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현장체험]SK인천석유화학 공장 시설검사원

‘PX공장 증설 반대’ 주민집회 날, 의심의 눈초리로 시설검사 과정 봤더니…

1년 전 구미 불산 누출사고로 5명의 사망자와 500억 원대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얼마 못 가 삼성반도체 화성공장에서도 불산 누출사고가 일어나는 등 최근까지 전국적으로 60여 건의 화학물질사고가 발생했다.

사실 먼 곳에서 발생해서 그런지 당시 체감은 크지 않았다. 물론 ‘세상에 이럴 수가’하며 겁을 먹긴 했다. 확실한 건 잇따른 화학물질사고가 국민에게 ‘트라우마’를 남겼다는 것이다.

최근 SK 인천석유화학 공장이 지역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모두 1조 6천억 원을 들여 이곳에 11만 5천700여㎡ 규모의 파라자일렌(PX) 공장을 증설하는 SK 측과 인근 주민의 대립이 날카롭다. 서구 청라국제도시 등 공장 인근 아파트 주민은 유독성 물질 배출 등 환경오염 가능성을 우려하며 매일 증축 반대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정말 이곳은 안전할까?” 하는 의심과 함께 트라우마가 깨어났다. 이곳에 직접 들어가 보기로 했다. 아니, 하루 동안 직접 공장 속 일원이 되어 요목조목 확인하기로 했다.

인천시 서구 원창동 SK 인천석유화학 공장 정문.

이곳은 ‘가’ 급 보안지역이다. 정문에서부터 삼엄한 경비가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사전에 방문을 예약했던 만큼, 신원확인 절차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휴대전화 사용과 인화물질 소지에 대한 안내를 받고, 인솔자를 따라 공장 내 기술관 3층 회의실에 도착했다.

오늘 내가 맡은 임무는 시설의 안전위협을 사전에 차단하는 시설검사원이다. 시설검사에 앞서 당연히 공장 돌아가는 시스템에 대한 기본지식이 필요했다. 고맙게도 나 혼자만을 위한 속성 과외가 진행됐다. 과외는 공장의 전반적인 안전을 책임지는 심재용 안전부장이 맡았다.

SK 인천석유화학 공장은 쉽게 말해 중동에서 들여온 원유를 상압 정제공정을 거쳐 액화석유가스(LPG), 납사(Naptha), 등유, 경유, 중유(벙커C유) 등으로 재탄생시켜 되파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공장은 하루에 무려 27만 5천 배럴의 원유를 정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원유 1배럴당 100달러 정도인 것을 고려할 때 재료값만 하루 320억 원 상당을 쓰는 셈이다. 그럼 정제된 원유를 되팔 땐 얼마나 비싸게 파느냐?

심재용 부장은 “정유업계의 이윤은 상당히 낮다. 인건비며 운영비 탓에 되팔아서 적자인 경우도 많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난 1969년 경인에너지로 시작한 이후 공장 주인이 3차례 바뀌고, 법정관리까지 받은 점을 미뤄봐 연관이 적잖아 보였다.

SK 측은 최근 납사의 가치에 주목했다. 원유에서 정제한 납사를 다시 한번 분해하면 플라스틱과 의류섬유의 원료인 파라자일렌을 얻을 수 있다. 20세기와 달리 21세기는 플라스틱, 의류 수요가 증가하는 만큼 파라자일렌은 고부가가치의 효자 노릇을 할 것으로 예상됐다.

심 부장은 과외에서 “납사는 나프타로 더 잘 알려졌지만, 나프타는 일본식 표기”라는 설명도 빼먹지 않는 등 납사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표했다.

SK 측은 파라자일렌 생산 공장을 증설하는 ‘V-프로젝트’에 돌입했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당장 2015년부터 연간 파라자일렌 생산량이 현재보다 3배가량 늘어난다.

파라자일렌 생산량이 늘어난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의심을 눈초리로 위험성 등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그러자 심 부장은 “파라자일렌은 유독물질로 분류돼 있지만, 끓는점이 130℃ 이상으로 상온에선 굉장히 안정화된 액체 상태의 물질”이라며 “행여나 누출되더라도 액체인 만큼, 공장 테두리 집유장치에 모여 외부 누출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온으로 기체가 된 상태서 누출되더라도 이를 바로 태워버리는 장치가 있어 대기 중으로 유출도 불가능하다”고 덧붙이며 “무엇보다 누출 자체를 사전에 막는 시설검사 체계가 있다”고 강조한 뒤 곧바로 현장으로 안내했다.

등·경유 탈황 공정 공장 앞. 현장엔 오늘 내 사수인 김진형 검사부장과 조성수 검사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 현장은 3년에 1번꼴로 오는 ‘시설 대 정비기간’에 걸려 공장 대부분의 가동이 정지한 상태였다.

김 부장은 “공장이 가동 중에도 검사는 이뤄지지만, 대 정비기간엔 멈춘 시설 내부로 직접 들어갈 수 있어 더 꼼꼼한 검사가 가능하다”며 “검사의 진면모를 볼 수 있는 날에 방문해 운이 좋았다”고 귀띔했다.

등·경유 탈황 공정 공장은 환경규제에 맞게 등·경유가 담긴 파이프를 가열해 그 속에 포함된 대기오염물질인 황을 분리하는 역할을 한다. 한마디로 엄청난 크기의 보일러다.

밀폐된 공장 내부의 잔존 유해가스 및 산소 여부를 검사한 다음에서야 현장 지휘부(쉘터)에서 출입허가가 떨어졌다. 작업출입 허가 판에 내 이름을 적고, 어두운 굴속으로 들어갔다. 벽면은 수십 개의 파이프가 둘러싸고 있고, 바닥 가운데 대형 가스버너가 자리 잡고 있다.

조 검사원이 재빠른 손놀림으로 노란색 망치를 이용해 파이프를 두드린다. 그는 “600℃까지 올라가는 이 안에 들어올 수 있는 때는 오직 대 정비기간 뿐”이라며 “아무리 특수장비를 이용하더라도 직접 보고 두드려보는 것만 못하다”고 말했다.

이어 들고온 검은 가방에서 초음파 장비를 꺼내 파이프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파이프에 젤을 바른 뒤 초음파 장비 끝으로 조심스럽게 문지르는 모습은 마치 태아의 건강상태를 보고자 의사가 임산부의 배를 문지르는 모습과 같았다.

그는 “높은 열과 압력을 받는 파이프는 내부부식이 이뤄져 시간이 가면 얇아진다. 초음파 장비로 파이프 두께를 측정해 기준치 이하일 경우 파이프를 교체한다”며 “이곳 공장 전체가 기본으로 이렇게 검사한다. 40년이 넘은 공장이지만, 구성하는 부품은 항상 새것으로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검사방법은 크게 표본을 채취해 인장·압축 등을 시험하는 파괴방식과 육안·초음파 탐상·방사선 투과 등 비파괴방식으로 나뉜다. 대 정비기간엔 협력사를 포함해 80여 명의 인력이 쉴 새 없이 검사를 진행한다.

장비를 건네받자마자 열심히 문지르기 시작했다. 혹시나 놓치는 부분이 있을까 노심초사했다. 물론 팔은 점점 아파왔다. 하늘 꼭대기까지 뻗어 있는 공장 내부에 가득 찬 파이프를 보니 엄두가 나질 않았다. 발판을 밟고서 점점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서 파이프뿐 아니라 이들을 지탱하는 지지대의 상태도 확인하다 보니 결국 얼마 못 가 두 손을 들었다.

▲검사업무 단순해도, 막중한 책임 있어…주민 집회 탓에 공장 안팎으로 시끄러워도 검사업무에 만전

밖으로 나오니 공기가 상쾌했다. 이제야 공장에 처음 왔을 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공장 전체가 파이프 집단이었다. ‘이걸 언제 다 문지르나’ 싶었다.

이번엔 분리한 황을 280℃까지 재가열해 또 한 번 액체상태의 순수 황으로 탄생시키는 황 회수 공정 공장 앞에 섰다.

파이프와 파이프를 잇는 이음새 하단에 녹이 슨 것을 조 검사원이 단번에 발견했다. 그는 “위험물을 취급하는 공장에서 검사가 소홀하면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며 “사고는 분명히 인과관계가 있다. 일어나기 전 문제를 파악해 조치하는 내 일에 어깨가 무겁다”고 말했다.

시설검사는 쉽게 말해 공장에서 다루는 위험물의 누출을 사전에 막고자 파이프 등 시설을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이었다.

비록 검사 과정은 단순할지 몰라도, 막중한 책임과 엄청난 노력이 요구되고 있었다. 공장 밖에선 집회 탓에 시끄러운 가운데 묵묵히 자신의 일에 집중하는 이들에 악수를 건넸다.

사실 의심의 눈초리로 요목조목 들여다보기에 하루는 턱없이 부족할 만큼 이곳 규모는 엄청났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봤다. ‘위험물 누출’, 이를 막기 위한 노력은 분명히 이곳에 존재했다.

글·신동민기자 sdm84@kyeonggi.com

사진·장용준기자 jyjun@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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