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이 든 마음, 흙에 바람에 내버려두니 새삼… 새 삶을 살고싶네
마약사범 1만명. 마약과 관련해서는 지구촌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청정국가라 불리던 대한민국도 마약으로부터 더는 안전지대가 아니다. 필로폰 등은 물론이고 본드 등을 추가한다면 청소년층부터 꾸준히 마약 등 향정신사범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 출입기자로 마약범죄와 관련한 많은 사건을 취재를 해왔지만, 바른 삶만을(?) 살아오던 기자에게 마약은 너무나도 동떨어진 세계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러던 중 국내 마약 수사 1인자이자, 마약범죄학이라는 학문을 창시한 전경수 한국마약범죄학회장(61)으로부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바로 필로폰에 중독된, 본드에 중독된 이들이 직접 찾아와 3~6개월간 자연과 함께 하며 마약중독을 치유하는 곳이 있다는 것이었다. 본 기자도 마약이 아닐 뿐, 술과 담배, 그리고 게임과 TV를 즐기는(?) 한 사람으로서 심신의 안정을 되찾고 ‘중독’에서 벗어나고자 그곳을 찾았다.
■ 깊은 산골, 자연과 더불어 마약중독 치유·재활의 공간
가평군 청평면 상천리 불기산 자락(해발 350m)에 있는 가평중앙교육원은 화창한 날씨 속 맑은 공기와 수려한 풍광이 일품인 곳이었다. 구불구불 언덕길을 따라 산 중턱에 다다르자 가평중앙교육원이라는 푯말과 함께 2~3명의 성인 남녀들이 내부에 꾸며놓은 밭에서 각종 채소를 가꾸고 있었다.
이들은 바로 마약 등 중독을 치유하고자 자발적으로 이곳을 찾은 중독자들이었다. 모두 밝은 얼굴로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채소를 가꾸는 모습 속에서 마약사범이라는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이곳에서 재능기부로 마약중독자의 치유를 돕는 노철환 경민대 교수의 안내를 따라 산꼭대기(?)에 있는 건물로 발을 옮겼다.
노 교수는 “자, 이제 이곳에서 중독치료를 받고자 찾아왔으니 새로운 마음가짐을 갖고 선서문을 낭독하세요”라고 말했다.
노 교수를 따라 ‘나는 인간바이러스(마약공급자)와 만나거나 만나주지도 않는다’ 등 4페이지 분량의 선서를 읽고 난 뒤 신발과 양말을 벗고 건물을 나섰다. 건물을 나서기 전 노 교수는 물이 한가득 들어 있는 사기그릇을 기자에게 건넸다. “지하 170m 암반수예요. 옹달샘이 따로 없죠. 쭉 들이키면 가슴속까지 개운함이 느껴질 거예요”
노 교수가 건넨 암반수를 한 번에 들이키고 건물을 나서자 나무와 돌로 만들어진 계단이 보였다. 이 계단에는 갖가지 명언이 적혀져 있었고, 전경수 회장의 말을 따라 발바닥 중앙이 모서리에 닿도록 걸어 내려가기를 시작했다.
전 회장은 “발바닥 중앙에는 모든 몸의 독소가 모인다. 그래서 하루 열두 번씩 자율적으로 발바닥 중앙을 자극하며 땀을 흘리도록 유도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마약범죄라는 것은 범죄이기도 하지만 일종의 정신병”이라면서 “정신병에 걸린 이들을 가둬놓기만 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마약사범이 검찰과 경찰에 적발돼 법원으로부터 받는 형량은 8개월에서 2년 사이. 교도소에서 마약을 하지 않더라도 치료가 되지 않으면 출소 후 다시 재범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 “흙냄새·풀냄새·물은 최고의 교육자재… 바람·햇볕·숲은 부교재”
찌릿찌릿한 발바닥을 이끌고(?) 오르락내리락을 계속하자 황토와 인진쑥을 섞어 만든 황토방으로 기자를 안내했다. 이곳에서 중독자들은 눈을 감고 명상의 시간을 갖는다. 기자 역시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고 명상에 빠졌다. 주변에서 풍겨오는 흙냄새와 시원한 산골바람, 따스한 햇볕을 받고 있다 보니 마음이 평안해지는 느낌이었다.
전 회장은 “중독자 대부분이 주변의 공급자 등 환경 때문에 마약 등에 중독이 되기 시작한 것”이라면서 “이곳에서 사람과의 왕래를 줄이고 몸과 마음의 평안을 되찾은 교육이수생들은 현재 사회에 잘 정착해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0여년간 마약중독자 309명이 이곳에서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서 사회로 복귀했으며 이 중 단 한 명도 재범을 일으키지 않았다고 한다.
30여분간 명상을 마치고 난 뒤 언덕 아래쪽에 펼쳐진 공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큼지막한 공터에는 배추와 고추 등 각종 밭이 구획을 나눠 자리하고 있었고 그 앞에는 이 밭을 가꾼, 또는 가꾸는 중독자의 이름(또는 가명)이 영문 이니셜로 적혀 있었다. 다른 한편에는 큼지막한 물구덩이를 가로지르는 외나무다리가 놓여 있었다.
중독자들은 뇌의 전두엽 등이 손상된 상태라 이 외나무다리를 처음에 건너지 못한다고 한다. 기자 역시 혹시 건너지 못할까 전전긍긍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다행히도 비틀비틀해도 무사히 건너편에 안착할 수 있었다.
하루도 빠지지 않는 술과 담배에 쩔어 있다고 해도 뇌의 전두엽 등이 손상되지는 않았나 보다.(근데 이게 다행인가?) 이어 단 하루만 체험하는 기자에게 밭을 내줄리는 없었고, 다른 사람이 가꾼 밭에 들어가 잡초를 뽑는 노동(?)을 해야 했다. 흙과 풀내음을 맡으며 30여분간 잡초를 뽑고 나니 기분 탓인지 아니면 정말 자연에 녹아들었는지 몸과 마음이 상쾌해지는 느낌이었다.
노 교수는 “가평중앙교육원의 3대 교육기자재는 흙냄새, 풀냄새, 그리고 물”이라면서 “바람과 햇볕, 숲이라는 부교재까지 이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음이온은 중독에 의해 전두엽과 해마, 연수기능이 악화한 중독자의 뇌를 치유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했다.
■ 오고 가고… 먹고 자고… 이 곳의 모든 것은 스스로 선택·결정
가평중앙교육원은 모든 것이 자유다. 자고 일어나고 명상을 하고 밥을 먹고 대소변을 보고 밭을 가꾸고 모든 것이 자유다. 이곳에 오는 것도, 나가는 것도 자유다. 단 1~2주 정도 후부터는 교육원에서 기초적인 가이드라인(일과표)을 제시한다.
프로포폴에 중독된 20대 유명 여자 모델은 입소 당시 생리도 하지 않고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중독된 상태였다. 그러나 6개월 후 그녀는 생리는 물론이고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새 삶을 살고 있다. 이미 매스컴을 통해 익히 잘 알려진 이야기다.
마지막으로 산에서 직접 뜯은 약초와 재배한 채소 등을 이용해 음식을 만들어 먹고 전 회장으로부터 수료증을 받았다. 하루 반나절의 체험이었지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 하루였다.
정상인의 몸과 마음으로 마약중독치유와 교육을 받은 터라 체험 후 딱히 달라진 점은 없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산골짜기에서 땀을 흘리고 흙냄새, 풀냄새를 맡으며 하루를 보낸 탓에 몸과 마음은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마약이든 술과 담배든, 자신의 의지만으로는 중독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건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복잡하게, 갈등을 껴안고 살아가기 때문은 아닐까. 왜 예전 선비들이 머리 아픈 일이 있을 때 산속 깊이 들어갔는지, 그곳에서 해답을 찾아 나왔는지 알 수 있는 하루였다.
안영국기자
사진=전형민기자
가평중앙교육원?
가평중앙교육원 가평중앙교육원은 전 회장의 사비와 한국마약범죄학회원들의 십시일반 성금을 모아 만들어졌다.
2010년에는 평생교육법에 따라 가평교육지원청으로부터 마약중독자 관리센터로 지정돼 중독자의 재활교육 및 지원을 담당하고 있다. 마약관련 물품과 서적을 모아놓은 박물관은10월 중 경기도에 정식 박물관 등재도 신청할 계획이다.
그럼에도 교육비는 무료다. 경찰에 몸을 담은 지난 수십년간 전 회장이 봐온 마약사범 대부분은 주변환경이 어렵고, 그 주변환경 탓에 중독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또다시 재범하는 악순환에 빠지는 것을 봐왔기 때문이다.
전 회장은 “남들은 물론이고가족들도 사비를 털어 중독자 치유교육센터를 만드는 내게 미쳤다는 말을 했다”면서 “하지만 중독자들이 이곳에서 재활의 의지를 다지고 다시 사회로 나가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활동하는 것을 보면 마음만은 뿌듯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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