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레이서 ‘미하엘 슈마허’처럼? 현실은 범퍼카 타는 청년…
통상 ‘카레이싱’이라고하면 화려하지만 거칠고, 위험하다는 게 대부분 사람들은 인식한다. 기자는 일일체험의 기회를 맞아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봤을 카레이서를 체험하기로 했다. 선뜻 결정은 내렸지만, 국내 레이싱경기장은 영암, 태백, 인제 3곳이 대표적으로 체험을 위해 찾아가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그러던 중 마침 안산에 위치한 ‘스피드웨이’ 서킷에서 ‘슈퍼레이스 슈퍼1600클래스’에 출전할 미니 레이싱카의 드라이버를 선발하는 컨테스트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고, 국내 레이싱팀인 ‘모터타임’ 윤종덕 단장의 도움으로 일일 카레이서 체험의 기회를 얻었다.
우려했던 비 소식은 피했으나, 서킷을 찾는데서부터 난항을 겼었다. 우여곡절 끝에 찾아낸 서킷은 예상했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서킷이 맞긴 한 건가’ 이리저리 살피는 기자에게 건장한 체격의 한 남성이 다가왔다. ‘모터타임’ 윤종덕 단장이었다. 윤 단장은 정식 테스트가 시작되기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다며 주행체험을 하게 될 경주차량으로 안내했다.
기자는 모터스포츠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일단 상대부터 파악할 요량으로 다짜고짜 보닛부터 열어달라고 했다. 열어줘 봐야 고작 아는 거라고는 커다란게 엔진이요. 액체가 담긴 네모난 통이 오일 박스라는 것 정도였다. 눈치를 챘는지 이내 윤 단장이 한 여성카레이서를 소개했고, 이 여성 카레이서는 기자에게 경주차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한국은 외국과 달리 경주용 차량을 따로 제작하지는 않는다. 일명 ‘박스카’라고도 불리우는 한국의 경주차는 국내에서 양산되고 있는 일반차량 중 기준치 이상 판매가 된 차량에 한해서 경주용으로 개조가 가능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때문에 외국의 경주전용차량인 ‘F1’ 의 납작하고 독특한 외형과는 달리 국내의 경주차는 일반인들에게도 친숙한 겉모습을 가지고 있다. 차량의 내부는 뒤 좌석과 조수석을 모두 떼어내 운전석만 덩그러니 놓여 있고, 운전석 옆으로는 두터운 철제봉이 가로 뉘어 있다.
‘롤케이지’라는 이름의 이 철제봉은 차가 뒤집히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드라이버를 보호하기 위해 운전석에 설치된 내부장치다. 특수제작된 운전석 ‘버킷 시트’에는 5갈래로 나뉘어 몸을 감싸도록 설계된 안전벨트가 장착돼 있다. 갈래 수에 따라 3점식, 4점식, 5점식 벨트로 나뉘며 경기에서 허용되는 것은 4점식부터다. 일반 승용차와 별다른 차이를 느낄 수 없는 겉모습과는 달리 내부는 드라이버의 안전을 극대화할 수 있는 구조로 개조된 모습이었다.
여성 카레이서 전난희(34) 선수는 “카레이서라고 하면 보통 위험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안전장치가 드라이버를 보호하기 때문에 경기 때도 선수간 약간의 배려만 있다면 오히려 일반도로에서 주행하는 것보다 안전합니다”라고 말했다.
명색이 카레이서 일일체험인데, 주행 한번 해보지 못하고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 테스트용 MINI 노멀 차량을 타고 서킷주행을 체험하기로 했다. 주행에 앞서 카레이서 재킷과 헬멧, 장갑을 착용한 뒤 전 선수의 동승하에 경주차를 몰고 서킷에 들어섰다. 별것 아니라는 듯 과감하게 엑셀을 밟은것 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여유는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초입부터 커브라기보다는 유턴에 가까운 구간이 앞을 가로막았다.
출발 전 아마추어 카레이서들이 경고했던 ‘마의 구간’ 이 분명했다. 일명 ‘김수로 코스’로 통하는 이 코스는 영화배우 김수로가 모 방송촬영 당시 구간 통과에 애를 먹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어디서 생긴 자신감일까. 코너에 진입하자마자 엑셀 위에 얹어놨던 오른발에 힘이 들어갔고, 차는 그대로 바깥쪽으로 밀려났다. 애써 당혹감을 감췄지만, 한없이 느려진 속도는 숨길 수가 없었다. 사실 주행 전 기자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차있었다. 서킷을 달리는 차량들의 속도도 그다지 빨라 보이지 않았고, 빨리 달리는 것만큼은 카레이서 못지않게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백미러에 비친 기자의 모습은 머릿속에 그토록 그려왔던 전설적인 카레이서 ‘미하엘 슈마허’의 모습이 아닌 놀이공원에 범퍼카 타러 온 청년의 모습뿐이었다. 계속된 난코스로 멘탈에 금(?)이 가기 시작할 때였다. 전 선수는 “코너를 진입할 때는 코스의 바깥쪽으로 주행한 뒤 코스가 꺾이는 부분에서 다시 최대한 안쪽으로 붙어 코너를 통과하고 코너가 끝나는 지점에서 다시 바깥쪽으로 탈출하는 게 코너를 빠르게 통과하는 요령입니다”라고 코스 주행법을 설명했다.
‘아웃-인-아웃’ 의 공식에 맞춰 정확한 타이밍과 지점에서 엑셀과 브레이크, 기어를 컨트롤해 코너를 최대한 빠르게 탈출하는 게 관건인 셈이다.
■프로의 세계에서 찾은 ‘쾌감’
얼떨결에 주행체험을 마친 뒤 대회에서 사용되는 경주차량으로 시승을 해보기로 했다. 실제 주행속도를 느껴보기 위함이었다. 기자가 이때까지 크게 착각하고 있었던 것은 모터스포츠는 다른 스포츠와 달리 여성과 남성의 구분이 따로 없이 동등하게 경쟁이 치뤄진다는 것과 기자를 태우고 시범주행을 할 이 여성 카레이서는 쟁쟁한 남자선수들과 함께 아무런 어드벤티지없이 경기를 치러 당당히 여성 최초 1위를 차지해낸 인물이라는 것 이 두 가지다. ‘남성 카레이서보다야 거칠지 않겠지’ 여전한 착각 속에 Cruze 레이싱카 조수석에 자리했다. 안전벨트와 몸 사이에 유격이 생기면 위험하다는 충고에 ‘괜찮다’는 말과 함께 조용히 벨트 조임끈을 한 번 더 당겼다.
“저도 이 서킷은 한 번도 달려보지 않아서 완전한 속도를 보여드리기는 힘들 것 같네요”라는 전 선수의 말에 어느정도 안심은 됐지만,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했고, 경주차가 서킷에 들어서기도 전에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엔진 소리가 한번 크게 울렸을까. 눈 깜짝할 새에 출발지는 아득히 멀어졌고, 정신도 함께 아득해졌다.
‘그래 직진 코스잖아, 커브에서는 이렇지 않겠지.’ 기자의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갔고, 결국, 주행 내내 조수석 손잡이를 부여 잡은 채 진땀을 빼야했다. 두 바퀴를 돌았을까. ‘이제 충분히 체험한 것 같네요’라는 말이 미처 입 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서킷 출구를 지나쳐 버렸다. 서킷에서 후진은 규정상 불가능하다. 전 선수는 원망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기자를 외면한 채 전방만을 주시하며 3번째 주행을 이어갔다.
3바퀴째. 벌써 코스가 익숙해졌는지 전 선수는 전보다 더 능숙하게 서킷을 내달렸고 기자에게 구간구간 코스의 특성과 공략법 등을 세세하게 알려줬다. 믿음이 생긴 탓인지, 적응이 된 탓인지, 귀에만 들어오고 머리에는 새겨지지 않던 전 선수의 코칭이 하나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고, 앞서 직접 체험했던 주행과 어느 정도 비교해 볼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그때부터였을까. 두렵기만 했던 서킷 주행이 묘한 스릴로 다가오기 시작했고, 드라이버가 입으로 말한 대로 정확하게 코스를 통과할 때의 쾌감도 찰나였지만 느낄 수 있었다. 조수석에 동승했을 뿐인데 주행을 마치고도 숨이 차고, 피로감이 몰려왔다.
전 선수는 “카레이싱은 정적이면서도 동적인 스포츠로 뛰어난 정신력과 판단력 그리고 체력을 요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카레이서들은 차량관리 외에도 철저한 체력관리를 병행하고 있습니다”라고 강조했다.
‘이 느낌때문에 카레이서를 하는구나’ 헬멧을 벗으면서 문득 든 생각이었다. 순간순간 들었던 묘한 기분이 짧지만 강하게 뇌리에 새겨졌다.
카레이싱이라는 스포츠가 국내실정에는 맞지 않다고 하는 사람도 물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맞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어찌 보면 카레이싱을 아직 잘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관련기관들의 적극적인 홍보로 자연스럽게 모터스포츠가 팬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았을 때 진정한 국내 모터스포츠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매력’이 아닌 ‘마력’으로 표현된다는 카레이싱. 그 1천분의 1초를 다투는 스피드의 세계에 잠깐이라도 빠져본다면 카레이싱만이 가진 ‘특별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박준상기자 parkjs@kyeonggi.com
사진=추상철기자 scchoo@kyeong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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