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분만에 ‘치열한 의욕’은 사라지고 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입맛이 없을 때는 가스렌지 위에 살짝 구운 맨김을 손으로 북북 찢어 밥과 간장을 올려 싸먹는 것도 꿀맛이다. 특히 김은 단백질과 각종 비타민을 비롯, 무기질과 섬유질, 철분 등이 다량 함유된 알칼리성 식품으로 다이어트와 피부미용에도 효과 만점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단일 수산물으로는 최고의 수출량을 자랑하는 수출 효자 품목이다.
겨울비가 내린 지난 9일 ‘국민반찬’ 김이 밥상에 오르기까지 어민들이 얼마나 많은 땀을 흘리는지를 조금이나마 느껴보기 위해 김채취 선에 몸을 실었다. 요동치는 배 위에서 쏟아지는 비와 차디찬 바닷바람을 감내해야했던 3시간여의 김채취선 체험은 치열했다. 바다내음 가득했던 삶의 현장을 소개한다.
■ 악천후를 뚫고 ‘고고싱’
오전 7시 김채취 작업 일일체험을 위해 화성시 제부도 선착장을 찾았다. 답답한 도심에서 벗어나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모처럼만에 기분 전환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듯, 하늘에서는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굳은 날씨로 김 채취 작업에 나서려했던 상당수 배들이 잇따라 작업 포기하는 최악의 상황. 하지만 이른 새벽부터 제부도까지 나온 수고를 되풀이할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오늘은 날씨가 안좋으니 차라리 내일쯤 나가는게 어떨까요’라고 권유하는 김 채취선 선장 김승재씨를 설득해 체험을 강행하기로 결정했다.
무릎까지 오는 고무 장화에 팔을 제외한 상반신 전체를 덮는 방수복, 목에 거는 노란색 고무 장갑 등으로 완전 무장을 한 뒤 배에 올랐다. 선원 3명과 함께 조그만 배에 몸을 실은 뒤 곧바로 최대 20t가까운 김을 운반할 수 있도록 설계된 김 채취선에 옮겨 탔다.
■ 쾌청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출항
드디어 출항. 날씨가 좋지 않아 살짝 아쉬웠지만 날아다니는 갈매기들의 배웅을 받으며 물안개 낀 서해의 새벽 바다를 달리는 기분은 제법 상쾌했다. 시원하게 달리는 배안에서 시원한 새벽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니 일상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듯한 기분도 느껴졌다.
치열한 삶의 현장을 체험하러 왔다는 생각을 잊고 잠시 놀러온 듯한 기분에 취해 20여분을 달리는 사이 거대한 모습의 김 양식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김 양식장의 모습은 마치 바다 위에 큰 김을 둥둥 띄워놓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궁금한 것들은 많았지만 김 채취선의 요란한 모터소리 때문에 대화를 거는 것은 아예 불가능했다. 그저 눈치껏 선원들의 행동을 따라하는 방법뿐이었다. 김 채취 작업은 생각보다 기계화 돼 있었다. 벌집 모양의 그물 위로 배가 지나가면 그 위에 주렁주렁 달려있는 김이 저절로 김 채취선 안으로 들어오는 구조였다.
선원들이 직접하는 일은 김 채취선이 50m 길이의 긴 그물에서 김 채취를 마치고 나면 다른 그물로 이동할 때 김 그물이 배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고정하는 일이었다. 사실상, 이날 김 채취 작업을 처음 경험하는 기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저 선원들의 일에 방해만 되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 치열했던 3시간여의 김 채취 작업
충분히 한몫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철저하게 무너지는 사이 작업은 쉬지 않고 계속됐다. 온 몸이 땀으로 젖을 만큼의 격무는 아니었지만, 3시간여에 걸친 김 채취 작업은 고되기 이를데 없었다. 점점 굵어지는 빗방울과 온 몸 구석구석을 파고드는 차디찬 바닷바람은 상쾌했던 기분을 으슬으슬한 몸살 기운으로 바꿔 놓았고, 파도에 좌우로 요동치는 배와 요란하게 돌아가는 모터에서 나오는 매캐한 매연은 머리를 아프게 만들었다. 또 어느샌가 장화와 비옷, 두꺼운 겨울 파카, 작업복, 고무장갑 사이로 침투한 빗물과 바닷물은 손과 발을 시리게 만들었다.
김 채취 작업이 시작된지 30분 여가 지나자 치열한 삶의 현장을 체험해보겠다는 의욕은 온데 간데 없고, 그저 빨리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만이 머리를 지배하고 있었다.
‘빨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 속을 가득 채우고 ‘아, 언제 끝나지?’라는 말이 수십차례 입에서 멤도는 사이 김 채취선은 바다내음을 가득 머금은 김들로 차오르기 시작했다.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해 극도의 피로감과 짜증이 밀려올 때 쯤 3시간여에 걸친 김 채취 작업은 끝이났다.
‘드디어 끝났다’는 기쁨을 안고, 보온병에 담아온 물로 탄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는 사이 김으로 가득 찬 채취선은 경매가 있는 궁평항에 도착했다. 요란한 배의 모터가 꺼지고 나서야 신승재 선장이 말을 건넸다. 신 선장은 “날씨가 안좋아서 생각보다 더 힘드셨죠. 그래도 12월은 날씨가 그나마 따뜻해 작업하기 수월한 편입니다. 추위가 한창인 1,2월에 채취 나갈때 체험 한번 하러 더 오시죠”라며 농담을 건넸다. 춥지 않은 날씨 속에서 진행된 작업에 참여하고 나서도 감기 몸살 기운이 느껴지는데 1,2월 새벽배를 탄다는 상상을 하니 눈앞이 아찔했다.
이날 김 경매는 작업에 나선 채취선이 거의 없었던 관계로 현장에서 별다른 절차 없이 곧바로 이뤄졌다. 이날 채취한 10t 가량의 김을 대형 크레인이 트럭에 옮겨 싣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채취선과 온몸 곳곳에 붙은 김을 떼내는 등 작업을 마무리하는 일 또한 쉽지 않았다. 고무 장화와 작업복을 벗어던지자 옷과 양말은 속까지 푹 젖어 있었고, 고무 장갑 속에 있언 손은 목욕탕에 장시간 머물렀던 것 흰색으로 퉁퉁 불어있었다. 또 짠내로 가득 쩌들은 몸은 한기로 오들오들 떨렸고, 머리가 띵하게 아파오면서 극도의 피로감이 몰려왔다.
■ 국민반찬 김이 밥상에 오르기까지
작업을 마친 뒤 뜨거운 짬뽕국물을 마시며 신 선장의 설명을 들었다. 신 선장은 “김 채취는 11월부터 15일 주기로 1년에 8~9회 가량 나간다”라며 “매년 4월부터 김의 포자를 굴 껍질에 붙여 그물을 치고 영양제를 주는 등의 준비 작업을 해야하는데 준비작업을 모두 마치면 김 양식의 80~90%는 끝난 셈”이라고 설명했다. 오늘처럼 고된 작업이 1년간의 김 농사를 마무리하는 비교적 간단한 작업이라는 뉘앙스의 설명이었다. 한참 후의 일이지만 이날 작업을 마친 뒤 기자는 12시간 가량을 기절하듯 잠에 빠져버렸다. 만약 혹한기에 진행된 1,2월 중 작업이었다면 피로감은 이보다 훨씬 더 컸을 것으리라. 치열했던 3시간여의 김 채취 작업을 체험 마친 뒤 제부도를 뒤로 하며 국민반찬 김이 밥상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어민들의 노력이 필요한지를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또 밥상에서 김을 볼때마다 힘겨웠던 김채취선에서의 3시간을 떠올리며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민수기자 kiryang@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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