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현장체험] 인천 중앙도서관 사서

세계 책의 수도 현장을 가다
‘백조’의 우아한 뛸걸음으로… 도서관이 살아있다!

인천시는 국내 최초로 유네스코 선정 ‘2015 세계 책의 수도(World Book Capital 2015)’로 뽑혔다.

시는 아시아지역 도서 나누기, 북한 어린이에게 책 보내기, 인천을 중심으로 한 도서 기증과 책 추천 릴레이, 찾아가는 북 콘서트 등을 추진하며, 세계 책의 수도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 세계 책의 수도로서의 인천은 독서 인프라가 부족하기만 하다. 일선 학교 도서관은 전국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장서 보유량을 보이고 있으며, 이는 인천대 등 지역에 이름난 대학들조차 마찬가지다.

세계 책의 수도에 걸맞은 인천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부족한 독서 인프라를 기사에 담은 것만 올해 여섯 차례에 달한다. 심지어 다섯 차례에 걸쳐 문제점을 알리고, 대안까지 찾아보는 기획기사도 썼다.

이처럼 세계 책의 수도 인천에 많은 관심을 두고, 많은 도서관 관계자와 전문가를 만나면 항상 듣는 말이 있다. 바로 ‘도서관 사서라는 직업은 그야말로 백조와 같다’는 말이었다. 백조, 평소 시각에서 사서라는 직업은 우아하고 고귀해 보였던 게 사실이다.

지식의 창고와도 같은 책에 둘러싸여 사는 사서가 부러워 보일 때도 잦았다. 그러나 사서를 백조로 칭하는 데 이러한 이유가 전부일까? 그 궁금증을 해결하고자, 또 세계 책의 수도 인천을 만들어 나가는 일등공신인 직업을 경험하고자 일일 사서에 과감히 도전해 보기로 했다.

■도서 29만여권ㆍ비도서 1만여권… 인천시민의 ‘정보 창고’

4월 11일 오전 7시30분께 백조라고 불리는 사서의 풀리지 않는 궁금증을 품고, 인천 중앙도서관을 찾았다. 1983년 9월 개관한 중앙도서관은 ‘중앙’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지역 최고 수준의 독서 인프라를 자랑하는 곳이다.

자료 보유량은 도서가 29만여 권, 비도서가 1만여 권에 달하며, 순회문고 사업·택배 사업 등으로 인천지역 학교와 홀몸 어르신 등 소외계층 가정에 책을 배달하는 사업도 벌이고 있다.

또 전국에 30여 곳밖에 없는 다문화자료실이 바로 이곳 중앙도서관에 있다. 하루 입관객만 무려 4천여 명에 달하고, 도서관에 있는 자료를 이용하는 사람 또한 3천여 명에 이른다. 명실상부 인천 시민이 가장 애용하는 도서관이다.

■무인반납함 수거 ‘오르락 내리락’ 시작부터 굵은 땀

중앙도서관의 사서는 오전 8시부터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자료실 개방 시간을 무려 1시간여 남겨두고 있지만, 사서들은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길 시간조차 없다. 무인 반납함으로 들어온 도서 회수를 비롯해 도서 반납, 도서 정리, 청소 등의 준비 업무로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시간이 흘러간다.

처음 경험할 일도 이 중의 하나다. 바로 무인 반납함 수거 도서의 회수다. 도서 회수를 위해 일반자료실이 위치한 4층과 무인 반납함이 있는 1층 로비를 무려 3번이나 왕복했더니, 종아리에는 그새 타조알만 알이 자리를 잡았다. 얼굴을 온통 적신 땀방울은 자연스럽게 ‘초반부터 만만치 않네’라는 생각을 머금게 했다.

무인 반납함은 자체 반납 기능을 가진 보관함과 수거 기능만 가진 보관함으로 나뉜다. 도서대출 기간 내 반납이 이뤄지는 도서는 대부분 자체 반납 기능 보관함으로 수거되는 반면, 수거 기능만 가진 보관함은 장기간 미납된 도서가 대다수다.

이처럼 서로 기능이 다른 두 가지 반납함이 설치된 이유는 장기간 도서를 반납하지 않아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한 시민이 반납 기능이 없는 보관함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비디오 대여가 한창 활성화됐던 1990년대 장기간 미납한 비디오를 늦은 밤 몰래 반납함에 넣던 옛 기억이 문득 떠오른다.

세 번째 왕복을 하면서 어느새 업무가 몸에 익은 것인지 연방 땀방울을 소매로 훔쳐내면서도 옛 생각에 피식 한번 웃어보는 여유가 생겼다. 휴관인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아침 8시와 오후 3시, 저녁 8시까지 모두 세 번에 걸쳐 무인 반납함에서 도서를 거둬가는 사서들이 새삼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자료실 개방시간 맞춰 지식 찾아 밀려드는 시민들

오전 9시 자료실이 개방되자, 시민이 하나 둘 자료실에 들어섰다. 이른 시간이다 보니, 이용객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10여 명에 달하는 이용객 대다수가 어르신이나 리포트용 참고 도서를 대출하러 온 대학생이다. 오전 11시가 되면서 모여든 사람이 어느덧 30여 명을 넘어섰다. 대학생이라고 보기에는 나이가 많아 보이는 청년의 행렬이 줄을 잇는다.

이들 청년은 잠시 쉴 곳을 찾아 자료실을 방문한 듯 추천도서를 훑어보고는 다시 사라진다. 직접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이들 청년은 대부분 취업준비생일 것이다. 도서관은 독서 또는 공부를 할 수 있는 열람실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많은 취업준비생이 몰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경기일보에 입사하기 전까지 종종 중앙도서관을 찾아오던 기억이 떠오른다. 잠시 딴생각을 품을 때, 한 어르신이 책을 반납하러 왔다. 종이 가방에서 고이 담긴 책 다섯 권을 꺼내는 어르신의 모습을 보며, ‘독서를 즐기시는 어르신도 많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반납하는 작업은 매우 쉽다.

예전에는 일일이 책에 붙여놓은 바코드를 불러 읽어와야 했지만, 최근에는 RFID 기술이 도입돼 책을 최대 다섯 권까지 RFID 인식기 위에 올려놓기만 해도 동시에 모든 내용을 읽어낸다.

더욱이 모든 회원 정보가 데이터베이스로 정리돼 있어 RFID 인식기를 통해 불러온 내용과 맞물려 2~3번의 마우스 클릭으로도 반납 작업을 끝낼 수 있다. 대출해 주는 것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으며, 무인 대출기 또한 설치돼 있어 대출·반납 작업은 간단한 사용법만 익히면 누구라도 손쉽게 해낼 수 있다.

■셜록홈스도 울고갈 도서분류… 잘못 꽂히면 ‘식겁’

새삼 일이 몸에 익어간다고 느껴질 때쯤 생각지도 않던 복병이 나타났다. 바로 반납된 도서를 청구기호에 따라 분류해 정리하는 작업이다. 청구기호는 도서마다 가진 일종의 주소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예를 들어 ‘800’으로 시작하는 청구기호를 가진 도서는 문학 도서를 의미하며, 그 뒤에 나열된 글자 등은 지은이와 책의 제목 등을 뜻한다.

도서관에 보관된 도서는 이러한 청구기호를 하나씩 갖고 있고, 그 기호에 따라 분류돼 각자 알맞은 책장에 자리를 잡게 된다.

매일같이 청구기호를 다루는 사서들은 한 번만 훑어봐도 이 도서가 본래 있던 책장이 어디인지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셜록 홈스조차 풀지 못할 암호나 다름없다.

결국, 사서들이 1시간 정도면 수월하게 해낼 일을 무려 3시간에 걸쳐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행여나 잘못된 곳에 책이 들어가게 되면, 찾는 시민은 물론 전문 사서조차 그 책을 찾을 방도가 만무하기 때문에 최대한 실수하지 않으려 조심한 탓도 있다.

다행히 무지한 일일 사서의 교사가 되어준 박경애 사서 팀장이 하나부터 열까지 옆에서 알려준 덕에 실수는 없었다.

■무료택배 대출 아시나요? 정성껏 ‘포장’ 진화하는 서비스

오후 3시 자료실을 찾는 시민이 점차 많아지면서 학교를 마치고 온 학생들도 서서히 모이기 시작했다. 중앙도서관의 특색 사업인 무료택배 대출서비스를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장애인·아기 엄마·다문화 가정·다자녀 가정 등 도서관을 직접 찾기 어려운 시민에게 신청한 도서를 포장해 택배로 보내주는 사업이다.

대출 신청은 전화 또는 인터넷으로 이뤄지지만, 도서 포장 작업은 전부 사서가 해야 한다. 도서 정리하는 데 지친 심신을 다시 채찍질하며, 한 권 한 권 정성스럽게 포장했다. 시민이 신간 도서나 인기 도서 등을 쉽게 알 수 있도록 각종 안내서를 같이 동봉하는 작업 내내 ‘인천이 세계 책의 수도로서 많은 것을 갖춰나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민 소통도 사서의 의무… 장기연체 독촉도 친절이 생명

사서는 근본적으로 책을 다루는 일을 하지만, 시민과 끊임없이 소통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정해진 시간 없이 도서 대출과 반납을 희망하는 시민이 수시로 오가기 때문이다. 기자라는 직업이 많은 사람을 상대할 수 있는 직업이듯이 사서도 많은 시민을 만나볼 기회가 있다. 그러나 사서를 체험하는 동안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이토록 힘들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었다.

아침부터 책과 씨름한 탓에 힘이 들었지만, 시민에게는 항상 상냥한 표정으로 대해야 한다. 도서관은 공공장소로서 시민의 독서를 위해 만들어진 기관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겨울에는 노숙인이 찾아와 독서를 할 수 있도록 마련된 의자에서 잠을 자는 일도 있지만, 사서는 화를 낼 수도 내쫓을 수도 없다. 도서 반납을 수개월째 미룬 시민에게 반납 독촉 전화를 하더라도, 도리어 왜 독촉 전화를 하느냐고 따지고 드는 시민에게조차 사서는 친절해야 한다.

독촉 전화를 직접 체험해보려 했으나, 각종 상황 등을 박경애 팀장에게 전해 듣고서는 포기했다. 행여나 적반하장으로 따지는 시민에게 화를 낼까 걱정이 컸기 때문이다.

박 팀장은 “도서관은 다수 시민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기에 시민 스스로 건전한 시민의식을 갖고 도서관을 이용해줬으면 좋겠다”며 “도서 반납을 미루거나 책을 손상한다면, 그만큼 다른 시민이 피해를 본다는 생각을 꼭 가져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세계 책의 수도 만들어가는 ‘일등 일꾼’ 그들에게 박수

책으로 시작해 책으로 끝나는 사서의 일은 오후 10시가 돼서야 마무리됐다. 시민이 떠난 자료실의 문을 닫기까지 만난 시민만 수백 여명인 듯하다. 모든 일을 마무리할 때 즈음 자연스럽게 ‘이래서 사서가 백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 위에 떠오른 모습은 우아해 보일지는 몰라도, 수면 아래에서 쉬지 않고 물갈퀴 질을 하는 게 바로 백조다. 책과 함께 생활하는 사서의 모습이 고상해 보일 수는 있지만, 시민을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는 사서의 모습이야말로 백조 그 자체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책과 씨름하며 얼굴과 온몸을 적신 땀은 사서가 세계 책의 수도 인천을 만들어가는 원동력이다. 해가 저문 중앙도서관 앞을 지나면서 문득 외로움을 느꼈다. 수천 명의 시민이 오간 도서관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고요히 잠들었다. 그러나 내일 또다시 사서의 손과 땀으로 도서관은 살아 움직일 것이다.

김민기자 suein84@kyeonggi.com

사진=장용준기자 jyjun@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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