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어진 옷 새 생명 다시 반짝반짝 나만의 名品
후텁지근한 바람, 따가운 햇볕, 여름이 왔다는 것을 느끼면서 괜스레 한숨이 났다.
지난해 여름이 끝날 무렵, 옷장에 쑤셔넣으면서 ‘내년에는 꼭 살을 빼서 입겠노라’ 다짐했던 여름옷들을 꺼내야 할 때가 왔지만 아무래도 옷을 다시 입기는 어려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쌓여 있는 옷장 안의 옷들을 꺼내놓고 못 입을 옷을 추려보니 무게나 부피가 상당했다.
멀쩡한데도 주인을 잘못 만나 애물단지가 돼버린 옷을 보니 죄책감이 밀려왔다. 버리자니 너무 아까운데 어떻게 활용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해봤다. 입을 만한 사람에게 줄까, 벼룩시장에 내다 팔까 생각을 하다가 문득 2~3년 전에 샀던 천가방 하나가 생각났다.
청바지를 뜯어서 만든 어깨에 메는 가방이었는데 아무래도 청으로 만든 거라 일반 캔버스천 가방보다 튼튼하고 사용하기도 편했다. 청바지의 뒷주머니를 활용해서 만든 주머니도 달렸는데 디자인도 독특하고 흔하게 볼 수 없는 맵시여서 즐겨 쓰고 있다.
가방을 만든 곳은 ‘리폼맘스’라는 에코 디자인 전문 마을기업이었다. ‘에코 디자인’이란 제품 생산 단계부터 환경피해를 최대한 줄이고 품질과 디자인 경쟁력을 갖춘 환경친화 디자인을 뜻한다. ‘리폼맘스’는 청바지 등 못 입는 옷을 재활용해 가방이나 주머니 등 다양한 쓰임새를 가진 소품으로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는 곳이다.
‘리폼’은 에코 디자인의 작은 갈래라고도 할 수 있다. 나에게 쓸모 없어진 옷에 에코 디자인이라는 새로운 옷을 입히면 어떻게 달라질지 기대를 하고 ‘리폼맘스’ 문을 두드렸다.
■ 리폼의 첫걸음은 물건을 귀하게 여길 것!
지난 24일 오후 2시께 인천 부평구 산곡동에 있는 리폼맘스에 들어섰다. 입구부터 아기자기한 물건들이 가득했다. 한쪽 벽면에는 청바지를 활용해서 만든 배낭과 작은 주머니, 다양한 원단으로 만든 카드 지갑, 열쇠고리, 인형이 줄줄이 걸려 있고 반대편에는 연한 베이지 색감을 가진 천에 귀여운 그림이 그려진 롤스크린이 걸려 있었다.
다양한 눈요깃거리에 정신이 팔려 있는데 리폼맘스의 윤문정 실장이 반겨줬다. 윤 실장은 리폼제품에 관심이 있는 나에게 하나씩 제품을 설명해줬다. 그 중 가장 눈길을 끈 제품은 진청으로 만든 배낭이었다.
색감도 매우 예쁘고 가방에 달린 작은 주머니나 가방끈이 독특하고 편해보였다. 혹시 판매하는 제품인지를 물어봤더니 맞다고 했다. 얼마인지 물었더니 10만 원이라고 했다. 가격을 듣고는 조금 놀랐다.
막연하게 리폼제품이니 일반 매장에서 살 수 있는 새 제품보다는 가격이 저렴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비싸다는 느낌을 받았다.
윤 실장은 “청바지를 재활용해서 만든 제품이기는 하지만 재단부터 바느질 하나하나 모두 수작업으로 만든 제품”이라며 “리폼이라고 해서 싸구려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모든 리폼제품이 비싼 것은 아니었다. 1만 원이 안 되는 제품도 많았고 배낭을 제외하면 2만~3만 원짜리 제품이 많았다.
윤 실장은 “인건비나 디자인, 이런 것을 생각해서 가격을 정한 게 아니다”라며 “리폼 제품은 독특하게 만들어서 귀하게 팔아야만 사람들이 귀하게 여긴다”라고 말했다.
매우 공감이 가는 말이었다. 싸게 산 물건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귀하지 않은 물건은 쉽게 버린다. 그렇게 버려진 물건은 쓰레기가 된다. 설명을 듣고 난 뒤 다시 본 배낭은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귀한 배낭이었다.
■ 세상의 모든 것은 리폼의 재료가 된다
체험준비를 하면서 집에서 리폼을 하기에 알맞은 청바지 한 벌과 청 원피스 한 벌을 가져왔다. 욕심을 내서 샀던 옷들이지만 이상하게 손이 잘 가지 않아서 몇 번 입지 못하고 옷장에 오랫동안 묵혀뒀던 것들이다.
윤 실장에게 아까 본 그 귀한 배낭 같은 것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가 딱 잘라 거절당했다. 초보에게는 어림없는 작품이란다.
리폼맘스 작업실로 들어서니 벽면으로는 미싱이 10여 대 정도 둘려 있고 가운데는 재단 등을 할 수 있는 큰 책상과 실, 바늘, 자, 단추 등 다양한 부속품이 늘어져 있었다. 리폼맘스에서 리폼교육을 받는 선배 교육생들도 여럿 작업을 하고 있었다.
바느질이라고는 남방이나 블라우스에 떨어진 단추만 몇 번 달아본 게 전부고 미싱은 근처에도 가본 적 없었던 터라 무턱대고 덤볐다가 혹여 다치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살짝 주눅이 들어 있는 모습을 봤는지 윤 실장이 “하나씩 하다 보면 실력은 금방늘 수 있다”고 다독여줬다.
그러고는 능숙하게 미싱을 다루면서 복주머니 모양의 가방을 만드는 선배를 가리키며 ‘배운 지 3개월밖에 안 된 교육생’이라고 알려줬다. 하면 되겠다는 자신감을 얻고 처음 도전한 작품은 청으로 만드는 꽃 머리방울과 모자모양의 열쇠고리였다.
가져온 청바지 다리 한쪽을 잘라내 하나씩 꽃잎을 만들 수 있도록 작은 조각으로 다시 잘랐다. 가위질부터 쉽지 않았다. 두꺼운 청바지를 잘라내려는 데 가위가 잘 들지 않았다.
불평을 했더니 윤 실장이 가위를 슥 집어들고 재단을 시작하는데 서걱서걱 소리를 내면서 청바지가 잘려나갔다. 그 뒤로는 군소리 없이 가위질에 몰두했다. 서툰 장인이 연장 탓을 하는 거였다.
작은 천 조각에 꽃잎 모양을 그려넣고 바느질로 모양을 잡았다. 미숙한 손바느질로 모양을 만들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서 윤 실장의 도움을 받아 미싱을 사용했다. 꽃잎 5개를 만들어 이어붙이니 그럴싸한 벚꽃모양이 완성됐다.
끈으로 쓸 고무줄은 머리 묶을 때 쓰려고 팔목에 끼워뒀던 내 검은색 머리끈을 쓰기로 했다. 끊어지기 일보 직전이라 걱정했는데, 약해진 부분을 잘라내고 바늘로 꽃잎에 단단히 엮으니 새로운 꽃잎 머리끈이 완성됐다.
모자모양의 열쇠고리는 꽃잎머리 끈보다는 공정(?)이 간단했다. 동그랗게 오려낸 바닥장판을 모자 바닥으로 삼고 끝 부분을 시침질한 청바지 원단을 동그랗게 감싸주니 예쁜 주름이 잡혔다.
모자의 머리통 부분은 참*슬 소주병 뚜껑에 솜뭉치를 말아 넣어 만들었다. 모자 바닥에 머리통을 붙여주고 어울리는 색리본을 둘러주니 어여쁜 숙녀가 쓸 만한 모자가 만들어졌다. 열쇠고리를 걸 수 있는 구멍을 뚫어주니 끝. 순식간에(사실은 1시간가량) 리폼 첫 작품 2개가 탄생했다.
끊어질 듯한 머리끈, 소주병 뚜껑, 바닥장판 조각 등이 청옷을 입고 예쁜 액세서리로 변신한 것이다.
윤 실장은 “리폼은 세상의 모든 것을 재활용할 수 있다”며 “헌 옷뿐만 아니라 분유통, 음료수통, 테이프 감아두는 지관통 등이 모두 리폼의 재료가 된다”고 말했다.
■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작업… 더없이 값진 일
솜씨가 미천한 탓에 청바지로 머리끈밖에 만들지 못했지만, 마음은 매우 뿌듯했다. 자화자찬은 부끄럽지만 사실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머리끈이 예쁘게 나와서 더욱 흡족했다.
잘라내고 남은 청바지 원단으로도 여러 개 만들어서 친구들에게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실장에게 이야기했더니 리폼을 시작하는 사람 대부분이 그런 마음에서 출발한다고 했다.
함께 교육을 받았던 윤선희씨는 “안 입는 청바지를 가지고 남편과의 커플 거실화를 만들어서 선물해줬더니 아까워서 신을 수 있겠느냐며 좋아하더라”면서 “리폼을 배우면서 단순히 경제적으로 물건을 아낀다는 측면과 아울러 환경을 생각하는 점, 가족 간의 화목, 아이들을 위한 교육 등 다양한 가치가 녹아들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고 전했다.
윤 실장은 “사람들은 우리가 버리는 게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습관적으로 쓰레기를 버리면서 살아가고 있다”며 “그것은 환경오염 등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되돌아 온다”고 지적했다.
또 “물건을 사면서 돈을 쓰고, 버리면서 돈을 쓰고, 쓰레기를 처리하면서 돈을 쓴다”며 “돈은 돈대로 들고 환경은 나빠지는 악순환 구조”라고 비판했다.
윤 실장은 “리폼은 재활용이다. 내가 하나의 물건을 재활용하면 그 하나를 만드는 데 필요한 비용과 자원을 아낄 수 있다”며 “모두가 하나씩만 재활용한다고 하면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교육이 모두 끝난 뒤 리폼 가방을 메고 리폼 머리끈으로 머리를 묶고 리폼맘스를 나섰다. 비록 비싼 제품도 아니고 새것도 아니었지만, 어느 명품 부럽지 않고 자랑스러웠다.
김미경기자
사진=장용준기자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