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발이 메고 ‘국토 종횡무진’ 현대판 대동여지도 이 손안에…
대학시절 우리는 캠퍼스 곳곳에서 자신의 키만한 삼발이, 지팡이 등을 들고 이리저리 움직이던 친구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토목공학과 친구들이 캠퍼스에서 측량 실습을 하는 모습이었다.
3인 1조로 한 명은 측량기와 삼발이를 들었고, 다른 한 명은 붉은색과 흰색이 섞인 막대기를 들고 서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삼발이 옆에서 무언가를 받아적으며 열심히 메모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경제부로 자리를 옮기면서 여러 출입처 중의 하나인 한국국토정보공사(아직은 대한지적공사라는 명칭이 더 익숙하지만)를 찾던 중 문화재나 동굴까지도 3D입체로 측량한다는 얘기를 듣고는 불현듯 예전 기억이 되살아났다.
당시를 떠올리며 나도 한번 토목공학과 친구들이 그랬던 것처럼 잠시나마 측량기사로 변신해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 동탄2신도시 공간정보 구축사업 현장 ‘출동’
대한지적공사에서 한국국토정보공사(이하 LX 공사)로의 사명 변경을 하루 앞둔 지난 3일 오전 10시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에 위치한 LX공사 경기지역본부 공간정보사업처(처장 이범주)를 찾았다.
하루 동안 함께 시간을 보낼 직원들이 출동 채비를 갖춘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뿐이지만 직원답게 LX공사의 조끼를 입고 동탄2신도시 내 점포용 주택 건설 현장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시작부터 작은 실수가 있었다. 하루 종일 야외에서 활동해야 하는데 덥다는 것만 생각하고 반팔을 입었기 때문이다. 나은주 팀장은 “긴팔을 입지 않고 모자가 없으면 금방 얼굴하고 팔이 타버리는데 괜찮겠냐”고 물었다.
아차 싶었지만 이제 와서 옷을 갈아입을 수도 없고 긴급하게 구한 선크림을 팔과 얼굴에 듬뿍 발랐다. (평소 나는 선크림을 잘 바르지 않는다)차로 이동하길 30여분 기흥CC와 화성상록CC 입구에 위치한 오늘의 측량 현장에 도착했다.
동탄2신도시 개발로 현장 곳곳에서 건물 공사가 한창이었다. 도착과 동시에 오늘의 팀원인 손원하 팀장과 나은주 팀장, 김종철 과장, 유지훈 과장은 차량 트렁크에 가득한 장비들을 하나씩 내려놓았다. 평소 익숙했던 삼발이(정식 명칭은 촉각)를 포함해서다.
드디어 측량의 하루가 시작됐다. 근무조의 최고참인 손원하 팀장은 “오늘 할 일은 지적확정측량”이라고 운을 뗐다. 용어부터가 낯설었다.
지적확정측량은 쉽게 얘기하면 우리가 평소 익숙한 측량의 모습으로 일정한 범위의 토지를 놓고 경계와 면적을 결정하는 측량의 한 종류다. 동탄2신도시의 경우, 개발로 토지 소유주뿐 아니라 토지위치나 지번 등이 통째로 바뀌면서 새롭게 지적공부에 등록해야 하는 상황이다.
측량을 위해 삼발이를 어깨에 들러메고 가장 먼저 손 팀장과 함께 기준점을 찾았다.
기준점은 측량을 위한 기준으로 동탄2신도시의 경우, 도로 곳곳에 기준점이 설치돼 있었다. 손 팀장은 전문가답게 금방 기준점을 찾았고 이곳에 토탈스테이션을 설치했다.
삼발이 위에 고정시키는 측량도구로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장치다. ‘한번 해보라’라는 손 팀장의 지시에 삼발이를 고정시키려고 하니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기포를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기계 수평이 이뤄졌는지 보는 장치로 미세한 움직임만 있어도 기포가 중앙에 위치하지 않았다. 포병으로 근무했던 터라 오랜만에 본 기포였지만 쉽지 않았다. 내가 낑낑거리는 모습을 본 손 팀장은 “이렇게 하는 겁니다”라는 말과 동시에 기포가 중심을 잡았다.
기포 조정이 끝나자 함께 간 유지훈 과장이 막대기(전문용어로는 원소자폴)를 인근의 지적기준점에 자리를 잡아 토탈스테이션으로 측량이 시작됐다. 토탈스테이션에 보이는 조그만 십자를 막대기 끝 렌즈의 원에 맞추는 작업이었다. 이것도 쉽지 않았다.
숨만 쉬어도 기계가 움직였다. 원은 커녕 폴도 찾지 못했다. 옆에 있던 김종철 과장은 “기계 맨 위에 조그만 원이 보이시죠. 이곳을 원에 대략 맞게 고정하고 렌즈를 보면 폴이나 원이 보일 겁이다”라고 방법을 설명해줬다.
그렇게 하니 쉽게 원을 맞출 수 있었다. 원이 보이면 오케이 사인을 주고 옆에 있던 김종철 과장이 바로 컴퓨터 자판을 누르면 측정한 지역의 좌표가 자동으로 입력됐다. 예전에는 좌표를 직접 쓰고 사무실에서 계산해야 했지만 지금은 자동으로 검퓨터가 계산을 해서 번거로움이 줄어들었다고 했다.
이런 방식으로 수십여곳을 찍기 시작했다. 20여곳의 좌표를 기록하니 눈이 침침했다. 작은 구멍을 반복적으로 들여다보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힘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신기했다.
‘측량이라는게 이런 거구나, 이렇게 하는 거네’라는 관심이 더욱 생겼다. 그러면서 머리 속에 ‘오늘 측량 위치가 평지가 아니라 산이나 논이었다면 되게 힘들겠다’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산을 타고 들을 걷고 하는 고된 작업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 처음보는 ‘드론’…하늘에서도 지적 측량시대
관측이 마무리되자 김종철 과장과 유지훈 과장은 차에서 또 큰 박스를 꺼냈다. 오늘 크게 세가지로 나뉜 측량 기법 중 무인항공측량(UAV) 시간이었다.
드론을 이용해 하늘에서 정사영상을 취득하는 작업이었다. 드론을 꺼내 조립하자 유지훈 과장이 드론 이륙을 준비했다.
설명을 들어보니 드론은 아무나 조종할 수 없고 초경량 비행장치 자격증이 있어야 하며 유지훈 과장만이 드론을 이용한 작업이 가능하다고 했다. 유 과장은 LX공사에서도 몇 안되는 조종사 중의 한명이다.
현행법상 유 과장 이외에 드론을 조종하는 업무는 불법이라는 점에서 드론 설치 과정 및 드론의 구조, 무인항공측량 기법 등을 설명듣는데 그쳤다. 아쉽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것저것 장치를 점검한 뒤 유 과장이 조종장치를 조작하자 드론이 하늘로 떠올라 측량 현장을 돌기 시작했다. 작은 기체임에도 4개의 프로펠러의 힘을 이용해 상공 150m까지 몇분만에 고도를 상승,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드론이 공중을 맴돌자 현장에 있던 함바식당 직원이나 건축 현장인부들까지 나와 여기저기서 신기한 듯 구경하기도 했다.
30여분간 드론에 장착된 카메라를 통해 실시간으로 지적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저장하는 작업이 이어졌다. 유 과장은 “건전지를 동력으로 하는 탓에 오랜 시간의 비행은 어렵다”면서 “여러개의 건전지는 현장 활동의 필수”라고 말했다.
LX공사가 드론을 이용, 지적정보 수집에 나선 시기는 2014년. 계곡이나 섬 등 접근이 쉽지 않은 지형을 보다 쉽게 파악하기 위해서다.
또 평면 측량과 동시에 이뤄진 무인항공측량기법을 통해 3차원 GIS 지형자료 구축도 용이해졌다. LX공사의 대표적 대국민서비스인 안전정보도 드론을 통한 정보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저수지나 계곡부의 붕괴, 돌발 홍수위험 예측을 통한 재난예ㆍ경보 시스템 개발을 통한 저수지의 비상대처계획(EAP) 수립과 신속한 재난 대응체계 구축 등이 이같은 방법으로 얻어낸 지적정보를 바탕으로 이뤄지고 있다.
■ 지상레이저 측량 통해 3차원으로 되살아난 대한민국
드론이 착륙한 뒤 오늘 업무의 마지막인 지상레이저 측량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상레이저 측량은 지표면에 설치한 지상라이다(LiDAR)를 통해 주변의 모든 공간 정보를 입체적으로 수집하는 기법이다.
평면측량에 이용했던 삼각대 위에 라이다를 설치, 기계가 360도 회전하면서 초당 10만의 레이저빔을 발사한 뒤 그 레이저가 다시 반사돼 돌아오는 시간(mm단위)이나 주파수 위상차를 이용, 대상물의 형태와 위치정보를 포함한 3차원 측정(형태와 위치정보)을 하게 된다.
이를 해석해 컴퓨터가 도면, 수치, 영상 등으로 표현하게 된다. 촬영 후 해석된 도면을 보니 주변의 모든 건물과 도로가 3차원으로 표시돼 있었다.
김 과장은 “도면을 확대해보면 개별 건물이나 지점이 수많은 점들로 이뤄져 있다”면서 “이 포인트들이 모두 레이저빔이 닿아 반사된 곳”이라고 설명했다. 또 궁금한 마음에 기계 가격을 물어보니 ‘대당 2억5천~3억원 정도’라는 답변을 들었다. 가격에 크게 놀랐다.
이처럼 고가의 장비가 필요한 이유는 최근 국토의 공간정보사업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LX공사는 지상레이저 측량을 통해 다양한 공간 형태와 위치 정보를 정밀하게 획득, 이를 가공처리해 국민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생산하고 있다.
지형뿐 아니라 문화재, 동굴ㆍ광산 등의 정보를 얻을 뿐 아니라 플랜트, 범죄수사, 안전진단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미 LX공사는 문화재청으로부터 사업을 수주, 울등도(관음교)에 대한 홍보영상 제작, 사찰, 성당, 고궁 등의 문화재를 3차원 기반으로 시스템화했다. 이같은 정보는 문화재의 체계적 관리뿐 아니라 훼손 시 복원을 위한 정밀데이터로 활용될 수 있다.
LX공사는 현재까지 경복궁 근정전, 유네스코 문화유산 융건릉, 성균관, 낙산사, 수원화성 등 60건의 문화재에 대해 3차원 공간정보를 구축했으며 제주도 소천동굴, 서울 숭례문 복원사업 안전진단3D, 빌레못굴, 광명동굴, 솔뫼 성지 등에서 이같은 사업을 진행했다.
제주 소천 동굴(천연기념물 236호) 측량에 참여했던 김 과장은 “지하에 지상라이다 측량을 처음으로 시도했던 케이스라며 우리 공사에 3차원 측량을 적용해 총 3km에 달하는 미개방 동굴 측량을 마무리했다”라고 당시 과정을 설명했다.
두차례의 레이저측량을 마지막으로 오늘의 업무가 끝났다. 벌써 시간은 다섯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일과가 모두 마무리된 것은 아니었다.
손 팀장은 “사무실에 들어가서 평면측량 결과와 드론 촬영 영상, 지상레이저 측량 결과를 모두 재검수해야하고 이를 종합적으로 분석, 전체적인 공간 정보가 나오게 된다”고 말했다.
LX공사 사무실로 돌아오던 길, 하루종일 뙤약볕에 서 있다보니 온몸의 기(氣)가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오랜만에 맞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잘 몰랐던 분야에 대한 또 다른 경험이 내 한 부분에 쌓이게 됐다.
최근 LX공사는 한국국토정보공사(옛 대한지적공사)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수행한 업무의 상당한 부분은 민간에 개방하고 국토공간정보사업이라는 새로운 분야의 개척에 나서고 있다.
단순한 측량 대행기관에서 벗어나 전 국토의 정보를 집대성하고 융복합해 수많은 공간정보서비스를 제공하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사업이다. 그 역할을 기대해본다.
김동식기자
사진=추상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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