져나와 남은 와부읍의 빌라 몇 채와 주택 검침을 마치자 온몸에 범벅된 땀과 더럽혀진 옷매무새를 한 채로 오후 4시가 다돼서야 상하수도센터로 복귀했다.

어느새 삼삼오오 모여든 수도검침원들로 벅적해진 사무실엔 일을 하다 다리가 멍투성이가 된 검침원, 수치가 맞지 않은 이상한 계량기 등 서로간 겪었던 에피소드를 나누며 하루일과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렇게 끝난 것만 같았던 일은 제2의 업무로 이어졌다. 그날 실시한 검침내역을 장부와 컴퓨터에 입력하고, 고장 난 계량기의 수리요청, 요금 체납된 세대에 대한 단수조치, 각종 전화민원 응대 등을 마치고 하루를 정리했다.

이날 일일체험을 마치며 수도검침원의 일상이 생각 이상으로 힘든 직업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적은 임금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내는 이들에게 그나마 남양주시는 분기별 간담회와 협동워크샵, 우수 수도검침원 포상 등을 추진하며 사기 진작에 나서고 있지만 이런 것들보다 더 많은 예산을 편성해 차량 및 옥외검침기 확대 방안이 열악한 환경의 개선책이 아닐까 싶다.

특히 가정집을 방문하는 수도검침원들에게 따뜻한 격려와 시원한 물 한잔 대접할 수 있는 시민들의 의식 개선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끝으로 이날 일일체험 동행으로 평소 검침수량의 절반도 하지 못하며 의도치 않게 주말 근무를 선물(?)하게 된 나에게 열정적으로 체험을 도와준 정운미 검침원에게 감사의 말과 함께, 글로써 수도검침원의 애로사항을 절반도 담아내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남양주=하지은기자 zee@kyeonggi.com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