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고 부드러운 가래떡 찬물에 풍덩… 말랑말랑 쫄깃쫄깃 참을 수 없네
굽이 높은 엄마의 하이힐을 몰래 신어봤지만 넘어지기 일쑤였고, 새빨간 립스틱을 조그마한 입술에 바르고 거울을 봤지만 입술만 둥둥 떠 있는 것 같은 모습에 왈칵 울어버린 때도 있었다.
“어떻게 하면 얼른 어른이 될 수 있지?” 그 즈음 생각한 방법이 ‘떡국’을 열 그릇쯤 먹는 것이었던 것 같다. “떡국 먹으면 한 살 먹잖아? 열 그릇 먹으면 훌쩍 스무 살 되겠다.”
우리는 설날에 떡국을 먹음으로써 한 살을 더 먹는다고 생각한다. 친구를 만나면 거리에 늘어선 카페에 앉아 커피와 함께 맛있는 빵을 먹고, 축하할 날에는 옹기종기 모여 케이크에 촛불을 붙이면서도 새해를 맞이할 때면 떡국을 먹는다. 그런걸 보면 우리는 모두 ‘떡국을 먹어야 한 살을 더 먹는다’라는 암묵적 동의를 하고 살아가는 듯 하다. 갑오년 새해, 그래서 떡집을 찾았다.
‘2014년 갑오년 새해’를 앞두고 이른 새벽 5시에 떡집의 불이 밝혀졌다. 시장 안에서 다른 가게들보다 이르게 문을 여는 가게가 떡집이 아닐까 싶다.
가게에 들어서니 곡식들이 담긴 대야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지난 2008년부터 6년째 이곳에서 부인과 함께 떡집을 운영하고 있는 지중근 사장님(48)은 밀려드는 가래떡 주문에 전날 밤 미리 쌀을 불려놓았다.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사장님이 건넨 컵에는 장모님이 직접 만드셨다는 식혜가 가득 담겨 있다. 식혜도 방앗간에서 직접 빻은 엿기름 가루로 만들어 판다. 식혜 한 컵 ‘원 샷’하고 나서 일을 시작했다.
대야에 가득 담겨있는, 4~8시간을 불린 쌀의 물을 빼고 제분기에 넣으니 곱게 빻아진 흰 가루가 쏟아져 내려온다. 한 번 빻아진 쌀가루에 약간의 물을 붓고 조물조물 반죽을 하는데 그 순간 사고를 쳤다. 바닥에 쏟아져 흩어진 쌀가루들을 보자니 부끄러운 마음에 배시시 웃음이 났다.(다시 한 번 죄송하다).
고운 쌀가루를 만지며 기자가 “와 정말 예뻐요!”라는 감탄사를 내뱉기도 전에 다시 한 번 대야를 들어 올려 제분기에 넣는다. 두 번은 빻아야 입자가 곱고 부드러운 가래떡이 완성된단다. 또다시 한 번 제분기를 거쳐 쏟아지는 쌀가루는 흰 천처럼 얇게 빛났다.
곱게 빻은 쌀가루를 30분간 쪄낸 후 기계에 넣고 떡을 뽑아낸다. 동그란 구멍에서 긴 가래떡이 뽑아져 나오는데 이 떡을 다시 기계에 넣는다. “이것도 두 번이에요?”라고 물으니 가래떡을 뽑는 기계가 반죽도 하는 것이라서 이렇게 해야 더욱 쫄깃하고 질 좋은 가래떡을 만들 수 있다고 답해 주신다.
가래떡을 뽑는 과정 중 가장 중요한 일이라면 떡을 뽑아내며 찬물에 잠시 담갔다가 꺼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가래떡이 나오면서 엉키거나 들러붙지 않는다고 한다. 그냥 먹을 것은 금방 뽑은 대로 팔고, 떡국에 넣을 것은 잘 말린 후 기계에 넣어 썰어 판다. 썰어낸 떡은 1kg, 2kg, 10kg 용량 별로 봉지에 담아 판다.
수수도 두 번씩 빻아 수수가루를 만든다. 수수가루로 만든 수수부꾸미는 광교산을 찾는 등산객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떡 만드는 거 처음 봤어요”, “신기해요” 연신 조잘대는 기자에게 사장님은 케이크와 빵에 익숙한 젊은 세대는 소비 패턴이 다르다보니 떡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씀하셨다. 흔히 알고 있는 떡 케이크 이외에도 떡 샌드위치, 떡 쿠키 등을 판매하는 떡 카페가 등장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전통방식에서 벗어난 다양한 종류의 떡 제품들이 계속해서 나오면서 달라진 소비자들의 눈높이를 맞춰가고 있는 것.
“시장 안이긴 해도 대학가인데, 왜 이 곳에서 떡집을 운영하세요?”라고 묻는 질문에 사장님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도시에도 곳곳에 남아있는 ‘말날(午日)’의 풍속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말날은 ‘말(馬)’이라는 의미의 ‘오(午)’ 자(字)가 들어간 날로, 팥떡을 해서 마구간 앞에 놓고 말의 무병과 건강을 빈다. 오늘날에는 풍년에 대한 감사의 뜻을 나타내는 가을고사의 날로 10월 말을 택한다. “가을걷이 이후에는 고사떡을 나눠먹는 말날 풍속이 광교산 등지에서 유지되고 있어서 10월부터는 쭉 바빠요. ‘기(氣)’를 상징하는 말처럼 모든 것이 왕성하고 풍요롭게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겠죠.”
분홍빛, 초록빛 반죽을 기계에 넣으니 기계에서는 쉴 틈 없이 동글동글한 꿀떡이 떨어져 나온다. 꿀떡이 엉겨 붙지 않게 양손을 써가며 기름을 고루 발라 쟁반에 올려놓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내 입으로 쏘옥 들어간다. “떡집의 매력이 이거에요. 초반에 시설투자를 한 번 하면 기술이 있는 한 계속해서 떡을 뽑아낼 수 있다는 거죠.”
떡집하면 왠지 쌀가마니 쌓여있는 모습이 상상된다는 기자의 말에 “예전에는 손님이 직접 쌀을 불려 가져오는 경우가 대다수였지만, 지금은 10%에도 못 미친다”며 오히려 떡집은 재고가 쌓이지 않고 회전율이 좋다는 말도 덧붙이신다. 기계에서 나오는 바람떡을 받아내는 손은 분주하다. ‘유천 떡 방앗간’의 긴 하루가 간다. 일하며 조금씩 입으로 들어간 떡 때문인지 배도 부르고, 사장님의 인심으로 마음도 충만해진다.
새해를 맞아 새로운 다짐을 하나씩 마음에 품어 본다. 그 소망들을 설날 떡국을 함께 먹으며 나누는 것은 혼자서 하는 결심보다 쉽고 행복하다. 설날에 떡국을 꼭 먹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 아닐까.
이제는 죽기 보다 싫은 나이 한 살 먹는 것. 그 사실을 알면서도 희고 긴 가래떡으로 만든 떡국을 먹는다. 특히 올해는 두 그릇을 먹어야겠다.
글 _ 김예나기자 yena@kyeonggi.com
사진 _ 전형민 기자 hmjeon@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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