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현장체험]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원산지 단속

‘원산지 허위표시’ 알고도 모른척… “더이상 소비자 우롱하지 마세요”

늘 차려주는 밥만 먹다가 몇 달 전 결혼을 하면서 요리의 세계에 발을 들인 기자. 장을 보면서 채소나 고기를 살 때 자연스레 원산지를 확인하고는 한다. 국내산이라고 적힌 표시를 보면 일단 안심이 되면서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국내산이라고 써 있는 건 다 국내산이 맞나? 표시만 이렇게 한 거 아니야?’ 하는 의심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식당에서도 마찬가지다. 경제부에서 농업과 유통을 담당하면서 ‘사람 먹는 것 가지고 장난치는’ 나쁜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일까. 메뉴판이나 벽에 붙은 원산지를 찾게 되고 표시가 없으면 없는대로 있으면 있는대로 불안한 마음이 썩 가시지가 않는다. 그래서 그 곳을 찾았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경기지원이다. 원산지 관리와 품질 검사 등을 시행하는 이 곳에서 원산지 단속에 직접 나서보기로 한 것이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경기지원은 경기도는 물론 서울과 인천까지 수도권 전역을 담당하고 있다. 경기지원의 유통관리과에는 3개의 기동단속반에서 8명의 직원이 원산지 상시 단속을 나간다. 명절이나 김장철을 앞두고 집중적으로 벌이는 특별단속 때는 단속인원이 더 늘어난다. 음식점, 정육점, 마트, 가공업체, 급식시설 등 단속범위도 방대하다.

지난 16일 기자는 권영목 계장, 노금성 주무관과 함께 단속 대상지역인 안산시 와동 일대로 이동했다. 단속반은 보통 오전에는 사무실에서 수사나 관련 업무를 보고 오후에 현장 단속을 나간다. 이날은 단속 전 수원지검 안산지청에 먼저 들러야 했다. 중국산 콩나물콩을 포장을 바꿔 국내산으로 둔갑시켜 도내 전역에 유통시킨 업자를 구속하려고 검사에게 건의를 했는데 그 결과를 확인하러 가는 것이다.

단속업무 10년차인 권영목 계장은 “일반적으로 벌금형이 나오지만 위반물량이 많거나 쉽게 인정하지 않고 자꾸 속이려고 하는 등 죄질이 나쁘면 구속도 가능하다”며 “적발한 양만 690t 가량에 부당이득만 3억~4억원에 달해 구속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시흥의 외딴 창고에서 포장지 교체 작업을 하는 것을 목격했다는 신고가 들어와 2~3일 잠복한 끝에 검거했단다. 얼마 전에는 쌀 포대갈이를 하던 업자가 도주해 휴대폰 위치추적 끝에 붙잡은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단속, 서류 작성, 검찰 송치, 구속까지 원산지에 관련해서는 일반 경찰과 똑같은 업무를 하는 셈이다.

검찰에서 의견서를 받아 확인해보니 불명확한 부분이 있으니 재지휘를 받으라는 결정이 내려졌다. 권 계장은 “피의자와 거래한 업체에서 증명서를 확보해 증거를 보완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단속에 나설 차례. 가장 먼저 들어선 곳은 축산물도매센터다. 권 계장이 “원산지 점검 나왔습니다” 라고 말하며 목에 건 신분증을 보여준다.

기자의 눈에 개별포장된 돼지족이 들어왔다. 어디를 봐도 원산지 표시 라벨이 없다. 권 계장이 “왜 라벨이 없냐”고 묻자 정육점 주인은 벽에 붙은 표시를 가리키며 “일괄표시하면 되는 줄 알았다”고 말한다.

이어 식육거래내역서와 쇠고기 개체식별번호를 꼼꼼히 확인했다. 미진한 부분이 나올 때마다 주인은 울상을 지으며 ‘일하는 사람이 한명 줄어 처리할 겨를이 없었다’, ‘라벨지를 한꺼번에 뽑을 수 있는 기계가 너무 비싸 사지 못 했다’고 변명을 늘어놓았다. 권 계장은 “이런 식으로 하다가는 기계값보다 과태료가 더 나올 수 있다”며 “빨리 시정하라”고 권고했다.

정육점을 나오며 권 계장은 “상시단속에서 허위표시가 아닌 미표시가 적발되면 무조건 단속하기보다는 지도를 먼저 한다”며 “요즘에는 특히 음식점 폐업도 많고 주인이 자주 바뀌어 충분히 숙지하지 못해 위반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백반집. ‘김치: 국내산’이라고 표기돼 있었다. 순간 뭐가 문제일까 싶었지만 배추와 고춧가루 원산지를 따로 표시해야 한다. 또 한번 주의를 준 다음 바로 옆 감자탕집으로 들어갔다. 기자는 거래명세표와 메뉴판을 대조해봤다. 만일 메뉴판에는 돈뼈가 국내산이라고 적혀있는데 거래명세표에는 캐나다산 돈뼈를 구입한 기록만 있다면 위반사항에 해당되는 것이다. 함께 영수증을 살펴보던 노 사무관이 대번 “고춧가루는 중국산이네”라고 말했다. 영수증을 보니 고춧가루 6㎏을 5만6천원에 구입한 기록이 있었다. 노 사무관은 “600g에 5천600원이라는 셈인데 국산은 600g에 1만2천원 정도로 두배 비싸다”며 “가격만 보더라도 국산인지 중국산인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고깃집 몇 군데를 거쳐 이번에는 한 동태탕집으로 들어갔다. 들어갈 때마다 느꼈던 거지만 음식점 주인들은 우리가 들어서면 손님인 줄 알고 반갑게 맞았다가 신분을 밝히면 급격히 표정이 어두워졌다.

메뉴판상 김치는 국내산이라고 표기돼 있었지만 김치를 살펴보자 부재료가 거의 들어있지 않고 희멀건한 색이 났다. 중국산일 가능성이 큰 것이다. 김치 구입 영수증을 보여달라고 하자 주인 부부는 “모아두지 않았다”고 말한다. 여기서 물러날 단속반이 아니다. 김치를 판 업체에 직접 전화를 걸어 확인하니 최근 이 식당에 중국산 맛김치를 판매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중국산인 거 아셨죠?”라고 물으니 “신경을 잘 못 썼다”고 얼버무린다.

권 계장이 바로 주인에게 확인서를 작성하라고 내밀었다. 그 사이 노 주무관과 기자는 카메라로 확인서 작성모습과 메뉴판, 주방 곳곳을 촬영했다. 일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자 주인은 “가뜩이나 동태에 방사능이다 세슘이다 해서 죽을 맛인데 한번 더 죽이려고 하네”라고 볼멘 소리를 한다. “바로 적발할 게 아니라 경고조치로 한번은 그냥 넘어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따지기도 했다. 이마저도 통하지 않자 주인은 “집사람과 하루 12시간 넘게 일하면서도 월세도 못 내는 상황”이라며 읍소를 하기 시작했다.

권 계장은 “원산지표시제 시행이 20년이 넘었다”며 “사정이 어려운 것은 알지만 업체 사정에 따라 단속을 달리 할 수는 없다”고 주인을 설득했다. 결국 주인은 본인이 어떤 사실을 위반했는지 확인서를 작성하고 시정명령서에 서명을 했다.

며칠 뒤에는 농관원으로 출석해 다시 조사를 받고 검찰에 송치돼 벌금이 부과될 것이라고 노 사무관이 설명했다.

음식점을 나서며 조금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이럴 때마다 마음이 좋지 않으시겠어요.” 권 계장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식당이나 전통시장은 생계형이 많아 200만~300만원 벌금도 큰 타격이 된다”며 “대부분 고의적인 것이 아니라 실수나 관리 소홀로 처벌을 받기 때문에 단속하는 입장에서도 안타까울 때가 많다”고 말했다.

특히 요즘처럼 경기가 안 좋을 때는 단속반을 대하는 태도도 부드러울리가 없다. 정육점에는 거친 분들(?)이 많아 단속을 하고 있으면 일부러 큰 소리를 내며 칼로 도마를 내리치고 고기에 칼을 꽂기도 하는 등 위협적 분위기를 연출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권 계장은 “사실 그럴 때는 섬?하기도 하다”고 웃으며 말했다.

근처 식당을 한바퀴 돈 뒤 월피동의 한 대형마트로 향했다. 이번에는 농산물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기로 했다.

고사리의 경우 국산은 산에서 채취해 절단면이 거친 반면 중국산은 절단면이 깨끗하다. 표고버섯은 꾹 눌러보면 국산은 탄력이 있어 누른 자국이 바로 원상복귀되지만 수입산은 천천히 올라온다. 토종생강은 크기가 작지만 중국산은 손바닥보다 큰 것도 많다.

권 계장은 “수입산은 검역상 흙을 그대로 들여올 수 없어 세척을 할 수밖에 없다”며 “흙당근, 흙생강, 흙우엉 등은 국산이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설명했다. “혹시 수입산에 일부러 흙을 묻힐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의심의 눈초리로 묻자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실제 몇 년 전 세척우엉을 수입해와 하우스내 흙속에 며칠 묻어놨다가 꺼내 국내산인척 속인 적도 있었다는 것이다.

점점 똑똑해지는 소비자에 맞춰 위반수법도 진화하고 있었다. 소비자들이 원산지 표시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안전하고 품질 좋은 농식품 제공을 위해 발로 뛰는 이들의 모습을 직접 보며 단속업무를 해보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오늘 저녁에는 국산콩으로 만든 된장에 신선한 우리 농산물 듬뿍 넣고 된장찌개를 끓여볼까?

구예리기자 yell@kyeonggi.com

사진=김시범기자 sbkim@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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