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깨어있는 민원실… 잠 쫓느라 ‘곤혹’ 상담하느라 ‘진땀’
어려서부터 어른들과 주변 지인들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말이다.
이러한 이유에서인지 왠지 공무원은 자기 계발과 여가 활동이 자유로울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기자라는 직업을 시작한 후 경찰,소방 공무원 등 현업 부서에서 근무하며 밤을 지새우기도 하는 공무원들과 몸을 부대끼며 활동한 후 본 기자의 고정관념이 깨지기 시작했다.
1일 체험활동을 코 앞에 두고 이들 직업 중 어떤 직업을 체험할 것인가 고민하는 찰나 뜻밖의 사실을 알아냈다.
365일 24시간 불철주야 전국 각지에서 몰려드는 민원을 해결해주는 ‘언제나 민원실’이었다.
새벽 2~3시까지 밤을 지새워도 끄떡없을 정도의 강체력과 야행성 체질을 자부하기 때문에 충만한 자신감을 가지고 도청 내 위치한 언제나 민원실 1일 체험에 나섰다.
29일 오후 밤 9시께 ‘언제나 민원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이세정 언제나 민원실장이 환한 미소를 띠며 본 기자를 맞이했다.
이 실장을 비롯해 직원들의 표정이 민원 업무를 담당해서인지 온화하고 다정한 말투가 진하게 배어 있었다.
민원 처리 업무 체험을 위해 민원실에 들어오기 전 옷매무새를 다듬고 최대한 환한 웃음을 짓는 연습을 했지만 역시 베태랑 직원들 앞에서는 영낙없이 덩치크고 우락부락한 아저씨의 느낌이 강하게 났다.
지난 2010년 3월 개소 후 현재까지 총 497만2천여건의 민원을 처리한 이 곳 언제나 민원실은 전국 유일의 365일 24시간 운영되는 민원실이다.
도정 상담을 포함한 생활불편민원 현장출동 처리, 여권민원 신청ㆍ발급 등을 처리하며 도민들의 실생활에 큰 도움이 되고 있는 언제나 민원실은 3년간 민원행정개선 우수, 주민등록업무 최우수, 공공정보화 우수 등 6개 분야에서 수상을 차지했다.
특히 올해 들어 사회적 약자 배려 민원행정시스템 보강, 고민을 청취하는 ‘라디오 민원실’, 민원처리 불만제로를 위한 ‘민원중재위원회’ 운영 등 이곳을 찾는 민원인들의 만족을 충족시키기 위해 시스템과 운영방식에 많은 변화를 꾀하고 있다.
1층은 여권교부와 접수, 생활민원 등을 해결하는 현장 민원실로서 6~7명의 직원들이 배치된 채 급한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방문하는 민원인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일부 시민들은 여권 신청을 위해, 신청한 여권을 발급받기 위해, 생활민원 고충을 상담 등 다양한 이유로 이 곳을 찾은사람들은 직원들의 친절한 설명과 안내를 들으며 민원을 해소하고 있었다.
이들 대부분은 야근 등 늦은 업무를 마치고 급한 민원처리를 위해 방문하는 사람들이었다.
유니폼과 뱃지를 단 채 여권 발급 부스에 자리 잡고 있던 본 기자는 틈틈히 미소짓는 연습을 하면서도 ‘오늘 하루만큼이라도 여권을 발급받는 사람들이 없었으면’하는 체험활동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드는 멍청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밤 11시께 40대 여성이 여권을 발급 받으러 본 기자가 있는 해당 부스 앞을 찾았다.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준비된 여권만 건네면 되는 간단한 상황이 이리도 부담스럽게 느껴지는게 이상할 정도였다.
당황해서인지 ‘언제나 민원실을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준비한 멘트를 하지 못한 채 어리바리 첫 역할을 마무리했다.
곧 이어 발급된 여권을 팩스로 보내는 작업과 사본 제작을 도와주면서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다.
바쁜 와중에도 이렇게 늦은 시간 민원실을 찾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다.
12시가 넘어서야 민원인들의 발길이 잠시 끊겨 직원들과 함께 차를 마시며 한숨을 돌렸다.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역시나 잠과의 싸움이 1순위를 차지했다.
장영주 민원상담사(45)는 “민원인을 맞이하다 보니 아무리 피곤해도 얼굴에는 미소를 머금고 있어야 한다”며 “업무가 끝난 후 집에 돌아가면 너무나 피곤해 잠만 자다 아이들보다 늦잠을 자 학교에 지각을 시키기도 하는 소홀한(?) 엄마이다”고 웃음지었다.
민원실 한켠에 인형과 동화책들이 눈에 띄었다. 야심한 시간 민원을 해결하는 사람들이 성인이라는 사실은 자명한 것인데 저 공간의 용도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기자의 의구심을 눈치챈 이 실장은 “야심한 시간에 돌볼 사람이 없어 아이를 데리고 오는 민원인들이 상당 수”라며 “민원처리가 40분가량 걸리는데 그 시간 동안 동행한 아이들이 무료하지 않도록 만들어진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민원인을 포함한 주변인까지 세심히 챙기는 그의 배려심에서 그동안 잊고 살았던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체험을 하는 동안 대부분의 민원인이 도내 거주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일부 민원인들의 경우 서울을 포함한 타지역에서 방문하는 일도 있었다.
지난 8월에는 김동성 쇼트트랙 선수가 해외 대회를 나가기 위해 새벽1시가 넘어 이곳 민원실을 방문해 여권을 발급해 가기도 했다.
이 실장은 “도민뿐만이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급한 민원처리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방문한다”며 “이러한 사람들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곳이 바로 언제나 민원실”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언제나 민원실의 시스템은 외국의 정부기관에서도 벤치마킹을 하며 도의 위상과 브랜드를 높이는 데 톡톡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미 이라크, 요르단, 베트남 등 외국 14개 기관에서 언제나 민원실의 운영방식 등에 관해 벤치마킹을 목적으로 방문이 이뤄졌다.
오는 2일에는 일본 가나가와현의회 민주당 의원 5명이 경기도의 특수시책 추진상황에 대한 현장조사를 목적으로 도청 민원실과 콜 센터를 방문할 예정이다.
이 실장은 “일본, 중국 등 세계 각국의 공무원들이 언제나 민원실의 기능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이것이야말로 경기도의 브랜드 가치를 세계적으로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편하게 쉬면서 밤을 지새우는 것과 달리 업무 시작 2시간이 채 되지 않아 삭신이 쑤시기 시작했지만 워낙 업무 시작 전 야행성 체질을 강조하며 자신감을 비췄던 모습이 생각 나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전화부스 상담에 자리를 잡고 늦은 새벽 걸려온 전화를 받으며 첫 콜상담을 시작했다.
용인의 한 임대 아파트에 거주하는 한부모 가정인 40대 여성이 직장과 거주지(서울)가 너무 멀어 다른 임대아파트에 입주하고 싶다는 고민 상담을 들으며 “힘드시겠어요”라는 틀에 박힌 대답만 반복한 채 실질적인 답을 내놓지 못했다.
본 기자와 1차 상담이 끝난 후 배테랑 이 실장이 전화를 연결받아 실질적인 상담을 이어갔다.
청약조건과 현재 분양 예정 중인 임대 아파트에 대한 설명 등 민원인이 가려운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이 실장의 상담기술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전화를 끊기 전 “힘내세요, 저도 한부모가정 밑에서 자라서 누구보다 그 고충을 압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끝말을 맺는 이 실장의 모습에서 진심으로 민원인의 고충을 함께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후에도 산재보험 적용대상 문의, 기초수급자의 애로사항과, 딸의 취업 관련 문의 등 많은 전화를 받을 때마다 직원들에게 SOS요청을 보내며 힘겹게 업무를 이어갔다.
새벽 4시께 몸이 녹초가 된 상태로 현장 내 근무하는 직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잠을 쫓기 위해 스트레칭을 하는 직원, 커피를 마시며, 머리를 지압하며 잠과의 사투를 벌이는 와중에도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고 민원인을 맞이하는 모습에서 ‘괜한 민폐를 끼치고 가는구나’라는 부끄러움과 함께 스르르 눈이 감겼다.
한편 언제나 민원실을 비롯해 수원역, 의정부역, 동두천역, 부천역, 평택역, 범계역, 부천종합운동장역 등 7개의 역 민원센터가 365일 오전 8시부터 밤10시까지 운영 중이며 언제나 민원실에 대해 자세한 사항을 원하면 언제나 민원실(031-8008-2258)로 문의하면 된다.
양휘모기자 return778@kyeonggi.com
사진= 김시범기자 sbkim@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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