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전 北서 떠내려온 ‘평화의 소’… 올해도 ‘통일 한반도’ 꿈꾼다

96년 김포 유도서 발견 후 구출 
남한 신부 ‘통일염원의 소’ 맞아
많은 자손 남기고 2006년 자연사
유골은 김포 두레문화센터서 보존

해마다 1월이면 김포시민은 ‘평화의 소’를 추억한다. 20년 전 그날이 뜻깊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겨울 한파가 기승을 부린 1997년 1월. 나룻배 한 척 없는 차디찬 한강 한가운데 비무장지대에서 ‘황소 구출작전’이 펼쳐졌다. 해병대 청룡부대 장병 8명과 수의관 1명이 고무보트 3대에 나눠 타고 북한을 마주보고 있는 한강 하류 무인도인 김포시 월곶면의 ‘유도’에 진입했다.

 

해안에 고무보트를 대자 10여m 떨어진 갈대밭에서 풀을 뜯는 황소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지뢰를 밟아 왼쪽 발목에서는 고름이 흘러내리고 있었고, 비쩍 말라 몸무게는 300㎏이 채 되지 않았다. 해병대원은 즉시 마취총을 발사했다. 앙상한 몸체가 힘없이 ‘푹’하고 옆으로 쓰러졌다.

 

이 황소가 유도에서 처음 발견된 건 1996년 8월 하순이었다. 김포시(당시 김포군)와 국방부는 그해 여름 중부 지방의 집중호우로 홍수가 나면서 북한에서 떠내려 온 것으로 추정했다. 북한쪽에서 아래로 흐른 유도 인근의 해류를 근거로 들었다.

 

무인도에 홀로 남은 이 황소는 겨울이 되자 제대로 먹지 못했고 점차 야위었다. 결국 김포시와 군은 황소를 무인도에서 데리고 나와 사육하기로 결정하고 구출 작전을 벌였던 것이다.

 

육지로 나와 마취에서 깬 황소에게는 ‘평화의 소’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남북 평화통일의 상징이 되라는 의미였다. 보살핌과 먹는게 달라지자 체중이 500㎏까지 불어났다. 이듬해인 1998년에는 어여쁜 ‘남한 신부’를 맞았다. 제주도의 한 축산인이 기증한 360㎏짜리 암소 ‘통일염원의 소’와 부부의 연을 맺었다.

 

이 ‘평화의 소’는 2006년 5월 자연사하기까지 많은 자손(?)을 이었다. 김포시농업기술센터(당시 농촌지도소) 내 99㎡ 크기의 축사에서 모두 7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1998년 11월 4시간의 진통 끝에 태어난 첫째 숫소는 부모의 이름을 각각 따 ‘평화통일의 소’로 불렸다.

 

첫째 ‘평화통일의 소’는 김포 축사에서 어미 소와 함께 길러지다 2000년 어미의 고향인 제주 우도에 정착해 새끼 소 40여마리를 낳았다. ‘평화의 소’ 2세이자 ‘평화통일의 소’ 형제·자매소 5마리는 일반 한우 사육농가와 한우협회 김포시지부에 각각 분양됐다. 막내 암소는 김포 통진두레놀이보존회의 일소로 성장했다.

 

2005년 5월 김포시로부터 ‘평화의 소’를 위탁받아 마지막까지 기른 두레놀이보존회 회원 조문연씨(59)는 지금도 기억한다.

 

조씨는 “대남방송을 듣고 자란 세대이다 보니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의미가 담긴 ‘평화의 소’를 맡아 기르는 걸 영광으로 생각했다”며 “통일의 뜻을 이루지 못한 상황에서 많은 나이로 힘을 잃고 죽는 모습을 보니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평화의 소’의 유골은 현재 김포시 통진읍 두레문화센터에 납골 형태로 보존돼 올해도 통일을 새 희망으로 품고 있다.

 

김포=양형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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