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현장체험] 경기도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 요원

아파트 출몰 ‘새끼 너구리 형제’ 포획작전 특명

크고 동그란 눈망울이 매력적인 천연기념물 324호 수리부엉이. 흐드러진 봄을 마음껏 즐겨도 시원찮은 봄날.

그날의 사고는 녀석들의 자유를 유예했다. 아무것도 없다고 믿고 날았던 하늘, 빌딩 유리에 부딪혀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신속한 신고와 구조가 없었다면 녀석들의 삶은 그것으로 끝날 뻔했다. 갇혔던 시간이 얼마나 지겨웠을까. 두 달여 만에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사이, 한 마리가 ‘푸드덕~’ 날갯짓을 하며 서둘러 하늘로 비상한다.

기자의 손에 있던 다른 한 마리도 그동안 몸이 근질 했었는지 힘을 풀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시야 너머로 사라진다. 너른 벌판과 하늘에는 어떤 것이 보일까.

아마 녀석들이라면 이리 대답했으리라. ‘자유가 보인다’고. 녀석들을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낸 은인은 ‘경기도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이하, 야생동물센터).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야생동물의 치료와 재활, 복귀를 전담하는 일종의 야전병원이다. 지난달 28일 기자가 일일 야생동물 구조요원 체험을 위해 이곳 센터를 방문했다.

■ 야생동물 번식기 5월~7월 가장 바빠

지난달 28일 오전 10시. 예정된 약속시각 보다 30분 일찍 도착했다. 사실 조바심이 났었다. 취재를 마쳐야 한다는 ‘강박’은 아니었다. 위태로운 생명과 마주해야 한다는 ‘부담’이 더 컸다.

평소 관심 있기는 했지만 동물원 이외 공간에서 야생동물을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사고로 인해 상처나 장애를 입은 생명을 대하는 일이 수월치는 않을 거라 여겼다.

야생동물센터에 들어서자 말끔한 차림의 김희원 계장이 기자를 맞았다. 김 계장은 “보통 번식기인 5월에서 7월까지 구조 수요가 많이 몰려 가장 바쁘다”며 본격적인 체험에 앞서 센터 일을 간략히 설명했다.

야생동물센터는 수의사인 김 계장을 포함해 모두 5명의 수의사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구조와 치료 업무를 본다. 하지만 이는 공무원의 시계다. 수의사로서, 구조요원으로서의 시계는 다르다.

명목상 표기된 시간은 그렇지만 야생동물센터의 업무시간은 따로 없다. 매일 배정된 당직자가 구조요청을 받으면 사안의 심각성을 참작해 업무이외라도 구호활동을 하고 있다.

“기간제 근무자를 포함해 10명 정도의 인원이 경기남부와 북부를 포함해 사실상 경기지역 전역을 담당하고 있어요. 번식기에는 하루 5건 이상 구호활동을 하고 계류장과 입원실, 재활실에 있는 야생동물을 관리하고 치료하는 임무를 수행합니다. 여기에 연구기관의 역할도 함께 수행하면서 손이 열 개라도 부족할 지경입니다” 설명이 끝나자마자 기자에게 구호지시가 떨어졌다.

용인의 한 아파트단지 내 설치된 ‘트랩’(박스형 덫)에 잡힌 너구리를 인계 받는 것이 첫 번째 임무였다.

시청에서 너구리 민원을 해소하기 위해 설치한 트랩에 두 마리의 너구리가 걸려든 것이다. 센터에서 구조관리를 맡은 김종환씨가 운전대를 잡고 김계장과 기자가 현장으로 출동했다.

■ 아파트 단지 야생 너구리 포획 작전

현장에 도착하자 시청 직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광견병’ 감염의 가능성이 있어 섣불리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시청 직원의 안내에 따라 너구리가 잡힌 곳으로 향했다. 기자의 손에는 두 개의 이동장이 들려 있었다. 김종환씨가 미리 준비한 보정기구를 너구리 목에 걸고 밖으로 꺼냈다.

너구리가 앞뒤로 흔들며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기자가 재빠르게 이동장 문을 열었다. 그 안으로 너구리를 집어넣자 이내 조용해진다. 한 마리 포획에 성공한 것이다.

‘생각보다 쉽다’는 마음에 두 번째 너구리는 기자가 잡아 보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김 계장은 “보이는 것보다 기술이 필요한 일”이라며 기자를 말렸다. 결국, 기자가 이겼다. 두 번째 트랩으로 향했다.

기자의 손에 보정기구가 들렸다. 트랩의 문이 열리고 보정기구를 트랩에 밀어 넣었다. 그런데 워낙 발버둥을 치는 덕에 보정기구 고리를 너구리 목에 걸기조차 쉽지 않았다.

몇 번의 우여곡절 끝에 너구리를 포획하는 데 성공했다. 너구리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도시 너구리에게 자주 나타나는 피부병이나 영양실조도 없었다. 자세히 보니 덩치도 작았다.

김희원 계장은 “크기를 보아하니 태어난 지 2~3개월 된 어린 너구리인 것 같다”며 “눈이나 피부, 활동성 등을 보면 대충 건강 상태를 짐작할 수 있는데 비교적 건강한 상태로 보인다”고 말했다.

포획한 너구리는 야생동물센터로 옮겼다. 위생상태가 열악한 곳에서 장기간 생활할 경우 발병할 수 있는 광견병이나 디스템퍼(Distemper)와 파보(Parvovirus) 바이러스 검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검사결과, 음성으로 판정되면 곧바로 방사된다. 하지만 이들 너구리는 민원에 따른 포획이기 때문에 살던 곳으로는 갈 수 없다.

김 계장은 “방사의 원칙은 잡힌 곳에 풀어주는 것이 맞지만 이번 경우는 다르다”며 “인적이 드물고 너구리 생식 환경에 맞는 곳을 골라 방사한다”고 말했다.

■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

오후에는 수술실 업무가 맡겨졌다. 하얀 가운이 지급됐다. 복장을 갖추고 이승환 수의사의 지시를 받아 수술실로 향했다. 수술대 위에는 몸길이가 20cm도 채 안 되는 새끼 너구리가 있었다.

한 눈에 봐도 기운이 없어 보였다. 호흡하기도 힘든지 ‘쌕~쌕’ 소리를 내며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김준형 수의사가 상태를 보더니 인수공통전염병인 개선충, 즉 ‘옴’ 이라고 했다. “감염되면 굉장히 따갑고 가려워 일상적인 먹이 사냥조차 할 수 없을 정도”라며 “(이 너구리는) 이미 시간이 경과돼 가려운 수준을 떠나 아예 감각조차 잃어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피부 괴사가 많이 진행돼 손만 갖다대도 피부 조직이 떨어질 정도로 심각했다. 김준형 수의사는 “지금으로서는 항생제와 링거액 투여로 경과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착잡함을 감추지 못했다.

하나, 이내 또 문제가 발생했다. 쇠약해진 탓에 관절에 힘을 잃은 데다 혈관까지 약해져 링거액이 투여되지 않았다. 한쪽 팔을 잡고 펴야 링거액이 들어가는 식이었다.

기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새끼 너구리의 작은 팔을 잡고 링거액이 잘 들어 가는지 옆에서 지켜 보는 것 외에는 없었다.

새끼 너구리가 생사의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는 동안 옆에는 오늘 자유의 몸이 되는 수리부엉이 두 마리의 계측이 진행되고 있었다.

계측이란, 방사 전 몸통 크기나 부리 길이 등 신체사이즈를 기록하는 것을 말한다. 조류의 신체적 특징을 기록해 향후 한국에 서식하는 야생조류에 대한 실증적 연구자료로 쓰기 위함이다.

이와 함께 수리부엉이 발목에 국가별 일련번호가 적힌 메탈링(metal-ring)을 박는 작업도 했다. 발목에 부착된 일련번호를 토대로 조류의 경로와 먹이활동 등을 체크할 수 있다. 이 역시 조류연구 자료로 활용된다.

■ 안녕~ 다시는 잡히지 마

오후 3시에 가까워져 오자 황조롱이 재활훈련 시간이 다가왔다. 가죽 소재의 두꺼운 장갑을 손에 끼고 엄지와 검지를 수평으로 만든 뒤 그 위에 황조롱이를 살포시 올려놨다.

새끼손가락에는 황조롱이가 날아가지 못하도록 끈이 연결됐다. 오랜 센터 생활에서 황조롱이가 야생성을 잃지 않도록 하거나 기르도록 하는 재활훈련이다.

보통 먹이로는 병아리 사체가 쓰인다. 고정된 먹이 외에 먹이를 바닥에 던져 놓고 날아가 먹도록 하는 재활훈련도 있다. 동물들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학습속도에서 차이를 보인다.

그렇게 몇 번 먹이훈련을 하다 보니 어느 정도 손에 붙은 듯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렇게 조금씩 까칠한 황조롱이와 친해지려고 할 즈음 오전에 포획했던 너구리 두 마리의 검사결과가 나왔다.

결과는 다행히, 음성. 아무런 질병도 없다는 판정이 나왔다. 곧바로 방사 결정이 났다. 이동장에 넣은 뒤 김종환씨와 함께 인적이 드문 인근의 하천으로 너구리들을 옮겼다.

좁은 야생동물 이동장에 갇혀 30분 가까이 달려왔다. 이동장을 바닥에 내리자 너구리는 물끄러미 밖을 바라봤다. 문이 열렸다. 한 녀석이 기다렸다는 듯 하천으로 냅다 뛰쳐나간다. 그러나 한 녀석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김종환씨가 우리 옆을 툭툭 치니 그때서야 겨우 땅에 발을 디딘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는 가 싶더니 이내 여름의 수풀 사이로 사라진다. “잘 가고, 앞으로 잡히지 마~ 건강하고” 너구리들이 사라진 길을 보며 한마디 건넸다.

센터로 돌아와서는 계측이 완료된 두 마리의 수리부엉이마저 함께 방사했다. 그렇게 일과를 마치고 센터 직원과 야생동물에게 인사를 하고 나가는 길. 회복실에서 링거를 맞고 있던 새끼 너구리가 기운을 차리고 있는 지 시종일관 꼼짝 않던 작은 몸을 길게 세운다. 그 생명이 참 반갑다.

박광수기자

사진=전형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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