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현장체험] 자연과 더불어 사는 법 알려주는 ‘숲 해설사’

직박구리·딱정벌레야 같이 놀자~ 우린 너희 친구야

▲ YMCA가 주관하는 광교호수공원숲 생태 교육 프로그램 중 류설아기자가 수강생 어린이에게 냉이의 뿌리 냄새를 맡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우연히 모유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봤다.

엄마가 줄 수 있는, 아기에게 가장 완전하고 안전한 식품 모유. 그 보편화된 믿음으로 기자 역시 열심히 모유수유를 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한 편에 눈물을 떨궜다.

내용인 즉슨, 수유 중인 한국 여성의 모유를 분석한 결과 다량의 환경 호르몬과 중금속 등이 검출됐다는 것이었다. 충격 그 자체였다. 아기에게 좋은 것만 주고 싶어서 많은 것을 참아왔던 엄마들에게 ‘도대체 왜’라는 의문만이 남았다.

답은 분명했다. 환경오염이다. 구조적으로 환경유해물질에 취약한 여성의 가슴이 지구의 환경오염에 영향받은 것이다.

모유는 먹이사슬의 최상층에 있는 식품으로 상당량의 유해화학물질이 아기들에게 전달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분유가 대안은 아니다. 어떻게 해야하나. 숲 해설사 체험은 그 답을 제시하는 의미있는 경험이었다.

지난 15일 오후 3시 수원 광교호수공원. 전날 내린 봄비에 뿌연 먼지는 씻겨 가고, 따사로운 햇살에 자연의 빛깔은 유난히 진했다.

그 속에서 초록색 조끼를 입은 박은선(54) 선생님이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그는 우리가 흔히 숲 해설사로 부르는, 산림 교육 전문가다.

지난 2008년 YMCA에서 숲 해설사 양성과정을 들으며 매료돼 전문가의 길을 선택했다.

이어 산림청의 9개월 전문가 과정을 이수한 후 전문 강사로 유아부터 초등학생, 성인 등을 대상으로 한 숲 생태 해설 및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산림청은 1999년부터 국립수목원, 국립자연휴양림 등에서 숲해설사 제도를 운영했고 2009년에는 330명의 숲해설사를 선발했다.

이처럼 숲 해설사가 되려면 ‘산림교육의 활성화에 관한 법률’에 따라 산림청장 인증 숲해설사 교육과정 운영기관이나 기타 공공기관, 대학 등에서 운영하는 숲해설사 교육과정을 이수해야 한다.

그러니까 이날 기자가 도전한 일일체험은 처음부터 말도 안되는 것이었다. 전문가들이 최소 1년 여 동안 공부해 쌓은 지식도, 현장에서 활동하며 쌓은 경험과 노하우도 전무했으니 말이다. 박 선생님에게 작정하고 민폐를 끼쳐야 하는 상황이었다.

 

▲ 생태계놀이 중 엄마새가 아기새에게 먹이 애벌레를 몇개 갖다 줬는지 세어보고 있다.

다행히 할 일은 있었다. 이날 참여자는 초등학교 1~2학년 10명인데, 숲 해설사 단 1명이 수업을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현재 수원 YMCA를 통해 활동하는 숲 해설사는 8명인데, 예산 부족으로 학생 수가 많아도 선생님을 추가 지원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덕분(?)에 기자는 ‘보조 교사’격으로 아이들을 인솔키로 했다.

역할 분담을 끝낸 후 아이들을 광교호수공원 제2주차장 옆 놀이터에서 만났다. 이날 교육은 한 달간 4회에 걸쳐 진행하는 프로그램의 3주차로 박 선생님과 참여 학생 및 학부모들이 반갑게 인사를 주고 받았다.

“자연을 접할 기회를 주고 싶”었던 엄마 덕분에 자매가 나란히 참여한 김혜민(8)과 김혜원(9)양, “아이가 진달래꽃을 먹고 자연에 관심을 갖게” 돼 기쁜 엄마 손을 잡고 나타난 김민준(8)군, “벌레를 무서워했지만 이젠 흙을 만지고 곤충이랑도 친해진” 김시은(8)양 등 모든 아이들이 들떠 있었다.

드디어 본격적인 숲 해설 교육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교육 장소는 아이들에게는 숨을 헐떡거리며 넘어야 할 만큼 높은 고개를 지나야 나오는 공원 속 작은 숲이었다. 하지만 이 장소로 이동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이들은 두 명씩 짝지어, 기자는 짝꿍이 아직 오지 않은 박채연(9)양과 맨 뒤에서 걸어가는데 5m를 가기 힘들었다. 바닥에 기어가는 딱정벌레를 본 아이들이 모두 멈춰 선 것.

“이게 뭐예요”라는 이구동성 질문에 박 선생님은 무릎을 꿇고 앉아 아이들 눈높이로 벌레를 잡아 올렸다. “이건 딱정벌레야. 다리가 몇 개지? 여섯 개네. 그럼 거미는 아니겠구나. 거미는 다리가 8개이니까.”

다같이 일어서 걷는 도중 또 멈춘다. 이번엔 나비다. 팔랑거리는 날개짓에 집중하는 아이들을 향해 박 선생님은 “저렇게 예쁜 나비가 되기 전에는 애벌레였어요. 이제 애벌레를 징그럽다고 밟고 죽이면 저렇게 예쁜 나비를 볼 수 없겠지?”

또 허공에서 ‘끽~’하는 새소리가 들리면 “저건 직박구리야”, 똑같은 ‘끽~’ 소리인 것 같은데 “저 소리는 수꿩이란다”라며 박 선생님은 쉴 새 없이 지식을 쏟아냈다.

기가 팍 죽고, 혹여나 아이들이 기자에게 질문할까 두려워 뒤에서 처지는 아이들을 챙기며 귀동냥을 했다. 보조교사를 자처했지만 어린이들과 다를 바 없는, 아니 오히려 더 못한 수강생 처지였다.

그렇게 자괴감을 느끼며 도착한 교육 프로그램 장소, 일명 ‘들놀이터’. 이날의 주제는 ‘새’였다. 박 선생님은 뻐꾸기와 뱁새(오목눈이새)의 사진을 보여줬다. 뻐꾸기는 오목눈이새의 둥지에 몰래 알을 낳고, 오목눈이새가 먹이를 물어 뻐꾸기 새끼를 키운다는 내용을 설명했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들로 새집을 만들기로 했다.

어린이들은 땅을 쳐다봤다. 문제는 “아이들은 움직이는 모든 것에 초집중해 수업을 제대로 진행못하는 경우가 허다 하다”며 웃었던 박 선생의 말대로, 나뭇가지가 아닌 움직이는 모든 것에 집중했다. 이날 아이들의 인기를 얻은 것은 거미. 그것이 내게 첫 경험을 선사할 줄이야.

옹기종기 모여 앉아 거미 찾기에 열을 올리던 아이들은 ‘보조 교사’인 내게 손으로 잡아 보여주기를 요구했다. 애써 담담한 척 했지만, 무서웠다. 그 때 박 선생님이 다가와 “이렇게 빠른 거미는 거미줄을 짓지 않기 때문에 빨라요. 그리고 좀 더 크고 느린 거미는 거미줄을 짓기 때문에 빨리 도망가지 않아요. 모르기 때문에 겁 먹는 거에요.

거미는 인간을 해치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아이들을 향한 말이지만, 속내는 기자를 독려하는 것이었다. 용기를 냈다. 이게 무슨 큰 일이라고.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난다.

▲ 거미를 찾는 모습.

그렇게 내 손 위에 난생 처음 거미를 올려 눈을 반짝이는 아이들에게 보여주며 소감을 물었다. 이 때부터 제법 자신감이 붙어 아이들의 활동을 적극 독려하며 돕기 시작했다.

난데없이 풀뿌리를 가져와 “냉이 맞죠?”라고 물으면 박 선생님의 확인 과정을 거쳐 아이들에게 뿌리 향을 맡게 했다.

땅을 파가며 아이들이 새집에 알을 상징하는 돌과 나뭇가지 등을 찾는 일을 도왔다. 뻐꾸기와 뱁새가 되어 알을 바꿔놓고 찾는 게임이 공정하게 진행되도록 통솔하고, 아기새에게 먹이를 갖다주는 놀이에서는 아이들의 안전을 책임졌다.

이같은 게임은 일명 생태계놀이인데, 아이들은 놀면서 자연스럽게 식물과 동물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쌓게 된다. 연령대에 맞게 각종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은 숲 해설사의 주요업무다.

이와 관련 박 선생님은 “아이들은 역동적으로 움직이게, 성인은 예쁜 꽃과 나무를 자신의 인생에 비유해 감성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그러나 숲 해설사는 지식보다 울림이 있는 깨달음과 감동을 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풀, 나무, 곤충, 새 등 자연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가르쳐주지만 무엇보다 자연에 대한 바른 생태철학과 가치관을 기를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구성한다는 설명이다.

그 의미를 수업 마지막 즈음에 확인할 수 있었다.

“자, 얘들아! 곤충이나 애벌레를 죽이면 아기새가 먹이가 없어서 빨리 둥지를 나올 수 없겠지? 그러면 어떻게 될까? 그래 예쁜 새소리를 들을 수 없겠지? 자, 애벌레는 커서 나비가 되고 나방이 되지. 나비덕분에 꽃이 피고 과일도 먹을 수 있는데, 애벌레가 징그럽다고 밟아 죽이면 어떻게 되지?”

아이들은 답했다. “이제 새를 보면 안 쫓고 예쁘다고 해줄거예요.” “애벌레는 안 밟을 거예요.” “고마워 고마워 해야죠” 등 작은 입에서 예쁜 답이 쏟아졌다.

“징그러워했던 자연물에 집중하면서 생명을 느끼고 소중하게 다루는 아이들의 표정이 가장 보람된 순간”이라던 박 선생님의 얼굴에 또 웃음꽃이 핀다.

참,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아이들은 숲 해설사를 통해 자연을 느끼며 ‘더불어 사는 법’을 자연스럽게 터득했다. 그것은 충격적인 모유에 대처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숲 해설사가 알려준, 그리고 아이들이 보여준 ‘정답’이었다. 최상위 포식자인 인간이 먹이 피라미드의 가장 밑바닥부터 돌보며 함께 해야 하는 것이었다.

수업을 마친 후 돌아가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내게 던진 박 선생님의 마지막 이야기가 떠오른다.

“70년대 매가 전 세계적으로 줄었는데 부화하기 전에 알이 깨져버리는 것이 문제였대요. 그 원인을 알아보니 당시 DDT를 너무 많이 썼기 때문이었죠. 상위 포식자인 매가 DDT에 노출된 쥐를 먹고 결국 그렇게 된 거죠. 이후 DDT 사용을 줄이게 됐어요. 숲 해설사의 역할이 그런 것 같아요.

인간이 아닌 자연의 시각에서, 새로운 창을 열고 세계를 보는 거죠. 생태에 대한 철학을 갖고 그 가치를 알려주며 보존하는 후속 작업을 하는 거죠. 그래야 진짜 우리가 다함께 잘 살 수 있죠.”

류설아기자

사진=김시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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