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현장체험] 바다 위 나는 구급차… 해경 ‘대형 공기부양정’ 항로 숙달 훈련

갯벌·빙판 만능 기동력… 인천 앞바다 안전 사수!

▲ 박용준기자가 다른 승조원들과 인명구조훈련을 하고 있다.

얼마 전 중국어선 서해 5도 불법조업 토론회에서 발언을 마친 윤병두 인천해양경비안전서장은 꼭 할 말이 있다는 듯 마이크를 다시 잡았다.

“많은 분이 잘못 알고 있는데 해양경찰은 폐지되지 않았습니다. 비록 이름이 바뀌었지만, 바다를 지키는 일을 똑같이 하고 있습니다.” 윤 서장의 발언을 들은 후 문득 해경을 한 번 체험하고자 마음을 먹었다.

4월이 다가오면서 해경을 접할 때마다 동정심, 원망, 아니면 호기심일지도 모르는 복잡미묘한 감정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다행히도 ‘(하루 동안) 해경이 되고 싶다’는 요청은 일사천리로 받아들여졌다.

어쩌면 그들 역시 해경의 겉모습이 아닌 ‘속살’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현장에 답이 있다’는 대명제 하나만 바라보고 지난 13일 오후 1시 영종도 을왕리해수욕장으로 향했다.

 

▲ 공기부양정 램프 작동법을 배우고 있다.

■ 사고 현장 어디든 출동한다! 위풍당당 보는 이 압도

을왕리해수욕장 한복판에서 기자를 기다리던 건 대형 공기부양정 H-09정. 지난해 12월 취역한 따끈따끈한 신상품이자 군용을 제외하면 세계에 단 3대, 국내 단 1대뿐인 초대형 공기부양정으로 웬만한 배보다 두 배 이상(최대 107㎞/h)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다.

일반 배와는 달리 수면 1.2m 위에 선체를 띄워 프로펠러 회전력으로 이동하는 탓에 갯벌, 바다, 육지, 빙판 가리지 않고 운행할 수 있다. 따로 선착장이 필요 없어 이처럼 항로숙달훈련을 할 때면 해변으로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국내 최고의 공기부양정 베테랑이라는 박형규 정장과 승조원(10명)의 환영을 받으며 공기부양정에 올라서니 “구경할 생각 말고 얼른 옷부터 갈아입어라”는 재촉이 뒤를 이었다. 준비해 준 옷으로 허겁지겁 갈아입고 나니 그제야 ‘놀러 온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이제 배를 탔으니 훈련을 하기 위해 공기부양정을 출발할 차례. 급하게 박대중 경위에게 공기부양정의 출입구 역할을 하는 램프 작동법을 배운 후 정장의 지시에 맞춰 안전핀, 스토퍼 등의 장비를 차례로 작동했다. 생각보다 램프가 무거워 시작부터 팔이 후들거려 다른 승조원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이윽고 램프가 닫힌 후 공기를 저장해 선체를 지탱하는 역할의 스커트가 부풀어 오르자 이제는 갑판 위로 올라가 좌회전, 우회전, 전진, 후진 등의 수신호로 공기부양정을 바다 위로 옮겼다.

불과 몇 분 걸리지 않는 일이지만, 왜 이리 신경 쓸 것이 많은지 진땀을 흘렸다. 객실 안으로 들어오자 공기부양정처럼 기자 몸도 붕 뜨는 느낌이 들었다.

 

▲ 공기부양정 출발 수신호를 보내고 있다

■ 낚시꾼·관광객 고립·조난 빈번…을왕리 바다서 실전 훈련

왜 처음에 만난 곳이 을왕리해수욕장이었는지 그때야 알았다. 을왕리해수욕장은 피서객은 물론 낚시꾼이 즐겨 찾으면서 조수간만의 차로 인해 갯벌이나 바위 등에서 고립되는 조난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지역이다. 공기부양정이 갯바위 인근에 멈추자 승조원이 능숙하게 인명구조용 보트를 내리기 위해 각자 맡은 역할대로 움직였다.

평소 운항 때는 와이어, 로프 등으로 단단하게 고정한 인명구조용 보트가 순식간에 밖으로 내려졌고, 기자를 포함해 모두 4명의 승조원이 보트에 탑승했다. 암초 등으로 공기부양정의 접근이 힘든 지역에는 소형으로 기동성까지 갖춘 인명구조용 보트가 활약한다.

다행히 실제 조난자가 없어 막내인 전효진 경장이 조난자 역할을 맡아 해상 들것을 이용해 공기부양정으로 옮겨졌다. 곧바로 심폐소생술이 이어졌다. 기자가 직접 전 경장의 겉옷을 벗기고 기도 유지, 물기 제거, 인공호흡 등을 해보니 갑자기 막중한 책임감이 느껴졌다.

이미 웬만한 응급의료 장비를 갖추고 있지만, 올해 안에 첨단 영상 시스템을 갖추면 시내의 대형 병원과 실시간으로 정보를 주고받아 보다 전문적인 구조까지 할 수 있게 된다. 옆에서 요령을 알려주던 박대중 경위는 “해상 구조 때는 심장이 멈추는 것도 위험하지만, 저체온증도 주의해야 한다”며 “심정지나 저체온증만 막아도 조난자의 80~90%는 산다”고 조언했다.

공기부양정이 도입된 주된 이유 중 하나가 서해 5도나 인천공항에서 벌어질 수 있는 대형 재난사고 시 대처하기 위해서다. 갯벌 위 기동이 가능하고 많은 인원이 탑승할 수 있는 공기부양정만 있으면 비행기 불시착, 제2의 연평도 포격 사태 등이 일어나도 신속히 대응할 수 있다.

 

▲ 공기부양정 스커트 내부를 정비하고 있다.

■ 공기부양정의 ‘두뇌’ 조타실…“좌현 30도, 1㎞ 지점에 선박…”

인명 구조 훈련 후 조타실로 올라가 공기부양정의 운항요령과 견시법을 배웠다. 정장 옆 부장 자리에 앉으니 위아래로 복잡한 버튼과 손잡이가 수십 개 놓여 있고, 왼쪽엔 레이더, 오른쪽엔 해도가 실시간으로 움직였다.

해도 상에 나와 있는 현 위치는 북위 37도 26분, 동경 126도 20분, 을왕리 서방 1마일 해상을 30노트 속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쌍안경을 이용해 사방을 견시하며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조난자 등의 방향, 거리, 물체의 종류를 정장에게 보고했다. “좌현 30도, 1㎞ 지점에서 선박이 우현 방향으로 이동 중입니다” 이런 식이다. 조타실의 전체적인 느낌은 헬기 조타실을 보는 것 같았다.

외국에서는 공기부양정을 선박이 아닌 비행기로 분류해 정장이 아닌 기장(Pilot)으로 부르기도 한다. 앞서 80인승 중형 공기부양 정장을 7년간 맡아 630명을 구조한 박형규 정장과 검증받은 대원들은 이와 같은 항로숙달훈련을 매일 하며 비상 출동에 대비하고 있다.

이어 공기부양정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빠짐없이 기록하는 함정일지 작성법을 배웠다. 함정일지에 각종 인원, 물품, 유류, 정비 등의 변동사항을 적는 것을 기사(記事)라고 하는데, 기자가 쓰는 기사와 철자는 같지만, 공문서 성격을 띤다는 점이 달랐다.

공기부양정은 1시간 넘게 용유도와 실미도 인근을 운항한 후 출발점인 을왕리해수욕장으로 돌아왔다. 이제 다 끝난 줄 알고 옷을 벗으려 했더니 박대중 경위가 다가와 손전등을 내게 안겼다.

▲ 공기부양정 운항요령을 배우고 있다

“공기부양정에 탔으면 스커트 정비는 해봐야죠”라는 말과 함께 끌려간 곳은 공기를 저장하는 스커트(Skirt) 내부. 스커트는 특수고무재질로 만들어져 말 그대로 치마처럼 부풀어 선체를 들어 올리는 역할로 공기부양정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운행 도중 돌이나 쇠 같은 것에 긁히거나 찢어질 수 있기 때문에 박 경위와 기자 둘이서 컴컴한 내부를 돌아다니며 손전등으로 하나하나 비추면서 살폈다.

고개를 꺾고 무릎 꿇은 채 1시간 가까이 돌아다니다 보니 몸은 다 젖고 팔·다리에 힘이 빠져 스커트 외부로 나올 때는 다른 승조원의 도움을 받을 지경이었다.

운행 정비까지 마치고 나니 드디어 항로숙달훈련도 모두 끝났다. 승조원들은 딱딱하게 말없이 일에만 몰두할 것 같았지만, 기자가 겪은 10명의 승조원 모두 환한 미소와 친절한 말투로 업무에 임했다. 공기부양정을 만나기 전 복잡했던 감정은 바닷바람과 함께 말끔히 씻겨나가고, 그 자리엔 해경에 대한 존경심이 자리 잡았다.

다시 사복으로 갈아입고 인사를 건네는 기자에게 박 정장이 말을 건넸다. “이렇게 큰 공기부양정은 해경에서도 처음이고, 시민들도 아직 낯설 거예요. 그래도 승조원 모두 열심히 훈련하면서 인명 구조에 철저히 대비하고 있으니 인천 앞바다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알려주세요.”

박용준기자

사진=장용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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