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막눈’ 벗어난듯 싶어 기술자로 나서볼까 했더니, 책임자 하는 말이…
지금 생각해도 오금이 저려오는데다 운전 경력만도 15년을 자랑하는데 아직까지 와이퍼 하나 제대로 교체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나는 분명 기계치다. 이참에 나에게 도움이 되는 현장체험을 해보겠다는 생각에 자동차정비사를 떠올렸다. 와이퍼교체는 물론 엔진오일 교환, 타이어 공기주입 등 자가 차량 관리 방법 등을 배워 보고 싶다는 강한 욕구가 생겼다.
게다가 최근 후배 기자의 정비소 업계가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다는 기사를 보면서 ‘기술만 있으면 꽤 좋은 직업인데 무엇 때문에 정비 일을 기피할까’ 했던 궁금증도 나를 부추겼다. 하루라는 짧은 시간에 큰 기술을 터득할리는 만무하지만 자동차 정비사들의 애환을 잠깐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을거란 생각에 서둘러 집을 나섰다.
4일 오전 9시30분 수원시 권선구 평동 중앙자동차매매단지 인근에 위치한 ‘쌍용자동차 전문정비공업사’에 도착했다. 최준용 정비책임자(44)와 이용선 정비사(37)가 이스타나 2대의 엔진오일과 예열플러그를 교체하고 있었다. 최준용 정비책임자는 경력 15년의 베테랑으로 업계에서 성실하고 차 잘 고치는 정비사로 정평이 나있다. 또 이용선 정비사는 수원공고와 전문대학에서 자동차정비를 전공하고 쌍용차에서 근무한 엘리트다. 이들이 하루에 10~15대의 차량의 정비를 담당한다. 작업장 주변을 정리하던 나에게 드디어 기회가 주어졌다.
초보 정비사는 보통 엔진오일 교환이나 차량 전구 교체 등 경정비를 하는데 보통 초봉 100만원을 조금 넘게 받는다고 한다. 나에게 맡겨진 차는 신형 코란도C였다. 엔진오일과 필터 교환, 타이어 공기압 체크, 브레이크 라이닝 등의 점검을 실시하는 것이었는데 차를 뽑은 지 얼마 안 돼 조금은 부담이 됐다. 차를 리프트(차량을 들어 올리는 기구) 위에 올리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이를 보던 최준용 정비책임자가 차에서 내리라고 하더니 리프트에 차를 올려놓았다. 보닛을 열고 덮개를 연 뒤 리프트를 조작해 차량을 작업하기 좋게 위로 올렸다. 전자 렌치를 이용해 간단히 하부 덮개를 떼어냈다.
엔진오일을 빼는 볼트를 만지려 하자 최준용 책임자가 제지했다. 오일 튈 수 있으니 조심해서 볼트를 풀러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니나 다를까 나는 볼트를 오일을 받는 통에 빠뜨렸다. 최준용 책임자는 “볼트 하나를 조이고 푸는데도 다 요령이 있다”고 말한 뒤 오일통에 빠진 볼트를 꺼내 줬다. 차량 내부의 오일이 다 빠진 뒤 다시 볼트를 조이고 하부 덮개를 덮었다. 다시 리프트를 이용해 차량을 내려놓고 엔진오일 주입구를 통해 오일을 주입했다.
최준용 책임자는 “동일 차종이라도 엔진오일 주입량이 조금씩 차이가 있어 오일 게이지를 통해 양을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대부분 정비업소에서 엔진오일을 일정량 주입한 뒤 이를 확인하지 않고 차량을 출고시키는 경우가 많다”며 “엔진오일을 주입하고 나서 시동을 켜고 오일 순환되도록 한 뒤 게이지의 로우와 하이 중간 부분에 기름 자국이 찍히는 것을 확인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기름 자국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장갑으로 게이지를 닦으려고 하는데 최준용 책임자가 “장갑을 끼고 닦으면 안 된다”며 제지했다. 그는 “맨손으로 작업을 해야 한다”면서 “오일 게이지에 이물질이 들어갈 수 있어 손을 닦고 맨손으로 작업하는 것이 원칙이다. 독일 기술자들은 차량 엔진 부분을 정비할 때 맨손으로 한다”고 말한 뒤 시범을 보여줬다. 강한 장인정신이 느껴졌다.
다음 작업은 에어필터 교환이다. 필터 교환은 생각보다 쉬웠다. 새 필터를 홈에 맞춰 장착하고 덮개를 조이면 됐다. 그런데 이것도 무턱대고 그냥 조이는 것이 아니었다. 덮개에 숫자가 적혀 있었는데 그 강도에 맞게 적당한 힘으로 조여야 덮개가 파손되지 않는다. 마무리는 최준용 책임자가 도와줬다.
타이어 공기압은 쉬웠다. 공기압을 맞춰 놓은 뒤 삐 소리가 나면 공기주입구를 분리해 마개를 돌려 막으면 됐다. 타이어 공기압은 보통 30psi 정도가 일반적인 것으로 아는데 차량마다 차이가 있지만 35psi로 주입하면 타이어 마모가 적다고 최 책임자가 알려줬다. 이 정도면 나 같은 기계치도 쉽게 할 수 있는 쉬운 작업이었다. 작업 도구를 정리하고 있는데 점심 배달 오토바이가 업소를 들어왔다.
최준용 책임자는 “아무리 바빠도 12시가 되면 어김없이 점심을 먹는다”며 “하던 일을 그만두고 다 사무실로 들어오라”고 말했다. 수저를 들며 그가 입을 열었다. “예전에는 선임 기술자에게 렌치로 맞아가며 일을 배웠다”며 “그래도 어느 정도 기술이 숙달되면 일하기가 쉬웠는데 요즘 차량은 전자, 기계, 통신 등 최신 과학기술이 집약돼 계속 공부하지 않으면 정비업소에서 일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 같은 영세 정비업소는 대형마트에 밀리는 동네 슈퍼마켓처럼 브랜드 업소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가 없다”며 “정비사를 하려는 사람을 구하기도 어렵지만 브랜드 업소에 밀려 문을 닫는 업체가 한두 곳이 아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그는 “예전엔 기름 밥 먹는다고 무시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사회적으로 기술자들에 대한 인식을 달라진 것 같다”며 “아들에게도 자동차 기술을 가르쳐 작은 업소지만 물려 주고 싶다”고 말했다.
좀 짓궂은 질문이었지만 “자동차 업소에서 제일 진상(?) 고객은 어떤 사람입니까”라고 물었다. 그는 “차량 제조사의 결함을 정비 업소에서 따지거나 바가지를 썼다고 생각해 부품비용부터 공임 비용까지 살피며 하나하나 따지는 손님들이 가장 힘들다”며 “예전과 달라 일반 소모품은 가격이 정해져 있어 바가지를 씌우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밝혔다.
얘기를 나누던 중에 봉고차 한대가 업소로 들어왔다. 최 책임자와 이용선 정비사는 손님을 맞으러 뛰어나갔다. 단골로 보이는 손님은 “보닛쪽에서 연기가 올라와 왔다”며 차량에서 내렸다. 리프트를 올리고 최 책임자는 보닛을 열고 차량을 살폈다.
그는 “의사가 환자를 진단하는 것처럼 차도 어디가 고장 났는지 제대로 찾아내야 잘 고칠 수 있다”며 “정비사가 진단을 잘 못해 부품 하나만 교환해도 될 일을 전체 부품을 교환해 많은 비용이 발생하면서 고객들이 정비업소를 신뢰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라고 진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서두르지 않고 작업 순대로 하니까 크게 어려울 것은 없었다. 타이어 공기압도 봐주고 브레이크 라이닝의 마모상태로 점검했다. 차량 정비의 ‘까막눈’ 수준은 면한 것 같았다. 이번 기회에 회사를 그만두고 아예 정비 기술자로 나서볼까라는 섣부른 자만심도 살짝 들었다.
차량 정비를 마친 최준용 책임자는 “최 기자가 오늘 했던 일을 초보 기술자는 2~3년 정도 반복적으로 계속한다. 정비 기술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은 아니다”며 “제대로 절차(정규 교육과정)를 밟아 정비사가 돼 기술 숙련도를 높이면 자동차 정비시장은 발전가능성이 무궁무진해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강한 자부심을 내비쳤다.
이어 그는 “요즘 나오는 차들은 너무 잘 만들어 관리만 잘하면 10년이상, 주행거리 30만㎞이상 충분히 운행할 수 있는데 사람들이 차를 너무 자주 바꾼다”며 “최 기자도 이번 기회를 계기로 분기에 한 번씩은 정비소에서 점검을 받고 간단한 자가 정비는 할 수 있도록 하라”고 당부했다.
이번 체험을 통해 나는 기계치가 아니라 기계에 관심이 없었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기계에 조금만 관심을 뒀더라면 8년전 그같은 사고는 없었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며 산업 현장에서 장인정신을 가지고 자신의 기술을 연마하는 기술인들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됐다.
최원재기자 chwj74@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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