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목욕시킨후 파김치됐지만… “언젠가 우리도 받을 수 있는 도움” 머릿속에 맴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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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심이 앞선 나머지 나도 모르게 차에서 내려 대뜸 말을 걸었다. “배우 김인권씨 맞으시죠? 이곳까진 어쩐 일이세요?” 그는 장모님이 수 시간 전에 이곳에서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고 말했다. 해사한 웃음이 익숙한 그의 얼굴에 어쩐지 슬픔이 가득 묻어났다.
이어진 그의 멘트가 인상적이었다. “그래도 이곳 직원들 덕분에 장모님께서 마지막을 편안히 보내고 가셨습니다.” 궁금해졌다. 어떤 사람들이 그의 장모님을 돌보았을지. 유명 연예인과 뜻밖의 만남에서 비롯된 샘물호스피스와의 인연은 결국 일일 봉사체험으로 이어졌다.
■의료진부터 봉사자까지 팀웍이 중요
호스피스병원은 현대의학으로는 소생이 불가능한 말기암 환자들이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편안히 인생의 마지막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의료행위 뿐 아니라 정서적 치료, 가족에 대한 심리적 케어까지 해야 하니 의료진 뿐만 아니라 성직자·자원봉사자·영양사 등이 한 팀이 돼서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담당자와 통화를 하고 자원봉사 체험을 하기 위해 지난달 27일 오전 11시께 샘물호스피스병원을 다시 찾았다. 이 병원 의료진과 봉사자들의 일과는 오전 9시30분부터 시작되니 1시간 30분정도 늦은 것이다. 의료진들은 야간 당직자들에게 환자들의 상태를 인수인계받은 뒤 각 병실을 돌며 40명의 환자들을 모두 살피고 난 뒤였다.
병원 2층에 들어서니 넓은 홀에서 이화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이 환자와 가족들 앞에서 합창 공연을 하고 있었다. 이화여고는 매주 2회씩 이곳에 와서 봉사활동에 참여한다. 쭈뼛거리며 서 있는 내게 장영철 팀장이 다가왔다. 이날 병원을 안내하고 일을 맡겨줄 직원이었다. “지금은 예배시간입니다. 일과가 벌써 시작됐지만, 할일은 많이 있으니 일단 시설을 둘러보시는 것부터 할까요?” 그를 따라다니며 의료시설과 병실, 식당 등을 살펴봤다.
그러다 장례식장에 들어섰다. 돈이 없어 장례를 못 치르는 유가족들을 위해 무료 장례식을 해주고 있다. 이날도 위암에 걸려 목숨을 잃은 한 40대 환자 K씨의 장례가 치러지고 있었다. 지난 4월 위암 4기 판정을 받고 5개월이 지난 뒤였다. 빈소에는 조문객도 없이 망자의 형만이 그의 영정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12시30분이 발인이었다. 장 팀장과 서둘러 식사를 마친 뒤 시신이 안치된 관을 영구차로 옮기는 작업을 도왔다. K씨의 형(46)은 “가진 것 없는 우리 형제에게 사랑을 베풀어준 병원에게 무엇으로 보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면서 “병마로 고통받는 동생의 모습이 안타까웠지만 이제 아픔 없는 곳에서 편히 쉬기 바란다”며 눈물을 훔쳤다.
장 팀장은 이런 식으로 세상과 이별하는 환자와 유가족들과의 이별이 익숙해진 모습이었다. “5대 대형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오는 이들이 대부분인데, 일주일도 안 돼서 돌아가시는 경우도 종종 있어요. 많을 땐 하루에도 몇명씩 세상을 떠나기도 해요.” 죽음도 삶의 일부란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긴장한 탓에 실수 연발 “기자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곧바로 앞치마를 차려입고 일을 시작했다. 내게 처음 주어진 임무는 이화여고 학생들과 병실을 청소하는 일이었다. 학생을 인솔한 경소연 담임교사(29·여)의 지시에 따라 김현재양(16), 박민지양(16), 박가현양(16), 박수원양(16) 등과 같은 조에 편성돼 3층 병실 청소를 맡게 됐다. 진공청소기로 먼지를 빨아들인 뒤 걸레로 훔치고, 쓰레기통을 비우는 등 특별히 어려울 것 없어 보이는 일이었다. 2학년 학생인 이들은 전에도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는 선배 봉사자들인 만큼 능숙하게 일을 분배하더니 분주하게 일을 시작했다. 나도 호기롭게 청소기를 들었다.
하지만 막상 병실에 들어서고 나니 진공청소기의 소음이 환자들의 휴식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오히려 동작이 위축됐다. 그러다보니 불필요한 실수가 잦아졌다. 링거줄이 청소기에 걸리는 건 예사였고, 받침대를 쓰러뜨릴 뻔하기도 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민지양에게 청소기를 맡기고 걸레를 들었다.
바닥과 선반 등을 닦으며 병실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방안에 널려있는 이불과 옷가지, 음식통 등은 이곳이 이미 환자 뿐 아니라 그들의 가족을 위한 생활공간이 됐단 걸 말해주고 있었다.
너무 긴장한 탓에 몸이 굳어서일까? 학생들과 3층의 병실과 복도를 일일이 돌며 청소를 마치고 나니 초장부터 진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청소를 함께한 학생들은 여전히 기운이 펄펄 넘쳤다.
이들은 곧바로 성경책과 악보를 찾아 들더니 각 병실을 돌며 환자들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기도를 해줬다. 나도 덩달아 학생들과 함께 노래를 불렀다.
학생들은 “어떤 환자에게는 우리가 삶의 마지막으로 만난 봉사자일 수도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박가연양은 “1학년 때 이곳에서 피아노연주를 한 적이 있는데 한 환자분이 다가와 어떻게 악보를 읽는지 알려달라고 했다. 곧바로 가야 했던 상황이라 그냥 나올 수밖에 없었지만 그때 일이 여전히 마음에 걸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이후로는 이곳에 올 때마다 오늘 내가 들려주는 연주가 어떤 환자에게는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연주를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김현재양도 “한번은 예배시간에 무용 공연을 보여드리고 내려오는 길에 한 환자분이 내 손을 꼭 잡고 하신 말씀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세상의 사치보다 값진 것이 신앙’이라는 말이었는데, 하루하루를 더욱 값지게 살아야겠단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교실에서 배울 수 없는 값진 인생경험을 이곳 호스피스 병원의 환자들로부터 배우고 있었다.
이화여고 학생들과 작별한 뒤 복도에서 한 자원봉사자가 환자들을 마사지해주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됐다.
그는 마사지가 환자들의 몸에 찬 부기를 완화시켜주고 혈액순환을 도와 치료에도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나도 환자들에게 도움을 줘야겠다는 생각에 병실에 들어가 직장암을 앓고 있는 H씨에게 마사지를 받을 것을 권하고 밖으로 부축해 나왔다. H씨는 앉고 서는 것조차 힘들어할 정도로 거동이 불편한 상태였다. 손에 연고를 바르고 H씨의 다리부터 마사지를 하기 시작했는데, 오히려 폐를 끼친 상황이 연출됐다. 건강한 사람들의 몸을 주무르듯 세게 주물렀던 것이다. 하지만 H씨는 조금만 세게 눌러도 통증을 호소했고 다리와 일부만 마사지를 받은 뒤 병실로 돌아갔다. 정말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었다.
■환자 목욕시키다 완전 ‘넉다운’
이윽고 환자들의 목욕시간이 됐다. 목욕은 자원봉사자의 일과 중 가장 품이 많이 드는 일이었다. 3층 자원봉사자 휴게실에 들어가 앞치마를 벗고 반바지로 갈아입었다. 긴 바지를 입으면 쉽게 옷이 젖는데다 걸리적거리기 때문이다. 병원 직원 중 한명이 “고생 좀 하셔야 할 것”이라고 겁을 주면서 “신고식으로 물고문이 준비돼있으니 기대하시라”고 농담을 던졌다. 환자용 침대욕조가 놓여있는 목욕탕에는 3명의 자원봉사자가 어깨에 수건을 두른 채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 목욕을 받기로 한 환자는 모두 6명이었다. 목욕을 해야 하는 환자가 밀리는 날에는 15명까지 할 때도 있다고 하니 이날은 비교적 널널한 날이었다. 더욱이 어떤 날에는 목욕을 시키는 사람이 3명도 채 되지 않아 애를 먹는 경우도 허다한데, 이날은 나를 포함해서 4명의 봉사자가 목욕을 시키게 되니 일이 더욱 수월할 것이란 게 봉사자들의 말이었다.
몇분 후에 침대위에 누워있는 환자 1명이 들어왔다. 거동을 전혀 할 수 없는 환자들은 이동식 침대에 몸을 누인 뒤 목욕탕으로 데려와 옮긴 뒤 몸을 씻겨야 한다. 다리를 씻기는 일이 내게 주어진 임무였는데, 피부결대로 때를 씻어준다는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떤 환자들은 아프다는 의사 표현조차 어려웠기 때문에 봉사자 스스로 힘의 강약을 조절해서 몸을 씻겨야 했다. 환자의 머리를 감겨주고 면도를 하려면 그만큼 숙련도가 필요하다. 나는 선배 봉사자들과 함께 4명의 환자의 몸을 씻기고는 그야말로 파김치가 돼서 목욕탕을 빠져나오고 말았다.
목욕탕 밖에서 잠시 몸을 누이고 있는 내게 함께 목욕을 시키던 봉사자가 다가왔다. 그에게 왜 봉사를 하는지 물었는데, 그의 대답이 지금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암에 걸릴 운명을 갖고 태어나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누구도 스스로 암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 장담할 수 없죠. 언젠가는 저도 침대욕조에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목욕을 해야 할 때가 올 수 있습니다. 나만 희생해 누군가를 돕는 게 아닙니다. 나도 스스로 목욕할 수 없을 때 도움을 받으려면 내가 먼저 그 풍토를 만들기 위한 작업을 해야 하는 거죠.”
죽음은 누구에게나 반드시 오지만 이를 기억하며 사는 이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일하고 있는 호스피스 관계자들은 언제나 인생의 마지막 장을 상기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다.
박성훈기자 pshoon@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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