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곡차곡 ‘온정’ 싣고… 지금 만나러 갑니다
새벽 기온이 아침잠을 부르는 14일 새벽 4시. 하루를 시작하기에는 아직 이른 이 시각, 영하의 차가운 날씨 속에서 아침을 열며 분주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명이 채 밝지도 않은 깜깜한 새벽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삼천리이앤이 연탄공장 앞에는 연탄을 싣기 위해 모여든 수십대의 트럭들이 쉴 새 없이 바쁘게 차고를 드나들었다.
1960년대만 해도 전국 400여곳에 달하던 연탄 공장은 현재 46곳에 불과하다. 서울도 현재 이곳과 금천구 시흥동 단 2곳밖에 남지 않았다. 지난 1968년 1월에 설립된 삼천리이앤이 연탄공장은 현재 직원이 26명으로 한때 60여 명에 달하던 직원 수가 절반가량 줄었다.
다른 공장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라고 한다. 도시가스가 본격적으로 보급됨에 따라 연탄 소비가 갈수록 줄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삼천리 연탄공장에서 겨울철에 찍어내는 연탄만 하루 평균 25만~30만장에 달하며 하루 평균 1백여명의 수송상인이 이곳을 찾는다. 이 연탄은 서울과 경기지역을 비롯해 전국 각지로 배송된다.
경기도 역시 37개의 연탄공장이 있었으나 2000년대 들어 적자에 시달리던 수원 공장 2곳이 문을 닫았고 지난 2013년 4월 파주 금촌동에 위치한 대진산업도 폐업, 현재는 동두천에 있는 (주)동원연탄공장 단 1곳만이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고 있다.
■ 새벽 4시, 연탄공장을 가득 채운 삶의 열기
삼천리 연탄공장 내부에서는 연탄을 생산하는 기계 소리로 가득찼다. 공장 주변은 새벽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전국 각지에서 연탄을 실어 나르기 위해 수송을 준비하는 차량으로 활기를 띠었다.
연탄을 찍어내는 윤전기는 요란한 굉음을 내며 돌아가고 있었고 수송업 종사자들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그들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연탄을 차량에 옮겨 싣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김두용 전무는 “예전에는 연탄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예전 같지가 않다”며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본격적인 연탄배달 체험을 위해 며칠 전부터 섭외에 나섰지만 녹록지가 않았다. 경력이 많은 소위 ‘연탄 배달의 장인’에게 한 수 가르침(?)을 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장고의 노력 끝에 44년 경력을 가진 베테랑 명연식 사장(62)을 만날 수 있었다. 새하얗게 머리가 센 명 사장은 기자가 인사를 건네자 온화한 미소로 화답했다.
가벼운 인사를 나눈 뒤 곧바로 연탄을 명 사장의 차량에 싣기 시작했다. 차량에 실어야 하는 연탄은 총 1천3백장. 말로만 들어도 수량에 대한 압박감이 밀려왔지만 전날 실어 놓은 2천장을 더해 오전 중에만 3천3백장을 배달해야 했다.
막막함과 걱정을 뒤로 한 채 정신없이 차량에 연탄을 싣다 보니 어느덧 한 시간이 훌쩍 흘렀다.
■ 칭찬은 신입 배달원도 두 장(?) 나르게 한다?
오전 6시. 기자는 드디어 연탄을 실은 차량을 따라 본격적인 배달에 나섰다. 목적지로 향하기 전 명 사장의 농장이 있는 남양주시 진건읍 진관리에 들러 전날 실어놓은 연탄 2천장이 있는 화물 차량으로 이동했다.
이어 2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포천시 내촌면 신팔리에 위치한 한약제조공장. 그곳에 전달해야 하는 연탄은 총 1천장. ‘민폐는 끼치지 말자’는 생각으로, 목장갑에 작업복까지 제대로 갖추고 왔지만 추운 날씨 탓에 작업복 위로 점퍼까지 껴입고 연탄을 나르기 시작했다.
트럭 위에 수북이 쌓여 있는 2천장의 연탄이 여전히 위압감으로 다가왔지만 “연탄 1천장 쯤이야 금방 옮기지 뭐”라는 생각으로 트럭 위에 올라 아래에 있는 명 사장을 향해 연탄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한 장씩 연탄을 던지고 있으니 같이 일을 하시던 아주머니께서 “그렇게 해서 어느 세월에 다 옮기느냐”며 두 장을 한 번에 던지며 솜씨를 뽐냈다. 밑에서 대기 중이던 명 사장 역시 이를 능숙하게 받아 정확한 각도로 차곡차곡 쌓아 올리며 찰떡궁합을 과시했다.
‘제대로 해보자’는 마음에 다시 도전했다. 두 장을 집어 명 사장에게 던지듯이 어설프게 전달했고 명 사장은 특유의 미소를 보이며 “처음 하는 거치고는 잘하네. 그렇게 하면 되는 거야”라고 칭찬을 건넸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명 사장의 칭찬 한마디에 손은 더욱 바빠지기 시작했다.
연탄을 전달한 지 10여분이 지나자 작업복 위에 걸치고 있던 두꺼운 점퍼가 거추장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점퍼를 벗고 팔을 걷어붙였다. 혹시나 실수로 연탄을 떨어뜨리지는 않을까 목장갑을 낀 손으로 연탄을 강하게 잡아 전달하고 있자니 손바닥이 저려왔다.
그래도 연탄이 깨지는 것보다는 손바닥의 통증을 참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 집중했다. 익숙치 않은 노동으로 어느덧 허리가 저려오기 시작했고 반복적으로 허리를 숙여봤지만 별 도움은 안됐다.
‘잠시 쉬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 같이 일하던 아주머니가 “진짜 연탄 배달 처음 하는 것 맞느냐”고 물었다. 계속되는 칭찬에 속도를 올려 연탄을 두 장씩 던지는데, 명 사장이 “이제 여긴 됐다”며 1천장의 연탄이 가지런히 쌓인 곳으로 기자를 데려갔다.
■ 40~50년전 연탄공장 전성기를 추억하며…
오전 9시께.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에 앞서 아침을 먹기 위해 한 내장탕 집에 들렀다. 명 사장은 아침을 먹으며 연탄사용 전성기를 추억했다.
“예전에는 신이문역부터 석계역까지 전부 다 연탄공장이었다. 그 많던 연탄 공장이 하나 둘 사라져 가는 걸 지켜보며 마음이 너무 아팠다”고 말하는 명 사장의 눈에는 그 오랜 시간 연탄 배달을 하며 서민의 곁을 지켜온 세월의 깊이가 느껴졌다.
이어 그는 요즘 세대에게는 생소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명 사장은 “예전에는 삼륜차라고 있었는데 차량 안에 히터가 없었다”고 말했다.
‘겨울에 추워서 운전을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요즘 젊은 친구들은 믿지 못하겠지만 차량 안에 연탄을 놓고 다녔다. 그래서 창문을 닫으면 가스 때문에 숨이 막히고 창문을 열면 추워서 운전을 할 수가 없었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 연탄집게 든 사나이… 1천장 안전 배달 이상무
오전 10시. 아침을 먹고 도착한 곳은 남양주시 진전읍 내각리에 위치한 한 금속 공장. 이곳에 남은 1천장을 전달해야 했다. 아침밥도 든든하게 먹은데다 한번 해봤으니 더욱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명 사장이 긴 집게를 손에 쥐여 줬다.
아까와 달리 이곳은 연탄을 창고 안에 둬야 하기 때문에 트럭 위 연탄을 집게로 집어 연탄저장 창고까지 날라야 한다는 것이다. 연탄집게를 이용해 연탄을 집으니 양손에 8장의 연탄이 집어졌다. 별생각 없이 8장의 연탄을 들어 올리는 순간 그 무게감에 다소 주춤거렸다.
평균 무게가 3.3kg~3.7kg인 연탄 8장을 집게로 집어 창고까지 이동하고 있자니 이내 이마 위에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트럭 위에 가득 쌓여 있는 1천장의 연탄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러다가 내일 몸살 걸리는 것 아니냐. 너무 무리 하지마라”는 명 사장과 아주머니의 말에 한 장이라도 더 옮겨야겠다는 오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시간. 트럭 위에 가득 차 있던 1천장의 연탄이 마침내 전부 비워졌다.
숨돌릴 틈도 없이 연탄을 보충하기 위해 새벽에 동대문구 이문동 삼천리 연탄공장에서 실어 온 연탄이 있는 명 사장의 농장으로 다시 갔다.
그 곳에서 남은 1천3백장의 연탄을 싣고 비좁은 주택가 골목길 사이사이를 통과해 남양주시 진전읍 부평리에 위치한 L씨(여ㆍ66) 집에 도착한 시간은 낮 12시30분.
명 사장은 “생활보호대상자인 L씨에게 전달되는 연탄은 자원봉사단체에서 후원해 기증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더욱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동기가 생겼다. 차 한 대도 지나기 힘든 좁은 골목길에 자리한 그곳에 600장의 연탄을 전달하고 돌아설 때 L씨는 연신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하며 우리가 멀어지는 그 순간까지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 우리 이웃에 따뜻함 전달하는 많은 분들께 감사
오후 1시30분 인근에 위치한 진전읍 진건리를 들려 남은 700장을 마저 옮기고 보니 시간은 어느덧 오후 2시30분. 이제 오늘의 일과는 끝난 것이냐는 질문에 명 사장은 웃으며 “끝나기는…. 하루 평균 1만장을 옮긴다. 이제 반도 안 옮겼는데”라고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더 돕고 싶지만 회사로 복귀를 해야 하기에 가보겠다”고 인사하자 명 사장은 “정말 고생 많았다”며 비타민 음료 한 병을 건넸다. 회사로 돌아가기 위해 운전대를 잡은 손을 보니 언제 묻었는지 모를 연탄의 검댕이가 가득했다. “우리는 목장갑 안 껴요.
끼나 마나거든. 고무장갑을 껴야 해”라던 아주머니의 말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또 짧은 시간이었지만 따뜻함을 함께 전달할 수 있었던 명 사장의 미소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김두영기자
사진=전형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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