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 직전 지자체 ‘복지 디폴트’ 위기… 지방자치 재설계 절실” “중앙정부 종속 아닌… 독립정부로 권한·책임 줘야 진정한 자치”
‘2할 자치’, ‘재정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을까.
본보는 2015년 새해를 맞아 지난 12월17일 수원 라마다 호텔에서 ‘지방자치재정, 위기를 말하다’라는 주제로 좌담회를 개최해 지방자치단체장들의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최종식 경기일보 편집국장의 사회로 진행된 좌담회에는 경기도 동서남북 지역을 대표해 염태영 수원시장과 정찬민 용인시장, 김만수 부천시장, 이필운 안양시장, 안병용 의정부시장 등이 참석해 지방재정 위기와 관련해 날 선 토론을 벌였다.
최종식 편집국장
오늘 이 좌담회는 지방자치단체장들 속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마련됐다. 경기도민들은 ‘지방자치단체가 돈이 없다’, ‘재정 위기다’라는 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어떻게 얼마나 어려운가’는 잘 모른다. 각 지자체가 처한 재정문제에 대해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줬으면 좋겠다. 수원시는 타 지자체보다 형편이 나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수원시는 현재 어떠한 상황인가.
염태영 수원시장
기준재정수입이 기준재정수요액을 초과해 보통교부세가 교부되지 않는 불교부단체가 전국에 수원, 용인, 성남, 고양, 화성, 과천 등 6개가 있는데 모두 경기도내 지자체이다. 그런데 수원이 지난 5년간 재정자립도가 계속 떨어져 결국 50% 수준으로 떨어졌다.
결국 50%의 재정자립도를 보이는 지자체가 전국에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지방자치단체들이 재정난을 겪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지방자치 시행이 20년이 넘도록 처음 만들어진 국세와 지방세의 구조가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국비에 매칭해야 하는 지방비는 수십배 늘어났다.
특히 지방비를 매칭해야 하는 사업을 중앙정부에서 모두 결정해 지방자치단체에 통보만 해주고 있다. 지방분권형 국가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대한민국에서는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지방비가 매칭되는 사업에 대해서는 그 일을 같이 하는 자치단체와 협의 또는 재정의 위임 없이 일이 진행돼선 안 되는데 우리나라는 그러한 것이 전혀 되고 있지 않다. 그래서 현재 지방비가 매칭되는 사업에 대해서는 중앙정부가 독단적으로 결정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을 제안해 놓았는데, 이 법이 꼭 필요하다.
수원시는 타 지자체보다 형편이 낫지 않느냐는 말을 많이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수원시처럼 인구가 100만명 이상 되는 곳은 행정이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수원시 같은 경우 인구는 120만명인데 실제로는 150만명 분량의 행정사무를 보고 있다.
예를 들면 수원시에 있는 자동차 중고매매장을 보면 수원시민들만 찾는 것이 아니라 경기남부 주민들이 이곳을 다 찾는다.
때문에 자동차 등록 업무가 300만~400만명에 달하고 있다. 수치로만 보며 수원시가 재정이 다른 지자체에 비해 나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행정 운용은 매우 어렵고 그만큼 시민들에게 돌아가는 행정 서비스의 질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김만수 부천시장
부천시 사정도 수원시와 다르지 않다. ‘자치’가 헌법에 보장되어 있다고 하는데, 자치를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하고 권한이 있어야 하지만 수입은 줄고 쓸데는 늘어나면서 자치가 기본적으로 ‘불가능’해지고 있는 것이 현재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현실이다.
부천시의 경우 지난 2010년에 처음 시장으로 취임했는데, 당시에는 시에 들어오는 돈이 4천31억원이었는데 내년도에는 3천857억원으로 줄어든다. -4.3%이다. 부동산 경기 침체가 계속되고 있어 부동산세에 기대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들은 대부분 비슷하게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써야 하는 돈을 보면, 대표적으로 복지비를 보면 2010년도에는 2천690억원으로 전체 예산의 32%를 차지했었는데 올해 4천270억원으로 42%를 차지하고 있다. 지자체들은 가만히 있는 데 증대된 복지비만 1천500억원에 달하는 것이다.
그 중 시 예산으로 매칭해야 하는 비용이 500억원 늘어났다. 내년도 예산을 편성하는데 아무리 고민을 해도 500억원을 마련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추경으로 확보해야 하는 상황까지 왔다.
부천시는 이런 재정난 속에서도 지난 4년간 지방채 발행을 하지 않았는데 내년에는 지방채 발행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지금 지자체 사정을 보면 더는 아무리 짜내도 물이 나오지 않는 ‘마른 수건’ 상태여서 이대로는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지방자치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본다.
최종식 편집국장
지자체장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현실적인 어려움이 느껴지는 것 같다. 비교적 타 지자체보다 조용한 느낌을 주는 안양시는 어떤가.
이필운 안양시장
안양시의 경우 구도심과 신도시 지역이 공존하는 지자체이다. 이런 경우 구도심 지역 주민들은 신도시를 보면서 ‘같은 안양인데 왜 저기만 좋은가?’라는 불만이 커진다. 신도시 쪽 주민들은 왜 안양시가 자꾸 구도심 지역에만 투자하느냐고 불만을 표출한다. 자신들이 홀대 받는다는 것이다.
신도시 지역 역시 조성된 지 20년이 됐기 때문에 새로운 행정 수요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양쪽을 시가 다 아우르려고 하다 보니 재정적 어려움이 상당히 크다.
안양시 처럼 신도시와 구도심이 같이 있는 수도권 도시에 대해서는 특별한 대책이 만들어져야 한다. 물론 다들 어렵기 때문에 수도권에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하면 쉽지 않겠지만 시정을 운영하는 시장의 입장에서 보면 어려움이 많다.
안병용 의정부시장
의정부는 당연히 해야 할 무상급식을 내년도 예산안에 50%밖에 편성하지 못했다. 어르신들에게 드려야 하는 기초연금도 50%밖에 본예산에 편성하지 못했다.
그럼 나중에 어떻게 하느냐, 빚을 내와야 한다. 빚을 내지 않으면 6개월 후에 아이들 밥을 먹이지도 못하고 어르신들 돈도 못드리게 된다. 돈이 없는데 어떻게 드리느냐. 시장 판공비까지 40% 정도 깎아서 예산을 긁어모았는 데도 돈이 없다. 상황이 이런 지경까지 왔다.
의정부시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가 보면, 경전철이라는 것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원가만 몇 천억원이다. 물론 정부도 도와줘서 경전철을 완공했지만 대책 없이 만들었기 때문에 이후에 수도권 환승에 대한 손실분담금 등 사회적 비용이 또 발생하고 있다.
또 만약 경전철이 파산하게 되면 일시금으로 3천억원을 물어주게 되어 있다. 재정난에 시달리는 이유가 이러한 지자체 자체적인 사업 때문만은 아니다.
의정부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미군이 있다. 8곳이나 된다. 60년 동안 국가 안보를 위해 희생해 왔다.
그동안 미군 기지 때문에 지역발전을 하지 못 하고 주민들이 피해를 당했는데 그 미군기지가 떠난다고 하니 정부가 지자체에 이 미군 기지를 다시 돈 주고 사라고 한다. 미군 기지 땅값이 1조원에 달한다. 이런 무책임한 정부가 어디 있느냐.
최종식 편집국장
용인시는 예전엔 돈이 많아 부러움을 사던 지자체인데, 경전철 문제가 불거지고 호화청사 논란도 제기돼 지금은 다른 시선을 받고 있는 것 같다.
정찬민 용인시장
전 국민에게 알려졌듯이 용인시는 지금 최악의 재정난을 겪고 있다. 공무원에게 지급하던 복지카드, 노인분들에게 제공하던 셔틀버스마저 중단할 상황에 놓였었다.
지금도 크게 나아지진 못했다. 용인시는 더이상 내려갈 곳도 없다. 때문에 2015년부터는 돌파구를 마련해 상승세를 타야겠다는 생각뿐이다. 용인은 그동안 벌여놓은 사업이 너무나 많다. 몇 천억원 규모의 운동장, 손을 놓은 택지지구 등 대부분 사업이 시에서 감당할 수 없어 손을 놓은 상태였다.
거기에 맞물려서 신도시의 원조, 난개발의 원조, 호화청사의 원조라 불릴 정도로 그동안 용인시는 악재가 너무 많았다. 지난 7월 시장으로 취임 후 사업 하나하나 파악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인데 얼마 전 언론에서 시ㆍ군 재정자립도를 보도하면서 용인시가 4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시민들이 그 소식을 듣고 용인시가 돈이 많다는데 왜 변화되는 것이 없느냐고 질책을 많이 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행정의 변화를 줄 계획이다.
용인시에서 진행했던 사업들을 자세히 검토해 계속할 것인지, 중단할 것인지, 더 추가할 것은 무엇인지 가려 내겠다. 1월 중순까지는 이 선별작업을 마무리해 행정이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최종식 편집국장
지자체들이 겪고 있는 재정난을 극복하려면 구체적으로 어떠한 제도, 어떠한 구조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가.
안병용 의정부시장
우리나라 지방자치는 시민들이 쟁취한 것이다. 기득권을 가진 자들로부터 민주화 과정에서 투쟁을 통해 얻어낸 것이다. 중앙정부는 지방자치를 처음부터 하기 싫어했었지만 억지로 한 것이다. 그렇다 보니 헌법에 자치행정권, 자치입법권, 자치재정권이 보장돼 있다.
이중 자치행정권과 자치입법권은 나름 지켜지고 있는데 자치재정권이 보장되지 않고 있다. 진심으로 지방자치에 대한 의지가 없기 때문에 8:2인 국세와 지방세 구조가 바뀌지 않고 있는 것이다. 중앙정부는 앞으로도 재정자주권을 주고 싶지 않을 것이다.
중앙정부든 국회의원이든 지방자치를 하고 싶어하는지를 먼저 물어보아야 한다. 그들이 지방자치를 강화한다고 내놓은 대책을 보면 구청장을 없애자는 것이다. 이것이 무슨 지방자치 강화인가. 근본적으로 지방자치제를 전부 ‘재설계’해야 한다.
원점에서 다시 검토해야 한다. 지방자치는 왜 해야 하는지, 어떠한 가치를 갖고 있는지를 논의하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업무 등도 재설계해서 거기에 맞는 재원구조를 다시 정립하지 않으면 모든 지방자치단체가 ‘디폴트’에 처하게 될 것이다. 현재 지방자치단체가 해야 할 일은 있는데 돈은 주지 않기 때문이다.
지방자치에 대한 혁신, 강하게 이야기하면 ‘혁명’을 위한 재설계를 하지 않으면 우리나라 지방자치는 한걸음도 나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정찬민 용인시장
지자체 재정난을 극복하는 방안 중 하나가 ‘규제완화’이다. 용인시는 상수원보호구역으로 규제를 많이 받고 있다. 현재 평택시와 상수원보호구역 해제를 위해 논의 중인데 이것만 풀려도 작은 공장들이 들어설 수 있어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또 규제완화와 함께 현재 지자체에서 추진되고 있는 각종 대형 사업들에 대해서는 효율성을 재검토해 재정난을 극복할 수 있는 예산운용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필운 안양시장
결국 세목에 대한 부분들이 바뀌어야 한다. 국세와 지방세의 항목을 변경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방세는 대부분 부동산과 관련된 세금이기 때문에 불안정하다. 재산세 등 안정적인 세목은 모두 국세이다. 세수 신장 부분에서도 지방세는 불리한 구조이다. 현재 정부가 설립한 지방세연구원이라는 기구가 있다. 그런데 설립 비용은 지자체에서 부담했다.
과연 이 연구원에서 지방재정에 대해 어떠한 연구를 했고 실질적인 도움이 됐는지 검토해 봐야 한다. 지방자치단체가 돈은 내고 있는데 뭘 하는지 느낄 수도 없고 도움도 안 된다.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마지막으로 시민들도 지방자치의 주인으로서 지방재정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지방자치의 주인은 시민 아닌가. 시민들이 관심을 두고 지자체에 힘을 실어 줘야 한다. 그래야 지자체가 정부와 싸울 힘이 생기고 결국 정부도 변화할 것이다. 지방자치의 혁명! 제로베이스에서 지방자치를 재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김만수 부천시장
이정도 됐으면 이제 지방자치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 결단을 내려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그냥 이대로 갈 것인지, 아니면 자치와 분권을 강화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한 길인지 결정을 하자는 것이다. 지방자치가 국가를 위한 것이라면 제대로 해야 한다. 국가사무는 중앙정부가 비용을 전담하는 등 세출구조, 세입구조를 정확하게 구분하고 질서있는 행정을 해야 한다.
그러나 가장 큰 딜레마는 지방재정 문제가 시민들에게는 전혀 와 닿지 않는 문제라는 것이다. 시민들은 국비로 지원해 주던 지방비로 지원해 주던 지원만 받으면 된다. 시민들의 관심을 받기 어렵다는 것이 가장 어려운 숙제이다.
지방자치 발전을 저해하는 근본적인 것이 바로 ‘자치’에 대한 폄하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지방정부’를 ‘지방자치단체’로 격하해 표현하고 있는데 지방정부를 하나의 독립적 정부로 인정하지 않고 마치 환경단체나 운동단체의 격으로 깎아내리고 있는 것이다. 명확하게 지방정부의 격에 걸맞게 개념이 바로 잡혀야 하고 거기에 따라 권한과 책임을 줘야 한다.
특히 지방분권을 논의할 때 국회의원 중심의 논의 구조에서는 절대 답이 나올 수 없다. 지방자치에 대해 논의를 하려면 시장ㆍ군수ㆍ구청장 등 이른바 지방정부 세력과 지방의회에서 일하는 분들이 논의해야 한다. 민선 6기에서는 여야 없이 이러한 문제를 논의했으면 좋겠다.
염태영 수원시장
시와 군 단위 지자체도 문제지만 구청 단위는 재정난이 더욱 심각하다. 최근 거론되고 있는 ‘복지 디폴트’가 허언이 아니다. 실제상황으로, 국가적 위기 상태로 인식해야 한다. 현장에서 느껴지는 체감으로는 ‘민란’이 일어날 것만 같다. 수원시 같이 재정이 그나마 안정적인 지자체도 오는 2017년이 되면 세출이 세입을 초과하게 된다. 가용재원이란 것이 없어지는 것이다.
정부는 지자체가 재정난을 겪는 것이 과도한 사업 추진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 사업들, 누가 심의하고 감사했느냐. 바로 중앙정부이다. 지방정부의 방만한 운영이라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지금 지자체는 부채를 탕감하는데 급급한 실정이다.
지자체가 재정난을 극복하려면 지방세를 부담해야 하는 정부 사업은 정부와 지자체가 무조건 협의토록 해야 한다. 협의를 거치지 않는 사업에 대해서는 지자체들이 집행하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선언해야 한다. 지자체 간 실제적인 행동통일이 일어나야 하며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당장 지방소비세를 20%까지 상향조정하고 장기적으로 40%까지 올려야 한다. 경기도 역시 기초자치단체입장에서 보면 또 다른 중앙 정부일 뿐이다. 도지사 공약이라고 각종 사회복지사업을 추진하려는데, 모두 시ㆍ군비 매칭사업이다. 경기도만이라도 기초자치단체의 상황을 헤아려야 한다.
정리=이호준 기자
사진=김시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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