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안된 송아지부터 어미소까지 두근두근 첫 만남
유난히도 무더웠던 올여름, 여기저기서 농가들의 시름 소리가 들려왔다. 고온으로 가축 폐사 피해가 발생하고, 농장에서 작업하는 농민 일부는 열사병을 앓았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한창 더위와 씨름하고 있을 축산농가에 가 직접 일손을 돕기로 했다. 이왕이면 일손이 절실한 농가를 방문하는 게 보람있는 법. 그러던 중 농협중앙회 경기지역본부가 활발히 지원하고 있는 ‘취약농가 인력지원사업’이 한눈에 들어왔다. ‘진짜 영농도우미’는 될 수 없는 탓에 최근 용문농협을 통해 이 사업을 지원받은 엄관철씨(58)의 축사에서 일손을 돕기로 했다. 영화 ‘워낭소리’를 보고 펑펑 울며 소와의 조우를 꿈꿨던 도시녀가 ‘영농 도우미’로 변신한 지난 18일 축산농가에서의 하루는 그렇게 시작됐다.
■ 쉽지 않은 소들과의 하루…작업 10분 만에 ‘땀 범벅’
넓디넓은 논밭을 지나 소규모로 축가를 운영하는 엄 씨의 축사를 찾았다. 양평에서 나고 자랐던 엄 씨는 7년 전 대기업에서 퇴사 후 고향으로 귀농한 자칭 ‘초보 농민’이다. 고향에서 제2의 인생을 꿈꾼 엄 씨는 자신이 축산농을 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 문득 ‘강아지도 애완견이라고 키우는데 소라고 못 키울까’하는 생각에 소규모로 소를 키우기 시작했다. 엄 씨를 따라 축사에 들어가니 21마리의 어미소와 아기소가 한여름을 이겨내고 있었다. 똘똘한 눈으로 기자를 바라보는 소들은 어미소(번식우) 13마리, 생후 3~6개월 된 송아지 5마리, 아직 3개월이 채 안 된 아기소 3마리다. “오늘 하루 잘 부탁해” 소들에게 혼잣말로 인사를 건네며 신고식을 치렀다.
축사의 한여름은 다른 때보다 더욱 정성을 들여야 한다. 천장에는 대형 팬 두 대가 열기를 식히려고 쉴새 없이 돌아갔지만, 역부족이다. 사람도 견디기 어려운 더위는 소에게도 힘든 법. 하루에 두 세 번씩 물을 뿌려주며 더위를 이겨내도록 돕고, 영양분을 보충하려고 사료도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우선, 소들에게 사료를 먹이려고 사료를 준비했다. 엄 씨는 여름철이면 가공사료와 직접 배합해 만든 특별사료를 준다. 여름철엔 기력을 조금이나마 보충해주려고, 직접 심은 옥수수의 대를 잘라 사료에 섞어준다. 볏짚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영양소가 있지 않을까 해서다. 사료를 준비한 후, 소들의 식사자리(?)를 깨끗이 치우기 시작했다. 사료를 놓을 자리에 놓인 볏짚을 빗자루로 쓸어 담아 다시 축사 안에 버리며 깨끗하게 자리를 만들었다. 볏짚을 쓸어담아 몇 번 축사 안으로 던지는 작업을 반복하자 벌써 팔이 저려왔다. ‘내가 볏짚인지, 볏짚이 나인지….’ 시작한 지 10분 만에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옆에서 보던 엄 씨는 “아이고, 기자님 이런 거 처음이라서 쉽지 않을 텐데”하며 웃었다.
사료를 내려놓는 순간, 소들이 사료를 먹기 위해 하나 둘 몰려들었다. 하지만, 가축의 세계에도 연장자 우선 법칙이 있었다. 서열대로 이 축사에서 가장 연장자인 5살 소에게 먼저 사료를 놓아주고서, 차례대로 사료를 배식했다. 5분이 조금 지났을까. 어느새 사료가 놓여 있던 자리가 말끔히 비워졌다. ‘자리가 깨끗해지니, 또 이 작업 할 건 없겠지’라고 생각한 찰나, 엄 씨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이제 소들이 계속 먹을 볏짚을 다시 깔아놔야 해요. 여기에 와서 볏짚 단을 뜯고 다시 깔아놓자고요.”
■ ‘취약농가 인력지원사업’으로 농가 한시름 덜어
한낮이 되자 가만히 있어도 땀이 주르륵 흘렀다. 소들은 축사 안에 주렁주렁 달린 미네랄블록을 핥으며 소금을 보충했다. 미네랄블록은 1개당 단가가 1만 원에 달한다. 엄 씨는 지역 한우협회 차원에서 공동으로 물건을 들여온 것을 사 30%가량 싼값에 사들이지만, 이 역시 부담이 만만치 않다. 하루에 두세 번 물을 뿌리는 작업도 이어진다. 현대식 농가는 클러스터가 자동으로 물을 뿌려주지만, 이곳에선 모두 수작업이다. 엄 씨는 사료를 배합하려고 사료 배합기를 사용했다. 농업의 부산물인 쌀겨를 사료와 반반 섞어 조금이라도 사료 값 부담을 덜기 위해서다. 엄 씨는 지난해 12월 이 사료배합기를 사용하다 손가락을 다쳤다. 40일 동안 병원에 입원했는데, 축사 일을 대신할 일손이 절실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서도 축사가 걱정됐던 엄 씨는 ‘영농도우미’를 신청해 한시름을 놓게 됐다고 했다.
고령화된 농촌사회에서는 연로한 농민들이 일하다 다치는 경우가 많다. ‘취약농가 인력지원사업’은 농민이 병원에 입원해있거나 일을 못할 때 농협에 신청하면 인력비를 지원해주는 사업으로 ‘영농도우미’와 ‘가사도우미’가 있다. ‘영농도우미’는 80세 이하 농업인이 사고로 2주 이상 상해진단을 받았거나 질병으로 3일 이상 입원했을 때 최대 10일까지 인력비를 지원해준다. 영농도우미는 1일 임금의 70%를 국고로 지원하며 이용농가는 30%를 부담하면 된다. 가사도우미는 질병 등으로 몸이 불편한 농민의 가정 등을 방문해 가사를 돌봐주는 서비스다. 경기농협은 어려움에 처한 농민들을 지원하고자 올해 ‘영농도우미’ 2억2천만원, ‘가사도우미’ 1억8천만원의 예산을 지원할 계획이다. 올들어서는 지난 7월말 기준 총 1천258농가에 영농가사도우미를 지원했다. 인력수요가 많은 용문농협에서는 지난해 75명, 올해 현재까지 43명의 농민이 이 지원을 활용해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최영준 조합장은 어려움을 겪는 농민들이 혹여나 도움을 받지 못할까 봐 마을을 일일이 다니며 좌담회를 열고, 알리면서 농민들이 걱정 없이 치료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러다 보니 이웃들이 서로 필요할 때 도와주는 품앗이 효과도 생겼다고 한다.
■ 한국 축산업의 든든한 버팀목…한우농가 하루 엿본 값진 체험
사료를 주고, 중간마다 더위를 식히는 작업을 하고, 사료를 배합하는 과정을 끝내면, 내부청소를 한다. 말 그대로 ‘소똥’을 치우는 작업이다.
장화를 한 번 더 고쳐 신고, 소똥을 담을 손수레를 끌고 축사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게 웬걸. 똥을 치우러 가는 걸 알아차린 건지 소들은 기자가 들어서자마자 똥을 싸댔다. 기자의 입에서 ‘음메~’ 소리가 절로 났다. 자신 있게 축사로 들어갔지만, 소똥을 치우는 작업도 쉽지 않았다. 커다란 삽으로 소똥을 모으고, 담아 달구지에 담는 단순한 작업이지만 한 번에 뜨는게 관건이었다. 축사 오른편에 가득 쌓인 소똥을 치우고, 왼쪽에 가니 오른편에 있던 소들이 다시 똥을 쌌다. 왼쪽을 치우고 나니 다시 왼쪽에 있던 소들이 똥을 싼다. 소들과 한참을 씨름하니 엄 씨의 말이 들려온다. “씨름 그만 하고, 이제 나오세요. 적당히 소똥도 있어야 축사죠.”
축산농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엄 씨는 “언제 오를지 모를 사료 값과 변동하는 소 값을 항상 예의주시 해야 하고, 최근 각종 FTA로 한우 경쟁력이 밀리지 않을까 우려도 크지만, 자부심이 크다”고 말했다. 소규모 초보 축산농민이지만, 우리나라 축산농가를 든든하게 지키고 있다는 뿌듯함도 있다고 한다.
무더웠던 여름날 축산농가에서의 일손돕기에서 기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순작업이었다. 하지만, 현장체험을 끝내고서 머릿속에는 ‘정성’이라는 단어가 계속 떠올랐다. 사료를 먹이고, 길러내고, 보살피는 이 모든 작업은 축산 농민들이 감내하는 값비싼 정성이었다. 한국의 축산업을 지탱하고 있는 이들에게 마음으로 박수를 보낸다.
정자연기자
사진=전형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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